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15 총선의 결과에서 가장 도드라진 부분은 '대자본 편향적이며 심지어 극우적 성향마저 없지 않은 보수정당'(미래통합당 등)이 쪼그라들고, '거대한 자유주의적 보수정당'(더불어민주당 등)이 출현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정원 300석의 5분의 3인 180석, 국회에서 일방통행이 가능한 수치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견고하게 유지되어왔던 보수양당체제(다양한 변종을 동반한다)에 '일시적으로' 거대한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2004년 13%와 2020년 9.67%
따라서 향후 정치운동은 크게 다음 두 가지 방향성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거대하게 교란된 균형이 다시 종래의 보수양당체제로 회귀하는 방향성이다. 이는 미래통합당, 안철수 정당(국민의당), 향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더불어민주당 내의 분열세력 중에서 보수적 성향의 세력이 바라는 방향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정치운동의 자연발생성에 내맡겨 두는 경우 예정될 수밖에 없는 수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비록 쪼그라들기는 했으나, 국회의원 103석(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의 파워로 거대정당 더불어민주당과 대립하며 견제·견인하려 할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대립과 견제에서 힘의 균형이 회복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보수정당 vs. 진보정당'이라는 새로운 균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 발전의 방향인 동시에 자본의 정치와 보수정치에 대항하는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포지션을 갖는 정당들(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이다.
그렇다면 과연 둘째의 방향은 가능한 것일까? 현재의 정의당 등의 상태만 보면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으로 보인다.
우선 호불호나 옳고 그름 등을 떠나 심상정 의원의 지역구(고양갑) 당선은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사회의 '노동의 정치', '진보정치'의 현재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심상정 의원마저 낙선했다면, 이는 향후 정치적 진보에서 상당한 타격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비례의석으로 5석(류호정, 장혜영, 강은미, 배진교, 이은주)을 얻었고, 따라서 2016년 총선결과와 마찬가지로 정의당의 국회의원 의석수는 총 6석이다. 의석수만 보면 어정쩡한 현상유지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2016년 총선결과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다.
정의당 정당투표율 9.67%. 절대 수치로는 2016년 7.23%보다 약 2.4% 포인트 상승했으므로, 이를 성장의 지표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과거의 모든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은 투표 직전 여론조사보다 실제 투표율이 2~6% 포인트 높게 나왔었다. 예컨대 2004년 총선 사전 여론조사에서 민주노동당의 정당지지율은 6~8%였으나, 정당투표율은 이보다 최소 5% 포인트 상승한 13%로 비례대표 8번 후보(노회찬)까지 국회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는 정의당 정당투표율은 9.67%로, 투표 직전 정의당 여론조사 지지율 13%대보다 약 4% 포인트 감소했다.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진보·노동정치 대표성 상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당만큼은 진보정당을 찍어줘야 한다는 대중의 투표심리가 사라졌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정의당을 지지하지만 정의당에 투표하지 않고 다른 당에 투표한 대중이 최소 약 4%에서 플러스 요인을 감안할 때는 최대 약 8%가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달리 말해 국민들 중에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등에도 우호적이지만 정의당에도 우호적인 분들이 상당수 존재하는데, 이분들 대다수가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에 등을 돌린 것이다.
한마디로, 더 나은 대안정당이라는 정의당의 차별성이 크게 희석되었고, 이는 플러스 알파 대신에 마이너스 베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참으로 우울한 측면이다.
특히 울산 북구에서 정의당 후보가 패배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후보투표율(9.8%)이 정당투표율(10.28%)보다도 낮은 현실, 이것이 한국의 노동정치, 진보정치 1번지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하는 대공장 노동자 밀집지역임에도, 노동정치, 진보정치에 대한 정의당의 대표성은 사실상 상실된 것이다.
또 다른 대공장 노동자 밀집지역 창원성산의 사정도 좋지 않다. 권영길, 노회찬이라는 걸출한 인물들을 통해 한국의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성장 필요성을 다른 그 어떤 지역보다 체감한 분들이 많은 공간임에도, 여영국 후보 투표율 34.8%, 정의당 투표율 18.46%로 정의당의 대표성 복원 가능성을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남겨 두고 있다.
그나마 '어정쩡한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정의당은 그렇다 치고, 진보신당 잔류파인 노동당, 그리고 생태환경의 문제를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 올리고자 하는 녹색당으로 눈을 돌려보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두 당 모두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존재조차 희미해진 투표율(노동당 0.12%, 녹색당 0.21%)을 2020년 4.15 총선에서 얻었다.
