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와 에스퍼는 지난 1월 16일 월스트리트저널지 공동기고문에서 "현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 한국방어 비용의 일부만을 담고 있"고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기여는 한국주둔 미군의 비용을 크게 뛰어넘"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주둔 미군의 비용(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틀 내의 비용)이 아니라 '한국방어'에 미국이 기여하는 전체 비용에 대해 한국이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어디까지나 주한미군 주둔경비의 일부를 한국이 부담하는 협정이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그 법적 근거가 한미소파 5조다. 한미소파 5조는 주한미군의 경비분담 원칙을 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주한미군의 경비(미군 인건비는 제외)에 한정하여 적용된다.
따라서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뛰어넘는 비용의 분담을 한국에 강요하는 것은 그것이 미국의 주장대로 설사 '한국방어'에 기여하는 비용이라 하더라도 그 비용을 한국이 분담할 법적인 의무가 없으며 이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위배다.
가령 한반도에 훈련이나 북한 견제를 위해 일시적으로 전개되는 미 전략자산은 주한미군의 장비가 아니다. 따라서 전략자산 전개비용 분담을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위배다.
'한국방어' 비용 분담을 주장하는 미국의 의도는?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 주한미군 경비에 한정되어 적용되는 협정임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틀을 벗어나는 '한국방어 비용'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들고 나왔을까? 그것은 주한미군의 주둔경비(미군 및 미군무원의 인건비는 제외된다)에 한정되는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틀로는 방위비분담 인상에 한계가 있고 나아가 대중국 견제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과 세계패권전략 수행에 드는 비용을 한국한테 부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틀을 무너뜨리고 대신 '한국방어' 명목을 내세워 방위비분담의 범위와 한도를 무제한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50억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금액은 주한미군의 총주둔비 35억 달러(2019년)를 훌쩍 넘는다.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경비를 1.5배나 상회하는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의 끝 모를 탐욕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한미군의 인건비까지를 포함해 총주둔비를 몽땅 받아내고 나아가서는 미국의 세계패권전략 수행비용까지 받아내겠다는 의도다.
미국이 주장하는 '한국방어' 기여의 실체는?
미국이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틀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한국방어에 대한 미국의 기여'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미군의 한국 순환배치,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보완전력(한국이 보유하지 못한 정찰자산 등), 한반도 역외에서의 기여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하는 '한국방어에 대한 기여'를 정말 한국방어로 볼 수 있을까?
미군의 한국 순환배치는 2000년대 초 해외미군재배치 구상과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이 구상은 주한미군을 붙박이 군대에서 언제든지 한국 영역 바깥으로 투사될 수 있는 기동군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며 주한미군의 주된 역할을 대북 전략 수행에서 대중국 견제전략 수행으로 변경하려는 것이다. 미군의 한국 순환배치는 미육군 전투여단, 아파치헬기 대대, 핵공격이 가능한 F-16 등 대북 선제공격전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남한방어를 뛰어넘는다.
한국방어를 명분으로 전개되는 미 전략자산도 항모나 핵잠수함, 전략폭격기의 핵전쟁수행능력과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를 압도하는 제공권 및 제해권의 측면에서 볼 때 대북 선제공격전력 또는 인도·태평양전략 수행을 위한 전력이지 한국방어를 위한 전력으로 볼 수 없다. 가령 괌에서 한반도로 출격하거나 귀환할 때 남‧동중국해를 거치는 미 전략폭격기는 약간의 항로변경만으로도 중국견제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 미 전략자산 전개는 대북 선제공격전략인 '맞춤형 억제전략'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4D작전개념에 따라 이뤄진다. 겉으로 한국 방어를 내세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대북 선제공격 또는 대중국 봉쇄를 겨냥하고 있는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남한영역의 방어에 조약의 적용범위를 한정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이다.
'보완전력'은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장사정포 등 이른바 북한의 비대칭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 중 한국군이 갖추지 못한 대화력전 무기, 정찰·감시 전력, 전략자산 등을 말한다. 그런데 보완전력은 대북 방어의 범위를 넘어서 대북 선제공격과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공격전력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불필요한 전력이다.
역외 부담 요구도 한국방어와 상관없는 불법적인 요구
미국의 '한국방어' 기여 개념은 그 지리적 범위로 보면 한국 영역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개념이다. 드하트 미 방위비분담 협상대표는 기자간담회(2019년 12월 16일) 때 "미군인들을 한반도 안에 또 한반도 밖으로 수송하고 또 한반도에서 작전하기 위해 장비를 갖추고 한반도에서 작전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것, 이것은 모두 한국 방어를 위한 것"(중앙일보, 2019년 12월 18일)이라고 주장했다.
