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질 수 없어 떠난다. 너무 힘들다."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밀양 한국화이바 직원 고 김상용(32)씨의 장례가 두 달 넘게 치러지지 못한 가운데, 고인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이 공개되어 관심을 끈다.
고인은 2019년 12월 8일 한국화이바 기숙사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고인은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긴 유서에서 "책임을 질 수 없어 떠난다. 죄송하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양산지청은 지난 1월 15일 "정신적 고통을 받고 근무환경이 악화되었다고 볼 수 있어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판단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 직장내 괴롭힘 재조사 ▲ 행위자에 대한 징계 ▲ 재발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2월 20일까지 이행하도록 개선 지도명령했다.
또 유가족들은 경남지방경찰청에 '재수사'를 요구했고, 이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지난 1월 28일과 2월 4일 한국화이바 사측과 만났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진실규명'과 '회사의 사과' 등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가족들은 한국화이바 앞에서 1인시위 등을 진행하고 있다.
6개월 간 1908통... 업무시간 외 전화도 544통
이런 가운데 유가족은 고인의 전화통화 기록을 공개했다. 통신사에 요청해 받은 고인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보면, 6개월간 회사 업무와 관련해 전화통화한 숫자가 1908통에 이른다.
이 가운데 오전 8시 이전과 오후 5시 이후의 근무시간이 아닌 때 업무와 관련해 통화한 숫자는 544통이다. 고인은 한 달 평균 업무와 관련해 318통의 전화통화를 했다.
고인의 어머니‧아버지‧형을 비롯한 유가족과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10일 오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대리' 직책인 고인은 2017년 특수선사업부로 부서 이동했고, 방산업체의 발사체 프로젝트 관련 업무를 맡아 왔다. 고인은 한국화이바뿐만 아니라 2개의 관련 업체 관계자로부터 수시로 전화통화를 했던 것이다.
유가족과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노동부 조사결과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된 지도 벌써 한 달여 가까이 되어 가고 있지만 한국화이바는 이번 사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는 고사하고, 여전히 책임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화이바는 고인의 죽음이 가정불화, 여자친구문제 등으로 왜곡해 명예를 훼손하고 사건을 덮어버리기에 급급했지만, 이제 그 실체적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고 했다.
전화통화와 관련해, 이들은 "통화는 납품이 있을 시기에 더욱 집중되고, 한국화이바 회사 관계자뿐만 아니라, 2개의 발주 업체 등을 비롯해 부품공급사 등 무차별적으로 대리직급 신분인 고인에게 통화가 집중되었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부모님에게 살뜰한 자식으로, 여자친구와 소박한 미래를 꿈꿔왔던 고인에게, 특수선사업부로 옮기고 나서 진행된 것은 직장내 괴롭힘 뿐만 아니라, 납품을 두고 강요와 협박이었다"며 "그 모든 과정은 엄청난 직무스트레스였을 것이며,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공포였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쉴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소리는 고인에게 다정한 여자친구의 전화도 아니었고, 항상 믿어주시는 부모님의 전화도 아니었다"며 "그 소리는 악마의 소리였을 것이다. 한국화이바와 2개의 발주처에서 걸려오는 전화소리는 고인에게 책임을 강요했고, 그 결과 대리직급 신분인 고인은 '책임을 질 수 없어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꽃다운 생을 마감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노동부와 경찰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 사태를 정리할 것이 아니라, 강요와 협박을 방조하고 사용자로의 직무를 유기한 한국화이바와 2개의 발주처 등 납품에 따른 업무강요와 협박을 한 부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처벌을 촉구한다"고 했다.
한국화이바는 김상용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회사의 잘못이 없다"거나 "직장내 괴롭힘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회사는 "조사 중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날 고인의 어머니는 "내 새끼가 죽은 지 두 달이 넘었다. 내 새끼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줄 때까지 참을 수 없다"며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