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1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한 지 9년이 되는 날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활동이 중단되거나 축소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9주기 기자회견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3월 11일이면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이 벌어지고 탈핵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서울에 모여 탈핵 퍼레이드를 개최하곤 했습니다. 대구는 '핵없는세상을위한대구시민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에서 탈핵 기자회견을 진행해 왔으나 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데 동참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무인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여러 명이 한 곳에 모일 수 없지만 탈핵의 뜻을 되새기는 일은 거를 수 없기에 고육지책을 쓴 것입니다. 코로나19가 빚어낸 진풍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핵없는세상을위한대구시민행동'은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운동단체로 핵발전의 위험성을 깨달은 개인과 단체가 연대하여 매달 탈핵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무인 기자회견인데도 후쿠시마 9주기를 기억하려는 여러 개인과 단체들이 연대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
지금도 후쿠시마에는 녹아내린 핵연료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뿜어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를 부정하며 원자로를 식힌 물을 바다에 방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20 도쿄올림픽 성화봉송과 경기진행을 후쿠시마에서 진행하고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선수촌에 공급하겠다고 합니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의 최고 단계인 7단계에 해당하는 아주 큰 사고였습니다. 체르노빌 이후 최대규모의 사고였기에 전 세계는 핵발전의 위험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일본과 근거리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직간접적인 피해가 컸습니다. 당장 일본에서 들어오는 농수산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2011년 3월 11일 이후 지금까지 9년을 불안에 떨며 살고 계십니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나기 전만 해도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홍보하는 대로 핵발전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가 인 줄로만 알고 있던 주민들은 혹시 모를 건강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2015년 11월 월성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에 '체내 방사성 물질 피폭 정도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검사대상 주민 40명 전원의 몸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되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황분희님의 어린 손자의 몸에서 나온 삼중수소 농도가 한 집에 살고있는 어른들보다 더 높았다는 것입니다. 사랑스런 손자가 방사능에 피폭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황분희님은 하루라도 빨리 이사를 가고 싶어 알아보았지만 핵발전소 인근 지역이라 집이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떠나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황분희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수원과 정부를 상대로 이주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농성을 하고 계십니다. 황분희님의 안타까운 사연은 지난해 '월성'이라는 이름의 다큐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31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전국민이 불안한 삶을 산 지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상가들은 영업을 중단했으며,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고, 학생들은 학업을 쉬고 있는 상황입니다. 치사율이 높지 않은 질병인데도 전파속도가 빨라 전국이 얼어붙어 있는 지금, 그래도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서로 응원하는 마음과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후쿠시마와 같은 핵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도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얻을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핵사고는 한번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장기간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합니다. 아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혼란과 고통이 될 것입니다.
굳이 핵발전 사고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중단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핵발전소 인근에 사시면서 매순간 방사능에 노출되는 삶을 살고 계신 황분희님을 봐도 그렇고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기술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기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40년간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곳을 마련하지 못한 채 핵발전소만 늘려왔습니다. 사용후핵연료는 미래의 과학기술에 맡긴 채 말입니다.
지난 2월 5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가 2035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50%이하로 줄이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는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 추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핵산업계와 학계, 보수 언론, 제1야당이 앞장서서 정부의 탈핵기조를 흔들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탈핵정책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겨우 탈핵을 선언한 정부를 맞이한 상황에서 후쿠시마 핵사고를 남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정부의 탈핵기조를 흔드는 자들이 승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만해도 끔찍하지만 그들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영영 탈핵할 기회를 잃은 채 영원히 시한폭탄을 안은 채 계속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불안을 원치 않는다면 후쿠시마의 교훈이 우리 자신의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핵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루 빨리 탈핵합시다.
덧붙이는 글 | 김민조 기자는 핵없는세상을위한대구시민행동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