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깬 몸은 숫자와 함께 일어난다. 한 달 정도 됐으리라.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쥐고 코로나19가 만든 변화를 확인하는 일이.
숫자가 누군가의 삶을 비일상으로 나누는 일상은 곧 사라질 것 같다. 확진자 수는 며칠 동안 늘어나지 않았다. 격리환자 수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중국 우한 교민들 역시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와서 안전하게 격리 생활 중이다. 다행이다. 다행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나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6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4년.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을 지나가며 매일 숫자를 마주했다. 건물 외벽에 달린 생중계 전광판 왼쪽 위 숫자.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도, 나날이 지남에도, 국가는 생존자 수를 늘리지 못했다. 생존자를 구조하지 못했고, 희생자를 수습할 계획도 발표하지 못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많은 것이 다르다.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도, 희생자가 늘어났던 속도도, 이후의 대처도 아마 다를 것이다. 내 상황도 다르다. 기자로서 정보를 취합해 상황을 정리하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시민으로서 뉴스를 통해 상황을 판단한다. 덕분에 과거를 떠올릴 여유도 생겼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미수습자 가족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일이, 당시 정부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구조 전문 업체 대신 인양 전문 업체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고, 배에 구멍을 뚫어 산소를 넣는다 하고, 다이빙벨을 넣어 구조한다고 하고, 무수히 많은 일이 흐지부지 이어졌다. 그 사이 정부 고위 관료는 미수습자 가족의 임시 숙소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누군가는 '놀러 가던 애들 죽은 일에 왜 난리냐'고 막말을 내뱉었다. 박근혜 정권, 새누리당 정부 시기 일이다.
메르스가 전염되던 시기도 비슷했다. 정부가 역학조사를 얼마나 했는지 보다, 대통령 방문 병원 벽에 부착된 '살려야 한다'가 더 화제였다. 행정부는 '낙타 고기 먹지 마라' 같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예방법을 발표했다. 당시 야당의 서울시장(지금은 여당이 됐지만)은 선제적 강력 대응을 주장했지만,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보수 시민 단체와 정치권에서 흘러나왔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헛장단에 놀아났다. 그 중심에는 정부가 있었다. 효율적인 비상 대응 시스템 운영 대신, 국민이 분노를 일으킬 메시지를 내보내던 이들. 불협화음을 만드는 행정부가 시스템을 제대로 굴릴 수 있겠는가.
그때처럼 헛소리 내뱉던 고위 관료가 없었다는 것, 우한 교민을 빨리 데려오도록 선택한 것, 불합리한 공포감을 해소하기 위해 지침을 내리고 가짜 뉴스 엄단 대응을 발표한 것. 2020년 대한민국 행정부는 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정상적인 행동을 했다. 그 당연한 행동을 보면 볼수록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다.
세월호 유족은 아직까지 과거의 억울함과 기만을 벗겨내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 세월호 유족에게 국가는 위험집단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들이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면, 국가는 사회 분열 집단의 주장이라고 폄하했다. 국가의 대국민 기만 정책은 계속됐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고, 새누리당 정부가 바뀔 때까지.
세월호 유족의 고통을 만든 이들은 다양하다. 상황은 복합적이다. 이용 기간이 오래된 낡은 배를 값싸게 들여온 업체, 적재량을 초과하는 운항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관련 기관, 비상사태 안내는커녕 혼자 도망간 배의 운영 주체,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행정부, 청와대와 한몸으로 유족들을 낙인찍은 몇몇 언론.
이뿐이랴. 참사 이후에는 가짜 뉴스를 만들고 퍼뜨린 시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믿어버리며 주변에 전파한 이들도 빠트릴 수 없다. 광화문 세월호 집회 취재 후 들어간 음식점에서 옆자리의 누군가가 말했다. 단식으로 병원에 실려간 김영오씨를 향해 '딸 시체 팔아서 보험금 노리는, 천하에 다시없는 비도덕적 위험 분자'라던 우리 사회의 동료 시민들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87년 생인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국가 재난 상황이었다. 그 일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개인마다 재난급으로 느끼는 일은 다양하리라. 70년대 군부독재, 80년 광주민주화운동, 90년대 삼풍백화점과 IMF, 2000년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메르스, 강남역 살인사건 등등 각자의 마음에 큰 흔적을 남긴 일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크게는 국가적 재난, 작게는 일상의 사건 사고를 접할 때, 우리는 사회의 대응 시스템도 함께 평가한다. 그리고 사회적 신뢰도를 수정한다. 그런데 공무원들만 잘하면 끝일까? 행정부와 지자체 공무원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일하는 수많은 민간위탁단체와 각종 시설 관리 업체가 시민에게 대응법을 안내한다. 그 안내를 실행하고, 지키고, 잘 진행되도록 마음을 모으는 이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 나이고 우리다.
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는 과거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이번 정부는 훌륭하구나, 라고 돌아설 때가 아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얼마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성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