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상담사 다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콜센터 직원들의 안전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콜센터 상담사 긴급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서울의 한 대기업 콜센터 상담사 A씨가 13일 직장갑질119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직장갑질119의 동의를 얻어, A씨의 편지를 공개한다. [편집자말] |
저는 서울 용산에 있는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당 90cm 정도의 좁은 책상을 칸막이를 세워 다닥다닥 좁게 붙여 놓아 닭장 같습니다. 뒷사람과의 간격도 너무 좁습니다.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려면 의자를 꼭 책상 쪽으로 밀어야 다닐 공간이 생깁니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옆 사무실에 코로나 의심 환자가 생겨서 검사받고 격리중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또 최근엔 동료의 가족이 코로나 검사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는데, 이를 제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구로가 먼저 터진 것뿐이지, 콜센터 중에 터질 곳은 여기저기입니다. 환기도 안 되는 곳에 좁은 책상 배열, 마스크 착용하고 일하기 힘든 업무 특성을 비롯해 위생 또한 문제입니다. 건물에는 저녁마다 소독한다고 쓰여 있지만 사실 지난달에 딱 한번 소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월 11일 오후엔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콜센터 자리 배열을 한 칸씩 건너 앉으라 하셨다던데 저흰 그러지도 못했고요. 언론이 보도하고 나서야 갑자기 마스크 끼고 업무하라는데 진짜 어이가 없었습니다. 최저시급 받고 일하는 상담사들에게 '금값'인 마스크 제공도 안 해주면서, 마스크 끼고 일하라고 공지를 하네요.
마스크 쓰고 일하게 하면 괜찮은 걸까?
콜센터 특징상 마스크 쓰고 일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언어전달도 힘들고, 숨이 가쁘기 때문입니다.
마스크 끼고 일하면 먼저 마스크 안의 코와 입이 더워지고, 1시간 이상 통화하면 마스크가 축축해지면서 피부까지 쓰리고 따가워집니다. 본인 입 냄새에 숨까지 차서 일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원청사에서 고객에게 안내돼야 하는 스크립트 내용에 '마스크 끼고 일하니 양해해달라'는 멘트까지 심어놓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짓이죠.
현재 저희 상담원들은 엘레베이터에서 8시간이상 일하고 있다고 봐야하죠. 구로가 시작일 뿐이란 생각이 대부분 상담원들의 생각이에요.
팀장 이상들은 전화 업무를 하지 않기에 이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마스크 끼고 일했어요. 최근까지 상담사들에겐 마스크 벗고 '콜' 하라고 공지했었어요. 그런데 3월 11일 원청사에서 나와서 결국은 마스크 끼게 만드네요. 상담사들도 마스크 끼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너무 좋죠. 누가 모릅니까, 마스크가 최소한의 '지킴'이라는 걸. 하지만 업무가 마스크를 끼고 일하기 힘든 업무인 걸 뻔히 팀장급 이상들도 알잖아요. 원청사인 대기업이 시키는 대로 '끽'소리 못하고 소모품 취급당하는 상담사만 죽도록 고생이네요.
상담사들은 숨 쉬며 일하고 싶어요. 마스크 너무 비싼데, 쓰고 나면 축축하고 냄새나고 숨이 가빠요. 콜센터의 고질적 문제 꼭 점검해주시고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았으면 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들 출근은 합니다. 오늘은 피했지만 내일은 내가 확진자가 될 수 있단 생각에 출근길이 무겁고 무섭습니다.
부디 전염병 전파를 막을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이 기회에 콜센터 도급문제와 도급사와 원청사의 갑질 행태가 바뀌길 바라며 편지를 보냅니다.
[직장갑질119 설문조사] 콜센터 상담사 97.7% "닭장근무 코로나 전염에 위험" |
콜센터 상담사 다수는 '비좁은 근무 환경이 코로나19 전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이들 다수는 현재의 업무 환경이 "전혀 안전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직장갑질119'가 13일에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다. 설문은 3월 11일부터 12일까지 상담사 1565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 가운데 97.8%(1530명)의 콜센터 상담사가 "비좁은 업무공간이 코로나19 전염 위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또한 67.2%(1052명)는 "(업무 환경이)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답했다. 85.6%(1340명)는 "직장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라고 했다.
절반 이상의 콜센터 업체들은 상담사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56.9%(891명)의 콜센터 응답자들의 답이다. 또, 85.5%의 상담사는 회사가 코로나19 예방차원의 키보드 소독용 알코올 솜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코로나 예방을 위한 조치로 '재택근무 전환'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2.9%(671명)로 가장 많았다. '마스크, 손세정제, 체온감지기 등 코로나19 보호장비 지급이 필요하다'는 응답 42.3%(662명), '1m 간격 상담 공간 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 32.6%(510명)이 뒤를 이었다.
'직장갑질119'와 '콜센터119'는 13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콜센터 업체와 정부에 <코로나19 집단감염 예방을 위한 콜센터 상담사 긴급 10대 요구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콜센터 업체에 대해서는 ①추가공간 확보·순환유급휴가·재택근무 실시를 통한 안전거리를 확보 ②휴게시간·휴게공간 확보, 휴가사용 보장 ③고객사(원청사) 코로나19 예방 자금지원 및 예방조치 실시 ④고객사(원청사) 고객 불만 감수 ⑤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들은 정부에 ①콜센터 사업장 특별고용지원업종 선정 ②원청 책임에 대한 지침 배포 ③코로나19 예방 특별근로감독 ④연차휴가, 가족돌봄휴가 보장 ⑤고객사 직접 고용, 불법파견 금지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 강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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