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동네 닭꼬치집이 생각난다. 일본으로 건너가 닭꼬치 요리법을 직접 배운 사장님이 귀국 후 혼자 운영하시는 가게다. 사장님의 터프하신 외모와는 다르게 나직한 목소리로 맞아주시는 그곳은 골목 한쪽에 소박하게 차려져 있어 잘 아는 이들만 찾아간다.
우리 지역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서 한동안 외출을 자제하다가 지난 주 오랜만에 닭꼬치집을 찾아가 봤다.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이 중단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나름 가게 안에 손님이 몇 명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단골으로서 안심했던 기억이다. 그래도 매출이 예전같지 않다던 사장님의 한숨에 "금방 나아지겠죠. 힘내세요"라는 덕담을 건네고 왔다.
최근 뉴스를 보다가 152년 역사의 도쿄 도시락 가게가 폐업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식당 건너편 극장이 코로나19의 여파로 문을 닫는 바람에 손님이 줄어 폐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이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닭꼬치집을 비롯해 내가 아끼는 동네 가게 사장님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서늘해졌다.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하다
경기도는 지난 20일부터 각 지역 주민센터와 농협중앙회 지점에서 재난기본소득(선불카드) 현장신청을 받고 있다. 온라인으로는 4월 9일부터 신청을 받았지만, 나이가 연로하신 어르신들과 온라인신청이 어려운 도민 등을 위해 오프라인 창구도 마련한 것이다.
또한 온라인 신청의 경우 본인과 미성년자 자녀의 몫만 수령할 수 있는데, 오프라인 신청은 가족 중 한 명이 대표해 가구원수의 수당을 한 번에 지급받을 수 있다. 도민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다양한 지급방법을 진행하는 것을 보며 나름 세밀하게 정책을 챙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4인가구인 우리 가족은 내가 대표로 한 번에 지급을 받기 위해 현장신청 방식을 택하기로 하고,
온라인 홈페이지(https://basicincome.gg.go.kr/summary)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봤다.
경기도는 코로나19의 감염 확산과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세대원 수에 따라 신청 기간을 나눴다. 이번 주(4월 20일~26일)는 4인가구 이상 세대원이 대상이다. (5월 18일부터 7월 31일까지는 세대원 수와 요일제에 상관없이 미지급받은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신청기간이라 할지라도 아무 요일에나 갈 수는 없다. 마스크 5부제처럼 출생연도 끝자리를 기준으로 지급 날짜가 요일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토, 일요일은 신청기간 중 미신청한 사람이 방문할 수 있다).
4인가구이자 출생연도 끝자리가 2, 7에 해당하는 나는 화요일인 21일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하러 관할주민센터에 아침 일찍 갔다.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소비
혼잡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다들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먼저 공무원들이 입구에서 마스크 착용 여부를 확인하고 발열검사를 실시했으며, 당일 신청대상에 해당하는지 확인했다.
그런 다음 대상인들에 한해 신청장소로 안내한 뒤 번호표를 나누어줘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 서는 일을 방지했다. 휴게실 안에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의자 중 빈 곳에 앉아 대기하면 번호별로 한 사람씩 신청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선불카드를 지급받는 시스템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20분 안에 처리됐다.
4인가구인 우리 집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1인당 10만 원)과 안산시에서 추가로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1인당 10만 원)을 더해 총 80만 원을 받았다. 이 지원금은 연 매출 10억 원 이하 병원과 약국, 동네 소형마트, 학원, 음식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재난기본소득을 지급받고 나오며 이 돈을 어떻게 잘 써야 할까 고민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의 살림과 기본 생계 해결, 지역경제 위축 등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취지에서 지급된 돈인 만큼, 모두를 위해 의미 있는 지출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내가 신뢰하고 애정하는 동네 가게들과 더는 안타까운 작별을 하지 않기 위해 이 돈을 쓸 생각이다.
며칠 전 아들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동네 단골 미용실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잠시 쉬는 게 아니라 아예 폐업한 거였다. 자칭 '헤어달인'이라던 사장님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집에서 혼자 헤어를 관리하는 법과 모발 관리 상식 등을 알려주시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 장애인들의 머리를 관리해주는 봉사도 하는 등 선하고 성실하셨던 분이어서 뜻밖의 작별이 유난히 아쉬웠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폐업이 우리 동네 미용실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3월 한 달간 폐업한 서울시 음식점만 1600곳이라 하니, 전국 수치는 그보다 훨씬 더 높지 않을까.
단골 미용실의 폐업을 보며 생각한 것
캐나다의 코로나19 방역 대응은 우리와 같이 조직적이고 발빠르지 않았지만,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 긴급지원 정책은 누구보다 발빠르게 발표하고 시행했다. 긴급실업수당부터 사회적 약자의 지원까지 빈곤에 빠지는 사람이 없도록 기민하게 대응했다(관련기사 :
'방역 모범국' 한국, 긴급지원금은 캐나다를 배웁시다 http://omn.kr/1ndoi).
우리도 캐나다와 같이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등의 광범위한 경제지원정책을 신속히 시행했다면, 그렇게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이라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 주변에는 내가 아끼는 가게들이 많이 있다. 닭꼬치집뿐만 아니라 신선한 돼지생갈비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고깃집, 어르신 부부가 직접 농사로 재배하신 먹거리로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식당 등.
마침 경기도는 지역 소상공인을 살리는 차원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슬기롭게 사용하자며 '착한소비 인증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 가족도 이 운동에 동참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가게를 꾸려가는 동네 사장님들을 응원할 생각이다. 나라 경제가 살아나려면 먼저 동네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단골 미용실이 폐업한 후 깨달았다. 가족의 머리를 맡길 곳을 다시 찾아야 하는 불편함을 겪으며 생각한다. 내가 사는 곳, 우리가 사는 동네를 소중히 잘 지키고 싶다고.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여전히 국회에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한국은 국가적 차원의 빠른 대응과 전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코로나19 사태를 다른 국가보다 빠르고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더 나아가 경제지원정책도 신속하고 과감히 실행해 더 이상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폐업하는 가게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