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햇볕이 뜨겁다. 마스크를 끼고 달리니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정말 봄이다. 어플을 보니 집에서 10분쯤 걸리는 거리의 약국에 마스크 재고가 있다고 떴다. "엄마, 마스크 사러 간다"는 말만 급하게 남기고 애들을 집에 둔 채 옷을 걸치고 나왔다. 몇 년을 살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약국이었다.
지도를 따라 근처까지 왔는데 약국을 찾지 못하겠다. 아까는 재고량이 보통으로 떴었는데 부족으로 바뀌었다. '앗, 이런. 못 살 수도 있겠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같은 곳을 두 세바퀴 돌다가 건물 안에 약국이 있는 걸 발견했다. 약국에 도착 했을 땐 이미 늦었다. 재고 없음.
허탈한 마음에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재고 있다는거 보고 뛰었는데 그새 다 팔렸대. 흑흑" 내가 슬펐던 건 또 다른 약국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내 시간을 잡아먹혀야 한다는 것이였다.
사실 나는 이렇게 약국을 찾아가며 마스크를 사야 할 만큼 마스크가 필요 없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휴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출근해야하는 신랑은 입장이 달랐다. 밖에 나가려면 마스크가 필요하니 마스크 사는 걸 중요하게 여겼고, 마스크를 아꼈다. 내가 마스크를 사려고 뛰었던 건 일회용 마스크를 하루만 쓰고 버리지 못하는 신랑을 위함이 컸다.
다행히 얼마 안 떨어진 약국에 재고가 떠서 운 좋게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스스로 검색해서 줄까지 서서 마스크를 산 건 처음이라, 움켜쥔 마스크가 더 귀해 보였다. 신랑에게 자랑 인증 샷. 신랑의 칭찬을 받았다. 마스크를 사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신기한 풍경.
집에 와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가톨릭 여성회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마음 무료급식센터에서 코로나로 인해 무료급식을 못하고 있다고, 빵과 우유로 대체하고 있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였다.
휴직을 하면 무료급식센터에서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몸으로 하는 봉사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할 수 있다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설거지 봉사를 해야지 했는데 코로나로 한없이 미뤄졌던 것.
휴직을 해서 돈이 부족하다. 아, 부족한 걸로 도움을 줘야 하다니. 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신랑과 의논해서 결정했다. 조금 더 아끼고, 얼마간 보탬이 되기로. 큰돈을 척 기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형편도 넉넉하지 못하니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했다. 아이들과도 의논해서 기부 몫으로 떼어둔 용돈을 기부하기로 했다.
대구에서 한참 코로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던 시점에, 대구에도 약소하지만 얼마를 기부했었다. 유명한 사람들이 얼마를 기부했다,는 걸로 여러 말이 많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나는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경계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행동들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꼈고, '우리'로 뭉친 대한민국을 느꼈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은 거리에서 사람들을 몰아내고 재채기만 해도 얼굴을 찌푸릴 정도로 사람들과의 간격을 멀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이 전염병을 이겨내리라 생각한다. 내게 가장 가까운 우리 신랑에서부터 얼굴도 모르는 분들까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그 마음들이 퍼져나가 이 전염병을 막아낼 수 있기를. 그래서 마스크없는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