스스로의 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확충하라
그러므로 현상만 보면 한국에서의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절망적이다. 보수 양당체제의 거대한 균열에도 불구하고 이 균열을 기회로 '보수정당 vs. 진보정당'이라는 새로운 균형으로 나아갈 방도가 없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사회든 정치든 퇴보나 정체 또는 보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보다 '더 나은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진보도 늘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따라서 하나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주어진 현실은 '보수정당 vs 진보정당'이라는 새로운 균형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지만, 논리적, 역사적 사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바로 이 딜레마의 해법에서 나는 다음을 장담한다. 즉, 1998년~2004년 기간 민주노동당이 실천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현재 보수양당체제의 거대한 균열은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정당들(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등)로서는 새로운 비약을 위한 결정적 시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과거 국민승리21의 '실업운동'이나 민주노동당의 '상가임대차 보호운동'부터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운동'까지 수많은 유형의 경제민주화 운동이나 또는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 같은 풀뿌리 운동처럼 스스로의 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확충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신뢰 및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진짜 거대한 소수'(국회의원 0석이었음에도 사회적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던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진짜 거대한 소수)로,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연대와 통합과 재구성의 구심'으로, '노동대중 다수의 힘에 기초한 차별받는 소수의 권리를 확장해 가는 진보적 권력'으로 스스로는 자리매김하고, '거대한 자유주의적 보수정당 더불어민주당'을 견인하는 것이다.
다양한 유형의 대안적 정치운동을 기획, 실행하라
더구나 경제위기 및 이후 불황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는 주어진 경제적 사회적 상황도 급진적인 진보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측면까지 있다. 즉,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그동안 '대자본 편향적이고 심지어 극우적이기도 한 보수정당 미래통합당 등'과 '남북문제 등에서는 자유주의적이나 마찬가지로 자본편향적인 보수정당 더불어민주당 등'이 이제까지는 여론의 압력에 밀리는 경우에만 마지못해 해왔던 수많은 개혁안들을 급진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정의당 등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정치, 보수정치에 대항하여 노동의 정치, 진보정치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은 지금의 시점을 제대로 성찰해야 한다.
그저 말뿐이거나 외형적 규모 확장에 끝나는 과거와 같은 연대, 혁신, 재구성, 연합, 통합, 거대한 소수, 반성과 성찰 등등이 아니라, 자본에 대항하는 다양한 유형의 '대안적 정치운동'을 바탕으로 하는 연대, 혁신, 재구성, 연합, 통합, 거대한 소수, 반성과 성찰 등을 통해 지금의 기회를 적극적 역동적으로 견인해 가야 한다.
특히 의회 입법 권력을 가진 정의당의 국회의원들은 깨달아야만 한다.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성장에 기초해서 획득한 입법 권력으로 의회 내에서 '개인의 능력만 뽐내는 이기적 영특함'이나 또는 '사상 편향적 지향'을 가급적 배제하고, 다양한 유형의 대안적 정치운동을 기획 실행하여 진짜 거대한 소수의 정치적 구심점으로 스스로를 분별 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보수양당체제의 거대한 균열을 '보수정당 vs. 진보정당'이라는 새로운 균형상태로 끌고 갈 수 있느냐 아니면 과거 보수양당체제로 회귀하느냐 여부는 향후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의 행보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제주 출생으로 1992년부터 <자본론> 전문 강의를 진행해 '자본론 박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때 민주노동당의 경제정책 담당자(1998년 2월~2008년 2월)로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 실업정책 정리,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기획, 상가임대차운동 정책 기획, 이자제한법안 정리, 개인채무자회생법안 정리, 파산법 개정안 정리, 종업원 경영참가 법안 등 수많은 민생의제에 대한 법제적 대안을 정리했다. 실무적으로는 종업원소유제도 및 노동자기업인수(EBO) 전문가이기도 하다 .
주요 저서로는 <자유인들의 연합체를 위한 선언>(1993년 ), <소유문제와 자본주의 발전단계론>(1994년), <산업순환 현상>(1995년), <우리사주조합! 잘만 활용하면?>(1998년), <대출천국의 비밀>(2011년) 등이 있다.
현재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으로 불법사채(불법 대부업 ) 피해자에 대한 무료법률지원 활동 등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