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안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세월호 참사 등 수없이 발생하는 인재를 보며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 제도, 안전 의식 등에 대해 생각하고 안전사회 시민활동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관련 기사 :
어른들 반성하게 하는 '17세 소년'의 행동)
안전사회 시민활동가로 활동하며 사회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안전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사람들에게 비상시 대처요령과 안전 시설의 사용법을 알렸다. 많은 안전 시설들이 개선되고 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의 모순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모순이 안전 사회 구축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삼풍 백화점 붕괴 등 여러 인재를 통해 너무나 많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이러한 재난 앞에서, 수 많은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비판하고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안전이 중요하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은 동의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아파트 비상계단에 대피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자전거를 놓지 말아달라는 얘기에 "자전거 하나 정도는 대피하는데 방해되지 않아"라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변화를 이루어내지 않는다.
안전 사회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개개인의 의식 변화
많은 사람들은 '안전 사회'를 외칠 때 국가의 정책과 대응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한다. 국가 정책과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 만으로 안전 사회를 만들기에 한계가 있다.
안전 사회를 위해 핵심적인 가치는 '개개인의 안전 시민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철저한 선진 안전 정책이 있고 사고 현장에 최고 경력의 구조대원이 투입되더라도, 긴급 상황 시 현장에서 골든타임 내에 1차적인 초기대응을 해야 하는 사람은 그 현장에 있는 우리와 같은 일반 시민들이다. 이는 심정지 환자에게 최초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으면, 구조대원이 와도 뇌손상이나 사망을 막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선진 시민의식, 안전의식을 가진 선진화된 나라를 만드는 주역은 소수의 정치인들과 보다는 결국은 개개인의 국민들, 사회 구성원이다. 물론, 제도를 개선하고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법령을 제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이 틀림 없다. 하지만, 개개인의 안전 의식과 행동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안전을 위한 제도와 법령이 '안전 보장'이라는 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수 있다.
2017년 겨울, 전국에서 200만명이 넘는 국민 개개인들이 모여 부패한 정권 앞에 촛불을 들고 비리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이는 비리 대통령의 탄핵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국민'이라는 구성원 개개인들이 '나쁜 기득권이 무섭다'가 아니라,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게 '우리가 무섭지 않은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당시 촛불집회가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비폭력 평화 집회였던 것 또한 누군가의 강요나 제도에 의한 것이 아닌, 개개인들의 자발적인 선진 시민의식 덕분이었다.
이 외에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3.1운동 등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꾸고 더 나은 나라로 변화시키는 변곡점과 변화의 현장에는 언제나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향한 뚜렷한 의지와 의식이 있는 국민 개개인들이 있었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었다.
우리의 현실은? 낮은 안전 시민 의식
안전에 있어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소방시설 주정차금지'라고 쓰여진 안내표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화전 앞에 불법 주차를 하는 운전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방화문 닫아두기'라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통행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서 고정해 놓는 모습을 하루에도 수없이 목격한다.
소방시설 앞은 '신속한 사용을 위해 항상 비워 두어야 하는 공간' 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물건 적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심지어, 학교에서 소화전 앞에 물건을 적재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2년 전 쯤 모 학원에서 방화문 앞에 적재된 물건과 원래 위치에서 구석으로 옮겨진 소화기를 보고 학원 관계자에게 시정을 요청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학원 관계자는 방화문 앞의 물건은 공간이 없어서 치울 수 없으며, 구석으로 옮겨진 소화기는 원위치에 비치할 경우, 다른 물건을 놓을 때 방해가 되고 현실적으로 원위치에 비치하는 것이 힘들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이유로, '편의'가 '안전'보다 우선시 되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안전불감증이 나은 결과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전에 위협이 되기에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의성과 기타 여러 이유로 안전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안전에 있어서는 무타협 원칙 고수해야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협이 불가하고 필수적으로 꼭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 안전에 있어서도 안전 시민 의식을 바탕으로 타협하지 않는 '무타협 원칙'을 고수한다면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 화장실 출입 시 마다 문을 열고 닫는 것이 불편해도, '문을 열어놓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는 없다'라는 타협 불가능 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화장실 사용 시 문을 닫는다. 이는 문명 사회의 구성원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유동인구가 많아서 매번 문을 열고 닫는 것이 힘든 명절 연휴 휴게소에서도 동일하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건물에서, 화재 시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해 소방 법령에 따라 방화문을 닫아 놓고 사용할 것을 요청하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현실적으로 방화문을 닫을 수 없으니 현실을 이해해달라"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안전'을 경우에 따라서 '편의와 타협 가능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안전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
안전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현실적인 편의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무타협 원칙'으로 지켜나간다면, 불편해도 방화문을 닫고, 수납공간이 없어도 비상계단에 물건을 놓지 않는 선진 시민의식으로부터 비롯된 행동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한번의 대형 재난이나 사고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Living is easy with eyes closed, misunderstanding all you see."
(눈을 감고 사는 것은 편하다. 네가 본 모든 것을 잘못 이해하면서)
위 구절은 비틀즈의 노래 가사 일부이다. 일반적인 노래 가사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노래 가사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안전 불감증과 인권 침해 문제를 포함해서 많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 인권 등 우리의 삶에 관련된 많은 이슈에 대해서 눈을 감고, 우리가 봐야할 것을 보지 않는다면 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눈을 감으면, 그 사회는 변화가 없을 것이고 발전하고 진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눈을 크게 뜨고, 문제점을 제대로 직면하여 의식과 행동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면, 제 2의 세월호 참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안전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변화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2020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발생 6주기이다. 304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얼마나 노력했고 변화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제 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되어 있는지 반성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난의 결과가 참사가 될지 기적이 될지는 우리의 행동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