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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신문명을 영접했다. 이름하여 '화상 회의'. 앱 '줌'을 통해 연결되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전혀 모른다. '디지털맹'의 숙명이다. '디지털 이민자'는 온갖 정보가 디지털화되는 이 난국에서 속수무책이다. 정부에서 일괄 전송하는 재난문자만이 디지털 이민자 정보권의 전부다. 내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재난 기본소득에 외국인 이주민들이 겪을 소외가 선뜻 다가온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등장하는 화상회의는 정부 수반 등의 권력자들이 펼치길래, 나 같은 일개 시민이 무슨 화상회의할 일이 있을까 했는데, 있지 않은가. 비록 그들처럼 대형 모니터를 설치하지 못한 채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의지해 벌이는 화상회의지만, 여하튼 화상은 화상이니까. 어디 그들만이 중한 일이 있겠는가. 보통 사람들도 화상회의까지 해야 할 긴박하고 중한 일이 많다.

코로나19로 모임을 갖지 못하는 게 장기화되자, 참여하는 시민단체도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꼭 처리해야 할 안건들이 있는데, 사태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한 멤버가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화상회의. 응? 그런 것을 우리가? 낯설기는 다들 마찬가지였지만, 회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자, 특단의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아님에도 방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멤버 중 그나마 진보한 '기술 요정'이 있어 화상회의 앱 줌을 열었다. 그러니까 기술 요정 말고 나머지 멤버는 실상 이 과정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저 초대받았을 뿐이다.
 
 나 같은 일개 시민이 무슨 화상회의할 일이 있을까 했는데, 있지 않은가.
나 같은 일개 시민이 무슨 화상회의할 일이 있을까 했는데, 있지 않은가. ⓒ unsplash
 
첫 번째 화상회의를 할 때는, '이게 정말 되는 거야?' 하며 수런대다 얼떨결에 입장해 회의가 진행됐다. 기술 요정 말로는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데, 기우였다. 아니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문제는 두 번째 화상회의 때 일어났다. 이번에는 마이크가 안 켜지네, 비디오가 안 나오네 하며, 이십여 분을 소요하고서야 다들 입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면 더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디지털 기기 최적화 적응은 밀레니얼의 전유물인가.

열 명이 참여하는 회의도 이런데, 거의 삼십 명에 달하거나 넘을 학교의 화상 수업이 원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화상 수업 다음 날 신문을 보니, 안 들린다, 졸린다, 집중 안 된다 하며 학생들의 불만이 적지 않던데. 호불호가 갈렸지만 불호가 더 승한 듯. 내 화상회의 경험을 묻는다면, 나도 '불호' 쪽이다.

화상 회의는 신기하고 편리한 신문명임에 틀림없지만, 거리껴지는 것도 있었다. 우선 화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배경이 노출되어 사는 공간이 드러났다. 내 경우 첫 회의 때는 딸아이의 방 책상에 앉아 했는데, 책상 뒤가 벽이라 공간 배경이 없어 아주 딱이었다.

반면 다른 멤버들의 경우, 나처럼 막다른 벽 배경이 아니고선 공간이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자기만의 방을 가질 턱이 없는 엄마들의 공간이라야 고작 주방 아니겠는가.

멤버들 화상 뒤 배경에 드러나는 주방 풍경을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도려내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어쩔 수없이 보게 되었다. 어머, 저 집 밥솥은 내가 쓰는 브랜드랑 똑같네. 어머, 저 집 커피 머신 신형이네. 어머, 저 집 정수기는 못 보던 모델인데... 떡 하니 자기 방이 있었으면, 멤버들도 벽면 배경으로 우아할 수 있었는데, 스타일 구겨지네.

갑자기 이 생각이 스치자, 두 번째 회의 때는 장소를 고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코로나19로 딸애가 돌연 해외에서 입국하는 바람에 방을 빼앗긴 나는, 어디가 그나마 공간 노출이 덜될까 살짝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잠깐 근처 카페를 갈까 했는데, 아차, 나 자가격리 중이잖아. 으흐...

겨우 물색한 게 결국 주방 식탁. 메일로 받은 회의 자료를 보려면 노트북을 펼쳐야 하니, 밥상이든 책상이든 상이 있어야 해서 하는 수 없었다. 최대한 주방 풍경이 덜 나오는 자리를 잡고서야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게 참 묘했다. 사실 멤버들 모두 낯선 사람들도 아니고, 집으로 초대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사이인데, 이상하게 불편했다.

