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21대 총선이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당 지역구 163석과 비례용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180석입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거대 정당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제 민주당은 독자적 개헌 빼고는 뭐든 할 수 있는 정당이 됐습니다. 재적의원 3/5을 조건으로 두고 있는 패스트트랙 상정도 할 수 있고, 과반의석이 필요한 법관 탄핵소추안, 예산안, 각종 임명안 등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승리 뒤편에 숨겨진 명암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총선에서 좌우 지역 색깔이 뚜렷하게 갈리면서 지역주의가 나타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통합당이, 서울·경기·충청·호남은 민주당이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지역주의가 또다시 부활한 것일까요? 총선 이후 치러지는 대선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부산을 중심으로 풀어봤습니다.
6석 → 3석... 하지만
부산에서 민주당은 3석을 확보했습니다. 민주당 현역 의원이 6명이었지만 절반만 살아남은 셈입니다.
기대를 걸었던 부산 진구갑 김영춘, 해운대을 윤준호, 연제 김해영, 사상구 배재정, 중구영도 김비오, 기장 최택용 등은 모두 패배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낙선했으니 부산에서 민주당은 완전히 패배했다고 봐야 할까요?
수치상으로 보면 참패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개표 결과를 보면 18개 지역구 중 2곳(해운대갑 하태경, 사하을 조경태)을 제외하면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은 모두 40%를 넘었습니다. 20대 총선 당시 10개 지역구에서 20~30%의 득표율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입니다.
20대 총선에서는 후보별로 득표율 차이가 있다면,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들이 골고루 득표했습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민주당에 우호적으로 변했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부산은 흡사 '51-49'라는 박빙의 경쟁구도 속에서 정치적 이슈 하나에 선거 분위기가 뒤바뀌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득표율이 아무리 높아졌다지만, 패배는 패배입니다. 그렇다면 접전지역의 승부를 가른 요인은 무엇일까요?
고개 든 민주당 견제론
우선 부산 지역 민심 변화를 살펴봐야 합니다. 지난해부터 부산 지역을 집중 취재하면서 놀랐던 것은 수도권은 부산 지역 우세를 점쳤지만, 현장에서 본 부산 민심은 최악이었다는 것입니다.
대형기업이 별로 없고 자영업 비중이 높은 부산은 경기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지역경제가 침체되면서 부산 민심도 가라앉았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부산 지역 민주당 관계자들은 '최악의 총선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위기감을 토로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부산 민심이 돌아서는 분위기가 감지됐습니다. 그런데 선거 막바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범진보 180석' 발언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부산 보수 세력들은 '민주당 견제론'을 들고 나왔고, 이런 선거 전략이 유권자의 마음을 흔든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이 전국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면 부산에서 만큼은 민주당을 견제하겠다는 '스놉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스놉효과, Snob Effect : 어떤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증가하면 오히려 그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에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
이번 총선에서 이낙연 전 총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민주당 지지를 호소했고, 유권자들의 표심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이낙연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낙연 전 총리가 대권주자로 나설 경우, 부산경남 지역의 정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로 떠오릅니다.
부산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천천히
부산에서 가장 피를 말렸던 선거구는 박재호 민주당 후보와 이언주 통합당 후보가 맞붙었던 부산 남구을입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는 박재호 후보가 1.9%p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습니다. 하지만 개표당일 오후 11시 30분께 이언주 후보가 역전했습니다.
개표율 90%에 이를 때까지 이언주 후보가 앞서면서 박재호 후보의 패색이 짙어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사전투표함 개표가 시작되자 형국이 뒤바뀌었습니다. 박재호 후보는 사전투표에서 4733표를 득표하면서 2938표를 얻은 이언주 후보를 따돌렸습니다. 최종 개표결과 두 사람의 표 차이는 불과 1430표였습니다. 사전투표가 박재호 후보 승리의 주역이 된 셈입니다.
부산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때마다 가장 많이 나오는 평가는 '부산은 변하지 않았다'였습니다. 아직까지도 부산은 보수의 텃밭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무 천천히 변하고 있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와 닿지 않을 뿐입니다.
부산에서 당선된 박재호, 전재수, 최인호 후보의 특징은 지역밀착형 정치인이라는 점입니다. 보수 텃밭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기 때문에 이번에 당선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후보들 역시 지역에서 열심히 했지만, 변화의 바람이 다소 늦게 부는 탓에 만족스러운 결과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보수는 '거칠게 밀고 올라오는 젊은 진보의 변화를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진보는 '여전히 굳건한 보수의 아성을 무너뜨릴 묘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두 진영의 전략이 다가올 대선에서 당락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