조산이었다. 지난 2004년 13주나 세상에 일찍 나온 우경이는 부산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지내야 했다. 의사는 몸무게를 늘린 뒤 퇴원하자고 했다. 호흡이 불안정해 산소호흡기를 껴야 했던 우경이에게 엄마는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호흡에 도움이 되도록 가습기를 틀어달라는 의사의 말을 열심히 따랐다. 엄마와 아빠는 가습기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틀어 우경이의 코 바로 앞에 쐬어주었다. 분홍색 튜브로 가습기의 증기가 24시간 우경이의 콧속으로 들어갔다.
가습기 통을 연신 씻고 물을 채운 뒤 가습기살균제도 넣었다. 엄마 이준미씨는 "(가습기살균제를) 아예 들이부었다"고 했다. 애 하나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이었다. 애경산업의 '가습기메이트'였다.
"임백천 부부가 나와서 100% 안전하다면서 (가습기메이트를) 광고했다. 애 하나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으로 가습기에 균이 있다고 하니까 (가습기살균제를) 한 컵 부을 것도 두 컵을 부어 가습기 연기를 쐬게 했다."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자신의 손으로 갓 태어난 우경이 앞에 유해 물질을 대줬으리라고는. 가습기를 열심히 사용했으나 호흡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어느 날 산소포화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의사는 심폐소생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산소포화도는 회복됐지만 '원인불명의 폐손상'에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부모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어 서울에서 제일 좋다는 병원을 찾아갔다. 서울 병원에서도 폐는 이미 망가져서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거기에 추가로 원인불명의 심장질환 진단까지 받았다. 심장에서 구멍이 두 개 발견된 것. 한밤중에도 빈번하게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구급차를 타고 올라갔다.
3년간 우경이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우경이의 다리 근육은 비장애인들처럼 자라지 않았고 혼자서는 걷지 못하는 상태가 돼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 장애검사에서 뇌병변과 지적장애, 발달장애 1급 판단을 받았다. 800여 차례 병원에 왔다갔다 했다. 운동치료에 전념하느라 점차 가습기 사용 빈도는 줄었고 가습기살균제는 머릿속에서 잊혔다.
시간이 흘러 2011년, 우연히 가습기살균제 관련 뉴스를 봤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해서 증상이 나타났던 아이들과 우경이의 상태가 너무나 비슷했다. 단어를 하나 알려주면 처음에는 기억을 하지만 곧 잊어버리는 증상이었다. 이어서 우경이가 아기였을 때 찍었던 사진도 찾았다. 사진 속 우경이 옆에는 가습기살균제가 놓여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인하대병원 임종한 교수를 찾아갔다. 임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세미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한 명이 여러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 광범위하게 피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임 교수에게서 "전형적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맞지만, 지금의 판단 기준은 어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우경이가 언제쯤 제대로 된 판단을 받을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성인이 되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이준미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에서 저랑 늘 같이 있어야 한다, 나도 점차 늙으니 우경이에게 뭘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다"며 막막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고 이준미씨는 말했다. "옆에서 지나가듯 증기를 쐬고도 돌아가신 젊은 분들이 많은데 갓난아기가 바로 코앞에 증기를 쐬고도 살아 있는 건 기적"이라고 했다.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가족들
우경이가 16살이 된 올해, 아이에게 많은 걸 해주고 싶었다던 엄마는 기자들 앞에서 다시 아이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 아이는 바로 옆에서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나선 이씨의 손에는 손피켓이 들려있었다.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산에서 서울로 왔다.
'입증책임 우리 보고 하라니요? 제정신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라는 손팻말을 들고 이준미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결혼 전에는 자존심도 강하고 내 나름대로 생활을 잘 했다. 그러다가 아픈 애를 몇 년씩 키우다 보니 성격도 바뀌고 대중들 앞에 나서면 불안하고 무섭고 숨고 싶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무릎을) 꿇었다. 인정이 안 되면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울컥해서 그만..."
당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걸 증명하는 사진도 있지만 우경이는 아직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구제하는 환경산업기술원에서는 피해자 증명을 위해 16년 전 병원 영수증을 요구했다고 한다.
우경이와 같이 가습기 증기를 쐬면서 잠들었던 이준미씨도 산소포화도 측정 결과가 좋지 않다. 산소포화도 100%가 정상 수치라면 80% 정도(80% 이하면 신체의 여러 조직이 심각한 상해를 입는다)가 나온다. 건강했던 남편도 폐에 구멍이 보인다고 한다. 이씨 역시 피해자로 인정해 달라고 서류를 넣어둔 상태다. 그는 "서류를 '이만큼' 넣었다"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뻗을 수 있을 만큼 길게 뻗었다.
이준미씨는 "그 허울만 좋은 특별법"이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안은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개정안마저 9일 여상규 법사위원장의 반대에 결국 법사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
가습기살균제참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10일 기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1518명에 이른다.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는 수십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날 두 아들을 잃은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분노에 못 이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여상규 위원장님, 잘 먹고 잘 사시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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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남편을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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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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