'뉴노멀'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두 번째 불편함은 역시 소통이었다. 스마트폰 작은 화면에 네 명까지 배치되는데, 우리는 총 열 명이라 세 개의 화면으로 분리 배치됐다. 쪼개져 있는 화면을 터치해 옮기며 발언자의 말을 듣자니 불편했다. 한 화면에 네 명만 보이기 때문에, 발언자의 발언을 들을 땐, 나머지 여섯 명은 볼 수 없게 된다.

대면 회의는 언어뿐 아니라 비음성적 언어까지 포착하기에, 참여자 각각의 상태를 확인하며 때로는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기도 하는데, 안 보이니까 포착되지가 않았다. 계속 터치해서 보면 되지 않느냐고? 해보시길. 자꾸 하다 보면 발언에 집중하기 힘들고, 매번 넘겨가며 멤버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화면에 참여자 얼굴이 다 나온다 해도 작은 모니터를 통해 속내를 포착하기란 그리 용이하지 않을 듯하다.

발언의 순서도 대면 회의처럼 눈치 봐가며 할 수가 없다. 미리 손들고 의사표시를 해야 했는데, 사인이 안 맞아 동시에 발화할 땐, 마치 말다툼하는 형국으로 소란해졌다. 안건을 통과시킬 때에도 처음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매번 살피기 힘들어 나중엔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 들어 올렸다. 초문명 디지털 화상 회의를 매우 비디지털스럽게 하게 됐다고 할까.

발화로 한꺼번에 동의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럴 수는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처음엔 모두 마이크를 켜놓고 진행했다가 생활 소음이 얼마나 잡스럽게 크게 들리며 거슬리던지 정말 '공해'였다. 그래서 발언자만 마이크를 켜기로 규칙을 정했기에, 대면 회의장처럼 안건 찬성 의사 표시를 찬성합니다, 동의합니다, 좋습니다 등 동시에 웅성일 수가 없는 것이다.

차츰 적응은 됐지만 대면의 긴밀함이 누락되고 있었다. 문득, 웃기는 상상을 해봤다. 우리 멤버 중엔 욱하는 사람이 없지만, 욱하는 멤버들이 있거나 많을 경우, 그 화상회의는 어떻게 돌아갈까? 맘대로 발언을 독점할 수 없는 체계니 성질에 못 이겨 휴대폰을 집어던지거나, 이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은 울그락불그락하다 '나가기'를 눌러버리려나? 후훗, 진풍경이 펼쳐질 듯. 한마디로, 성질 급한 사람은 그 성질부터 죽여야 신문명을 영접할 수 있다. 나도 혼났다. 참는 자여, 신세상의 세례를 받을지어다.

세 번째 불편함은 집중력 저하였다. 화상회의 시에는 집중력 저하에 효과 있다는 드링크를 준비하는 게 좋다. 이 화상회의라는 게 미묘하게 딴짓이 가능했다. 잠깐 화면에서 사라진다고 무슨 일이 나는 것은 아니고 소리는 계속 들을 수 있기에,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딴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집중력이 떨어져서 딴짓을 하는 건지, 딴짓을 할 수 있어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지는 헷갈린다.

게다 공간이 집이다 보니 주부의 습관을 털지 못하고 잡일을 하게 된다. 본격적 가사노동은 힘들지만, 잠깐 쌀을 씻거나 세탁기를 돌리게 된다. 마침 우편이나 택배라도 올라치면 냉큼 받게 되고, 화상으로 하다 보니 대면 회의보다 졸리고 지루해서 주전부리를 하게 된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여성의 재택근무란, 가사노동과 노동의 하이브리드라는걸. 거칠게 말해, 가사노동과 직장 노동이 혼종돼 여성을 이중으로 착취하는 형태라는 걸.

화상 회의를 집중력 있게 진행하려면, 자리 뜨지 않기 규칙이 필요할 듯. 이제 화상 회의 매뉴얼도 속속 등장할 것이다. 귀만 열려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멀티 수행은 효율적인 거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다. 다만 화상 회의의 질은 정서의 누실로 꽤 떨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뜻하지 않은 역병으로 새로운 생활 패턴을 만들어 내고 익숙해져야 하는 지금, 인류는 '뉴노멀'에 적응할 새 매뉴얼을 고안 실험 중이다. 모두 선전해 주기를 바란다. 다만 어떤 경우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함께 고안됐으면 한다. 새 환경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이 신세계에,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이 어려운 소외되는 많은 이방인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 위기의 AD(After Disease)시대에 살아남을 것인가. 나는 공생하는 인류라 생각한다.

#화상회의#코로나 생활#디지털맹#디지털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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