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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30일, 김해의 한 초등학교에서 화재 시 화염과 연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화셔터가 시설 담당자의 실수와 조작미숙으로 내려왔고, 계단을 오르던 학생이 방화셔터에 목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피해자는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목이 방화셔터에 눌리면서 이미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손상이 발생한 상태였으며, 수개월간 의식 불명 상태이다.

피해자는 다른 곳도 아니라 가장 안전해야 하는 학교에서 안전을 위해 설치된 시설에 의해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학교 안전 시설들의 노후화, 관계자의 안전 의식 부족, 치료 및 간병비 보상 등의 사회 전반적인 안전 문제가 다시한번 수면위로 떠올랐다.

특히, 학교안전공제회의 치료비 등 보상지급 범위가 매우 좁아, 피해자에게는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나 간병에 따라 발생하는 부대비용을 피해자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했고 이는 각종 모금운동 등으로 이어졌으며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일부 개정안이 발의 되기도 했다.

이 사고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고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한가지의 사고 원인이 있다. 안전을 우선시 했더라면 방화셔터가 해당 사고 장소에 설치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안전 보다 공간 활용도를 더 우선시 한 건축 설계 및 시공 관행, 허술한 법 제도가 이 사고의 또다른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안전은 뒤로 밀린 설계,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

국내 수많은 건물에는 방화구획(화재 확산 방지를 위해 내화 구조의 벽, 바닥, 문, 셔터 등으로 만들어지는 구획) 형성을 위해 '건축법' 등 관련 규정에 의거하여 연면적 1000㎡ 마다, 그리고 계단 출입구 등에 방화문이나 방화셔터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으며 사고가 발생한 초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복도나 계단 등에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피난 통로에는 방화셔터 대신 방화문을 설치해야 화재 대피 시 누구나 쉽게 신속히 문을 밀어서 열고 대피할 수 있다. 

하지만, 방화문은 항상 닫아두어야 해서 통행이 불편하고, 평상 시에는 열려있지만 화재 시 자동으로 닫히는 자동식 방화문을 설치하더라도 문 자체가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평소 천장 속에 들어가 있어서 공간을 덜 차지하는 방화셔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 방화셔터에 비상 출입문이 일체형으로 설치된 형태이다.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방화셔터에 비상 출입문이 일체형으로 설치된 형태이다. ⓒ 정재성
 
피난 통로에 설치하는 방화셔터는 셔터가 내려와도 사람이 대피할 수 있도록 셔터 일부를 잘라서 비상문을 만들어 놓는다. 방화셔터에 비상문이 설치되어 있는 일명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는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화재 시 정전 또는 연기로 인해 시야 확보가 불가할 경우, 셔터에 설치되어 있는 문을 찾는 것이 어렵고 문과 셔터 사이에 틈이 발생해서 연기나 화염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에도 방화셔터 앞에서 대피하지 못하고 약 10명이 사망하여 수년간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에 발생한 틈 경첩 및 문 사이 등에 틈이 발생하여 화염과 연기를 제대로 차단할 수 없다.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에 발생한 틈경첩 및 문 사이 등에 틈이 발생하여 화염과 연기를 제대로 차단할 수 없다. ⓒ 정재성

또한, 국토교통부 고시에는 방화셔터의 일체형 비상문의 개폐력이 133N(뉴턴)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어린이나 노약자 또는 장애인 등 재난약자가 방화셔터 일체형 비상문을 개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자동방화셔터 및 방화문의 기준'에서는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는 방화문을 설치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건축 설계 시 방화문을 설치할 최소한의 공간도 남기지 않고 설계하여 수많은 건물들이 '부득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부득이한 경우'의 구체적 정의가 없어서 '피난 용이성' 보다 '공간 활용도'를 우선시하여 방화문 대신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9월 발생한 초등학교 방화셔터 사고도 계단에 설치되어 있던 '비상문 일체형 방화셔터'가 내려오면서 발생한 사고이다. 사고 현장 사진을 보면, 해당 장소는 방화문을 설치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하여 방화셔터를 설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건축 설계 단계에서부터 화재 시 재실자의 피난 용이성을 공간 활용도 보다 우선시 했다면, 방화셔터 대신 방화문이 설치되었을 것이며, 등교하던 초등학생이 방화셔터에 깔리는 사고도 없었을 것이다.

소방 안전 선진국, 방화셔터 대신 방화문

전 세계에서 복도나 계단 등 사람이 통행하는 피난 통로에 방화셔터를 설치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안전 선진국들은 복도 등 사람이 통행하는 피난 통로에는 방화셔터 대신 방화문을 설치한다.
 
독일의 한 건물에 설치된 대형 자동 방화문 복도가 넓어서 방화문 설치 시 공간을 많이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방화셔터가 아니라 방화문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의 한 건물에 설치된 대형 자동 방화문복도가 넓어서 방화문 설치 시 공간을 많이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방화셔터가 아니라 방화문이 설치되어 있다. ⓒ 정재성
 
이는 내부 면적이 넓어서 방화문이 공간을 많이 차지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공간 활용도나 편의성 보다 안전이 더 우선이기 때문에 건축 설계 단계에서부터 방화셔터 대신 방화문을 설치하도록 설계하고 방화문을 철저히 관리한다. 이 경우,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 방화문이 자동으로 닫히거나 평소 방화문이 닫혀있고, 거주자는 방화문을 손이나 몸으로 밀고 대피하기만 하면 된다. 또한, 평소 오작동으로 인해 방화셔터에 사람이 깔리는 사고는 발생할 수 없다.

편의성보다 안전이 우선이어야 또 다른 사고 막는다

지난해 9월 30일 발생한 초등학교 방화셔터 사고 또한, 학교 건축 설계 당시부터 편의성과 공간 활용도 보다 안전을 우선시 했다면, 사고 피해자는 지금쯤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소중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너무나 어이없는 이유로 누군가가 다치고 소중한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어른들의 편의 우선 주의에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안전 불감증과 편의 우선주의에 대한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다.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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