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Hijab: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목 등을 가리려 쓰는 두건의 일종)을 얼굴에 두른 인도네시아 여성, 양복을 입은 아프리카 가봉 흑인 남성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대표실을 찾았다. 여기엔 이들을 비롯해 중국인·네팔인·일본인 등 태생이 다양한 20명이 모여 있었다.
정의당은 이날 자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청년기초자산제', 부동산 불평등 해소를 겨냥한 '부동산투기근절법 및 서민주거안정법' 등에 이어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공약을 발표했다. 심상정 대표는 이날 "그간 중요한 이주민 문제를 정치권에서 힘 있게 다루지 못했다는 그 반성에서 정의당이 이자스민 전 의원을 이주민특별위원장으로 임명했다"며 "21대 국회에선 여러분이 겪는 절박한 문제들이 국회에서 제대로 다뤄지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자스민 위원장도 "이주민으로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이주민으로서, 또 정의당원으로서 이 자리가 자랑스럽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평일 낮에 직장도 빠지고 아이도 맡겨야 하는 이주여성의 실정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안다"며 "정의당의 이주민 공약은 다르다, 이주민을 경제적·도구적으로 보는 다른 정당과 달리 정의당은 인권적·보편적 공약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더는 이주민이 시혜 대상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의 한 주체로서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매우 자랑스럽다"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정의당이 준비한 공약은 입법·특위 설치 등 특히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심 대표는 이날 "국내 거주하는 이주민이 250만 명,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는 750만 명으로 약 1천만 명에 달하고 있다, 재외동포와 국내 체류 외국인은 모두 동일한 '이주민'"이라며 "국회에 '이주사회전환특별위'를 설치하고, 정부에 이주민 전담기구를 설치하겠다. 이민법을 제정해 '이주사회 전환'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제결혼이 늘어남에 따른 이주여성 지원정책도 마련했다. 심 대표는 "국제결혼 이주민 특성에 맞는 생애주기형 정책을 마련하겠다"며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특화된 취업훈련을 강화하고, 언어나 문화 등을 특화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해 자립생활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가정폭력이 빈번히 발생하는 점을 겨냥했다. 심 대표는 "결혼중개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중개업 피해 여성을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해 체류 및 취업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다문화여성·아동 대상 공약..."다문화가족 지원할 컨트롤 타워 구축"
다문화가정 아동을 위한 지원책도 눈에 띈다. 심 대표는 "18세 이하 다문화 아동은 25만 5천 명에 달하지만(2018년), 지원 프로그램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치권에서 다문화자녀를 지원할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겠다, 자녀 대상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인식 개선을 위한 콘텐츠를 개발해 적극적으로 보급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정의당은 그 외에도 ▲취업한 이주여성의 성폭력·성희롱 피해 예방을 위한 사업체 성평등 의무 교육 및 피해자 치료·법률 지원 제공 ▲일정한 요건 충족 시 노동비자 영주권을 부여, 이주노동자의 안정적 체류와 기본권 보장 체계 마련 ▲2018년 기준 3.8%에 불과한 난민 인정률 고려, 수년간 난민심사 지체 시 '인도적 체류허가자' 가(假)인정 등 난민제도 재정비 ▲재외동포의 지위·권리 등이 담긴 '재외동포 기본법' 제정 및 재외동포청 설립 등을 공약했다.
심 대표는 "최근 중국에서 전세기를 타고 귀국한 우한 교민들이, '국가가 있어 감사하다'며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고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라며 "1천만 이주민·재외동포의 손닿는 곳에 대한민국이 있도록 하겠다, 내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대한민국임을 정의당이 보여 드리겠다"라고 덧붙였다. 정의당 이주민인권특위는 이번 총선에서 귀화자 약 25만 명이 투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심 대표 공약 발표 뒤 비공개로 전환해 이주민 지원에 대한 정책간담회를 이어갔다. 이날 현장에는 박원석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이주여성단체 안나 쿠수마씨, 보리스 온도 아프리카유스포럼(The African Youth Action Forum) 대표, 배정순 다문화언어강사연합회 대표, 검비르 한국다문화청소년협회 이사, 한국필리핀협회 머시하체로 대표, 이주여성유권자연맹 이경숙 대표, 한국문화다양성기구 박지영 위원 등 12개 단체 20여 명이 함께 했다.
한편 개방형 시민참여 제도를 운영 중인 정의당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정의당 시민선거인단 모집을 완료했다. 정의당 대변인실에 따르면 19일 오전 현재 잠정집계한 시민선거인단은 10만여 명의 일반시민, 비당권자 당원 2만 2천여 명 등 약 12만 명에 이른다.
19일 현재 정의당 비례 후보에 출마한 이들은 총 38명이다(홈페이지 등록기준). 후보 등록은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며, 이들은 29일까지 선거운동 진행 뒤 현장·온라인·ARS투표를 거친다. 최종 후보는 3월6일 결정돼 발표된다. 이들은 당내 무지개배심원단의 정책검증을 1차로 거친 뒤, 시민선거인단 투표(30%)와 당원 투표(70%)를 통해 최종 순번이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