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 권력을 얻었다
이번 제21대 총선은 여권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전국의 많은 유권자가 지역구 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 줌으로써,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도 여전히 수구세력과 친박의 잔재로 뭉쳐있던 미래통합당을 확실하게 심판했다. 대한민국 국회의 격을 떨어뜨렸던 막말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외면받아 퇴출당했고, 민생당의 '올드보이'들도 최소한 4년 동안은 우리 국회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유권자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보여주었던 무능과 무지함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대처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현 정부와 여당이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 등과 같은 각종 개혁 입법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아가기를 유권자들은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이른바 '4+1 협의체'를 통해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겨우 넘어 이번 총선에서 최초로 시행되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번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꼼수로 무력화되었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을 도와 국회의 다양성과 대표성을 높이겠다는 입법의 취지는 휴짓조각이 되어 사라지고, 우리는 양당제로의 회귀를 다시 목격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나는 이번 선거의 결과가 비록 민주당의 승리로 분명하게 해석될 수 있음에도, 민주당이 이번 제21대 총선에서 무엇을 잃게 되었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글을 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이제 막 끝난 시점에 쓰게 되는 것에 대해, 지금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는 '지켜지지 않은 원칙'을 얘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영광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21대 총선의 비례대표 선거 결과를 보라. 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전체 국회 의석수의 60%를 차지했지만, 이번 비례대표 선거에서 60%가 넘는 투표자들은 그 위성정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런 기형적인 선거 결과를 타파하기 위해 지난 2019년 12월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가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겨우 넘었다.
비록 이 제도를 통해 국민의 표가 국회의 대표성에 온전히 반영되도록 하는 것에는 다소의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의당이나 녹색당과 같은 소수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도 자신들이 보낸 지지가 더는 사표가 되지 않고 실제로 국회에 반영될 수 있으리라는 약간의 희망을 이번 선거제 개혁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결국에는 미래한국당의 출범을 꼼수라고 맹비난하면서도, 이른바 정당방위라는 논리로 자신들마저 그들과 똑같은 반개혁적인 위성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스스로 공언했던 선거제 개혁을 한순간에 무효화시켰다. 비록 더불어시민당이 다양한 시민단체의 대표들이나 원외 정당의 인사들을 일부 영입했다고 할지라도, 애초 민주당은 정치개혁연합을 논의할 당시 다른 소수 정당에 대해 '이 노선에 참여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식으로 국회 밖 소수세력을 막는 모습을 보였다.
녹색당이 비례대표 후보에 트랜스젠더 안드로진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임명했다고 해서, '성 소수자 문제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이라고까지 말했던 민주당 사무총장의 고압적 태도는 소수 정당을 지지하는 당원과 유권자들이 그동안의 선거에서 흘렸던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고, 신의가 없이 처신하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virtú)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군주론>, 까치, 제3판 개역본, p. 62)
내가 자주 인용하는 위 문구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대표적인 저서인 <군주론>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그들의 정치적 권력은 얻었지만, 오로지 정당한 방법을 통해 의석을 획득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었던 정치적 영광은 잃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과 똑같은 비례 위성정당이라는 수구적인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소수 정당에 돌아갈 수 있었던 표와 의석을 '진보 기득권'으로서 '약탈'하고야 만 것이다.
이번 선거를 '지역주의의 부활'로 매도하지 말라
내가 이번 21대 총선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이번 선거 결과를 일부 언론과 시민들이 영·호남에서 지역주의가 부활했다는 식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지역주의는 해당 지역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에게 유권자에 대한 책임 의식을 낮추고, 오로지 재선을 위해 중앙당에서 제공하는 공천에만 매몰되게 하므로 그것이 우리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이든, 인물이든, 공약이든 그 어떠한 이유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자를 선출할 권리와 자유가 유권자들에게 주어져 있다. 어쨌든, 그렇다고 해도 과연 이번 선거에서 영남의 유권자들이 보여 준 선거 행태가 과연 지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이번 영남 지역의 선거 결과를 지역주의라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통해 해석할 것이 아니라, 정권에 대한 견제와 심판을 요구한 영남 시민들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투표권 행사로 봐야 한다고 본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라.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서 안정적으로 대응한 점은 칭찬받아야 함이 물론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 초기에 확진자 수가 잠시 주춤했던 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태도 역시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에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아서, TK에서는 31번 확진자를 시작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그 후 며칠간 매일 수백 명씩 증가했다. 이 시기 동안의 대구 시민들은 엄청난 공포와 좌절 속에 갇혀 보내야만 했다.
아무리 이번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전반적으로는 훌륭하다고 평가될 수 있더라도, TK의 유권자들은 지도자의 그같은 방심이 마치 지옥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구·경북의 유권자들은 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능력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림으로써 정권을 심판할 수도 있는 것이다.
PK는 어떠한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부산에서 3석, 울산에서 1석, 경남에서 3석만을 얻는 것에 그쳤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의혹이 지역 내 최고 대학인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과 연관되어 있다. 게다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뇌물수수 의혹도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부산 민심을 정권 심판론으로 기울도록 만들 수 있다.
야권에 의해 지속해서 제기되었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도 그것이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2018년 지방선거의 정당성을 울산시민들이 의심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미 올해 초부터 매달마다 진행되었던 각종 지자체장 여론조사에서 송철호 울산시장은 하위권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현 정부와 여당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PK 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 대해서 시원한 해명을 한 적이 있었는가? 최소한 나의 기억 속에는 없는 것 같다.
위에서 내가 열거했던 쟁점들이 영남의 정권 심판론에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음에도, 이를 마치 지역주의의 결과로 돌려 영남 시민들의 책임으로 몰아갈 여지를 주는 것은 결코 국민통합과 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이 이번 21대 총선에서 잃어버리고 만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진보와 개혁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함으로써, 선거에 정확한 민의를 반영함으로써 국회의 대표성과 다양성을 높일 수 있었던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기회를 걷어 차버린 것이다.
둘째는 영남 지역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간절한 호소 없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거머쥔 '전국정당'이라는 성과를 스스로 떼어버리고야 만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겸손한 태도로 임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다음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 돌아갈지 모를 심판의 화살을 막고 한국 정치를 이제라도 한 단계 발전시켜나가는 유일한 길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민주당은 전체 국회 의석수의 60%를 차지하였지만, 그 위성정당은 이번 비례대표 선거에서 60%가 넘는 투표자들의 외면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저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에 있고, 전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운영위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