미 방위비분담 협상 대표단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한반도를 방어하기 위한 큰 틀의 노력"이라며 "한국이 이 전략에 방위비를 낼 수 있도록 '신설 항목'을 만들자고 요구"(JTBC, 2019. 11. 20)했다고 한다. JTBC보도는 미국이 '한국방어에의 기여'를 들고 나온 의도가 한국 역외로까지 방위비분담의 범위를 넓히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한국한테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나아가 세계패권전략 수행 비용을 받아내려는 것임을 말해준다.
미국이 한국에 역외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의 국방전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미국의 <국방전략(NDS)>보고서(2018.1)는 "(동맹과 파트너십의) 공동방어를 위한 자원의 공동이용과 책임분담은 미국의 안보부담을 경감"시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미소파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한국영역 안에서의 주한미군의 활동에만 적용된다. 따라서 한국 영역 바깥에서의 미군의 활동 비용을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한미소파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위배다.
또 미국이 남중국해에서나 호르무즈해협에서의 미군의 작전에 대해서 한국에 병력 파견을 요구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우리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자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불법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한국방어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한국의 미국 방어 책임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준비태세'의 수용은 미국에게 백지수표를 주는 격
미국은 '준비태세'(readiness)란 항목을 신설해서 거기에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에 포함되지 않는 비용들을 다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미국이 준비태세로 거론하는 것을 보면 미군 한국순환 배치와 그들 인원의 수송·훈련·장비, 미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가족지원, 사드체계, 역외에서의 미군 활동 등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틀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이다.
'한국방어'는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에 포함되지 않는 비용들을 한국에 요구하기 위한 명분이라면 '준비태세'는 이 비용을 받아낼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준비태세'에 대한 미국 요구가 수용되면 한미소파 제5조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무력화될 것이고 미국은 백지수표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작전준비태세'는 "편성 또는 지정된 고유목적의 임무 또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부대, 함정 또는 무기체계 장비의 준비태세 및 인원 준비태세를 모두 포함한다(미 국방부 용어사전)." 미 의회조사국도 "준비태세는 넓은 의미에서는 군이 국가가 자신들에게 요청하는 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쓰인다. 이런 의미에서 '준비태세'는 군의 거의 모든 측면을 포괄"(CRS, 2017. 6. 14)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미군 교육, 훈련은 물론 장비의 정비, 새로운 무기와 병력의 운송과 배치, 작전 운용 등에 드는 비용을 '준비태세'라는 명목으로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준비태세'가 수용될 경우 방위비분담금이 천정부지로 뛸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군의 한국 순환배치' 비용 분담만으로도 방위비분담금은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육군 여단전투단(BCT)의 1회 순환배치 비용은 565억 원(미 육군 2020 예산 운영유지비 개요)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미 본토 내에서의 운송과 인력비용까지 한국에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군의 한국순환 배치에는 주한미공군 F-16(12대)와 평택 캠프험프리스 미2사단 아파치헬기부대(소속 1개 대대)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까지 포함하면 순환배치 비용은 565억 원을 훨씬 상회할 것이다.
미 전략자산 전개비용도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상승요인이 된다. 미국은 10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협상 때 전략자산 전개비용으로 3000만 달러를 요구하였는데 이번 11차 협상 때는 그 세 배가 넘는 1억 달러를 요구하였다(중앙일보, 2019년 10월 30일). 미국 본토의 지원부대 인건비까지 얹어서 요구한 것이라 한다.
10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부속협정인 이행약정은 군수지원비의 항목 속에 공공요금과 저장·위생·세탁·목욕·폐기물처리를 포함시킴으로써 사드운영유지비가 부분적으로 방위비분담금에서 지급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는 했다. 하지만 이행약정은 조약이 아니어서 사드운영비를 방위비분담금에서 충당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준비태세' 요구가 수용되면 사드운영유지비를 방위비분담금에서 충당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고 그 부담은 단지 공공요금과 저장·위생·세탁·목욕·폐기물처리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2018년 주한 미 사드포대의 사드 요격미사일 재분배 훈련에는 군인뿐 아니라 관련 폭탄전문가 등 민간인이 참여했는데(미 육군 뉴스, 2018. 12. 27), 이들의 인건비나 사드 장비 정비 비용도 청구될 수 있다.
'미군 가족지원'은 주한미군의 모든 유지비는 미국이 부담하게 되어 있는 한미소파에 위배된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주한미군 및 미 군무원의 인건비를 제외한 주한미군 경비에 적용되기 때문에 '미군 가족지원'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에도 위배된다. 하지만 '준비태세'가 받아들여지면 '미군가족 지원'을 위해 방위비분담금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된다.
미군가족 지원은 그 범위가 주거지원(가족주택신축, 주택 보수, 임대료, 주택관리비 등)에서부터 미군 배우자 및 자녀의 생활(교육, 병원, 공동체활동 등) 지원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한 개념이다. 가족비동반 미군의 배우자에게 주는 별거수당(월 250달러), 캠프험프리의 부족한 가족주택 2436채(2017년 2월 현재)의 건설자금(약 5603억원)이나 임대료 등도 방위비분담금에서 나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