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간호사의 얼굴로 환자의 피가 튀었다. 코로나19 의심환자가 본인 팔에 꽂힌 주사바늘을 뽑아버리면서 발생한 돌발 상황이었다. 바닥에는 이미 환자의 피가 흥건히 떨어져 있었다. 현장에 있던 간호사는 어떤 보호구도 착용하지 못한 채 눈앞의 상황에 뛰어들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혈을 마쳤지만, 간호사의 흰 옷 곳곳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이후 간호사는 병원에 본인의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병실 내 CCTV 설치를 강화하겠다'는 답이었다. 의심환자의 피를 묻힌 간호사에겐 어떤 검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 응급실에 비상이 걸렸다. 이곳에 입원했던 환자가 코로나19 확진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병원은 당시 해당 환자를 직접 돌본 의사·간호사들을 '밀접 접촉자'로 분류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검사 대상에는 해당 환자와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의사도 포함됐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달랐다. 의사와 달리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은 간호사들은 약 20만 원의 돈을 내고 따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차별적인 조치였다. 이 방침을 들은 한 간호사는 속상함과 불안함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 아이의 엄마였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가 지난 2월에 겪은 일이다. A씨는 "저희 병원은 대외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평을 받는데도 내부 실상은 이렇다"라고 말했다. A씨와의 전화 인터뷰는 지난달 27일과 2일, 6일에 걸쳐 진행됐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 해당 병원에서 의료진 간의 차별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다.
"지난달에 있었던 일이다. 병원 응급실에 있던 환자가 코로나19 확진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그가 확진자라는 것을 몰랐던 의료진들은 보호장구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진료를 봤다. 결국 확진자임이 밝혀진 후 병원은 CCTV로 동선을 파악한 뒤 의사와 간호사들을 밀접접촉자로 분류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여기서 의사와 간호사 간의 차별이 발생했다는 거다. 의사들은 접촉력이 없는 사람까지도 모두 검사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아니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은 간호사들은 검사 대상에서 배제됐고, 각자 20만 원 정도를 내고 따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같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의 안전을 놓고 병원이 차별적인 대우를 한 것이다."
- 당시 배제된 간호사들 반응은 어땠나?
"되게 불합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일 의료진 가운데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은 간호사들도 감염됐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함께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할 때 비말이 전파될 수 있다. 그래서 되도록 병원에서 응급실 내부 의료진 모두를 검사해줬으면 했는데, 여기서 다수의 간호사들만 배제된 거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병원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 최근 병원이 이 사안과 관련해 입장을 바꿨다고 들었다.
"그렇다. 내부에서 계속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원하는 직원들 모두 선별진료 받을 수 있게 바뀌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사건이 발생한 지 한참 지난 후에야 이뤄진 것이다. 정작 간호사들이 불안함을 호소했을 땐 어떤 조치도 없었다."
- 근무 현장은 어떤가?
"인력도 물품도 부족한 게 많다. 그래서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때가 종종 생긴다. 며칠 전에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코로나19 의심환자가 속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약을 투여하러 가는 길이었다. 환자가 있는 곳에 들어가기에 앞서 보호 장구를 입으려 하는데, 안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한 거다."
- 어떤 상황이었나?
"환자가 팔에 꼽혀 있던 주사바늘을 스스로 뽑아 버렸다. 본인을 왜 코로나19 환자 취급하느냐면서 난리가 난 거다. 환자 팔에서는 피가 심하게 나고 있었다. 바닥까지도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어떤 간호사가 저 상태인 환자를 놔두고서 보호 장구 다하고 들어갈 수 있겠나. 결국 보호 장구 없이 환자를 지혈하기 위해 곧장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당시 그 환자가 위험성 높은 의심환자였다는 거다. 기침도 하고, 발열도 높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환자는 추후에 음성판정을 받았다."
- 당시 상황은 음성판정이 나오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병원 측에서 본인에게 검사를 비롯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 게 있었나?
"전혀 없었다. 검사도 진행된 게 없었다. 환자가 확진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사건 직후 병원에 이 상황을 말했지만 'CCTV 설치를 강화하겠다'라는 두루뭉술한 대답만 돌아왔다. 물론 이걸 계기로 코로나19 환자 대기실에 CCTV가 설치되긴 했지만 이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환자 대기실에 CCTV를 달더라도 이런 응급상황에는 대처가 불가능하다. CCTV를 보고 방호복을 입고, 이후 환자 병실로 내려가서 대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대안은 이 공간에 보조 인력을 배치하는 거다. 의료진들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인력이라고 생각한다."
물품 재사용도 문제
- 현재 업무의 강도는 어떤가?
"응급실은 본래 업무 강도가 센 부서인데, 이전보다 최소 2배는 업무 강도가 늘은 것 같다. 최근에는 새벽 4시가 다 돼서야 퇴근했다. 본래 밤 근무는 11시 퇴근이다. 이 상태에서 레벨D 방호복까지 착용하고 현장 업무를 하는 게 가장 힘들다."
- 레벨D 방호복을 입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우선 한번 입으면 진이 다 빠진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된다. 여기에 N95 마스크를 쓰고, 페이스 쉴드까지 하면 답답함이 크게 느껴진다. 방호복을 입으면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간다. 그래서 베테랑 선생님들도 레벨D 방호복을 한 시간 가량 입는 게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숙련이 안 된 간호사들도 이 옷을 장시간 입고 있어야 한다. 이걸 입고서 인공호흡기를 달 때 관을 삽입하는 것과 같은 정교한 작업을 한다. 이게 정말 어렵다."
- 이밖에 다른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레벨D 방호복 구성품의 일부를 재사용하는 것이다. 고글, 페이스 쉴드 같은 게 대표적이다. 병원에서는 '비말 같은 게 튈 것 같지 않은 상황에는 이 제품을 쓰지 말라'고 했다. 물품이 부족하니 최대한 아껴 쓰라는 의미다. 근데 만일 환자한테 갔을 때 갑자기 피가 튀거나 재채기, 기침을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건가.
하지만 병원 측의 입장을 들은 상태에서 우리 간호사들이 먼저 보호 장비를 하겠다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저희 병원은 대외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평을 받는데도 내부 실상은 이렇다. 다른 병원은 좀 더 열악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