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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말하길,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시민의 불복종> 46쪽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은행나무/12,000원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은행나무/12,000원 ⓒ 은행나무
 
광산에서 보석을 캐듯, 정신을 들게 하는 생수 같은 문장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위대한 정신을 만나는 일입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읽는 시기에 따라,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에 다시 읽곤 합니다. 이 책은 코로나19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예정대로 치러지는 4·15 총선을 보며 다시 읽고 싶어진 책입니다. 길지 않은 이 책에서 뽑고 싶은 단 한 문장은 바로,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 "

라는 말이었습니다. 인간, 국민, 존경심, 정의는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단어였습니다.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 함석헌 등 위대한 사상가들로 이어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고전이 바로 소로우의 위대한 정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물줄기가 흘러 소로가 타계한 지 158년이 지났지만 인류의 역사는 아직도 진보의 대열이 느리게만 보입니다. 2년 전, 내가 믿었던 정치인이, 내가 응원했던 지도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깡그리 잊은 것도 모자라 인권 유린의 장본인임을 알게 된 순간의 허탈감은 단순히 인간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었습니다.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그런 권력과 힘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이 있을까' 자문해 보았습니다. 얼른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은 2퍼센트 부족한 존재라는 걸 나도 인정하는 탓입니다. 실망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이것이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하며 만났던 문장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르게 발효시킬 효모가 아니었는데 알아보지 못한 건 내탓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선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것이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 "-28쪽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교육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더 강해지고 깊어짐을 느꼈습니다. 어찌 보면 교육은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을 길러 세상을 바르게 발효시킬 인간을 양성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완벽한 인간, 완전한 인간은 없지만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를 길러내려고 노력하는 일이 교육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니 힘이 생겼습니다. 책을 덮으며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깊은 숨을 몰아쉽니다.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을 전부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42쪽

부당한 권력에 반항할 수 있는 용기,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되는 일을 당했을 때 소로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나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미투 운동은 보여주었습니다. 내 일이 아니니까, 귀찮으니까 침묵하는 다수의 방관자가 실은 가장 무서운 동조자입니다. 세상은 저절로 정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정화되고 치유되지만 인간 사회는 결코 자정 능력이 없습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소수의 위대한 정신들이 샘물을 파내어 물줄기를 이루어야 정화됨을 보여준 소로우에게 다시금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원칙에 따른 행동, 즉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사물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과거에 있던 것들과는 완전하 다른 것이다. 그것은 국가와 교회를 갈라놓으며 가족을 갈라놓는다. 심지어 한 개인조차도 갈라놓는다. 즉 한 개인 속에 있는 '악마적 요소'와 '신적인 요소'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35쪽

법에 대한 존경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 -41쪽

아마도 이 문장을 읽은 간디가 비폭력 저항운동을 하며 감옥을 당당하게 찾았을 것입니다. 이 나라의 많은 민주투사들에게도 용기를 준 문장이었을 것입니다. 소수의 위대한 영혼이 세상의 물줄기를 바꾸는 샘물이 될 수 있도록 물길을 낼 용기를 얻는 힘은 선한 의지를 가진 덕분입니다.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교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가 가난했을 때 품었던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44쪽 

이 문장은 숙제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물질적인 부자는 아니지만 정신적인 부자는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난했을 때 품었던 계획은 불완전했지만 이미 끝났기 때문입니다.

저의 계획은 가난하고 연로한 부모님을 제 힘으로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공부를 했던 목적은 그것이었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겠다는 소망.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안 무남독녀로서 그 일을 기쁘게 감당했습니다.

좀 더 오래 사셨다면 더 잘 해드릴 수 있었는데 그것이 평생의 한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그 숙제를 찾아나서야 함을 깨우쳐 준 그 문장 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남은 인생의 숙제를 받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책은, 고전은 이렇듯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 생각의 정원을 헤집어 놓는 매력이 있습니다. 잊고 있었던 삶의 화두를 깨우쳐주는 스승입니다. 제 생각의 정원에 새로운 씨앗을 품게 한 위대한 영혼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잃어버린 봄을 보내며 힘들고 지친 우리 이웃들에게, 단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하는 의료진과 공무원, 손수 만든 마스크를 전하는 팔순 어르신처럼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이 나라를 넘어 온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역량과 저력에 한숨 속에서도 봄보다 더 큰 희망의 싹을 봅니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훌륭한 분들을 가려 뽑는 투표장에 너도나도 힘을 보태면 참 좋겠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의롭지 못한 곳에는 단 한 푼도 써서는 안 된다는 소로우의 목소리가 담긴 '시민의 불복종' 정신을 실천하는 올곧은 정치인을 기다립니다. 마스크를 쓰고, 심사숙고하여 법에 대한 존경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으로 일할 정치인을 찾아 온몸으로 투표합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교육통, 호남교육신문에도 실립니다.


시민의 불복종 - 야생사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2017)


#시민의 불복종#정의에 대한 존경심#4.15 총선#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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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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