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년, <오마이뉴스>는 '평화봉사단'에 주목했다. 항쟁의 복판에 있었던 '증인'들의 이야기를 연속 보도한다.[편집자말] |
[기사 수정 : 15일 오후 3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 서울역 회군, 그리고 5.18민주화운동까지. 이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들이 이른바 '서울의 봄'으로 불리는 한국 현대사의 장면을 직접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로, 주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분야에서 활동했다. 한국엔 1966~1981년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있었다.
사진을 보낸 이들은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빌 에이머스(Bill Amos), 도널드 베이커(Donald Baker)다. 데이비드 돌린저와 폴 코트라이트, 빌 에이머스는 대략 1979~1981년, 도널드 베이커는 1971~1974년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도널드 베이커의 경우 서울의 봄 즈음에는 서울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었다.
[10.26 사건 후] 목포역 옥상에 왜 기관총이?
위 사진은 1979년 11월 3일로 예상되는 목포역의 모습으로, 빌 에이머스가 찍은 것이다. 당일은 박 전 대통령의 국장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건물 가운데엔 '박정희 대통령 각하 국장'으로 추정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역 앞을 지나는 이는 거의 없고, 건물 옥상엔 무장을 한 군인들이 서 있다. 오른쪽 군인은 기관총을 앞에 두고 있다.
아래 사진 역시 같은 날 찍힌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였던 옛 중앙청 건물에서 진행된 박 전 대통령 국장의 모습이다. 많은 조문객들이 줄지어 박 전 대통령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왼쪽 끝 일부만 나온 현수막엔 '각하 국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서울역 회군] 다시 겨울로
기사 맨 위 사진과 아래 사진 두 장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인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역시 빌 에이머스의 사진이다. 박 전 대통령 사망 후 전국 곳곳에서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들끓으면서 이 시기를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에 빗대 서울의 봄이라고 불렀다. 빌 에이머스는 "처음 맛보는 최루탄이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사진이 찍힌 5월 15일은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이 되는, 이른바 '서울역 회군'으로 부르는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해당 사건은 봄에서 다시 겨울로 퇴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말았다.
연일 대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던 중 당일엔 10만 여 명이 서울역 인근에 집결했는데, 학생 지도부는 결국 해산을 결정했다. 해산 결정엔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미래통합당 의원의 주장이 강하게 작용했다.
심 의원은 쿠데타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들이 해산한 직후인 5월 17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사실상 정권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 정치인과 전국 주요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체포됐고, 결국 5.18이란 비극으로 이어졌다.
서울역 회군 당일을 담은 컬러사진은 매우 희귀한 것이다. 그동안 서울역 회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흑백만 존재했다. 11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문의한 결과, 그곳에 보관된 관련 사진은 모두 흑백이었다. 영상의 경우 일부 컬러가 존재한다.
[5.18민주화운동] 시민 향한 총구
아래 사진 네 장은 데이비드 돌린저가 찍은 5.18 당시 광주의 모습이다. 계엄군이 포박돼 엎드려 있는 시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미는 모습에서 당시의 잔혹했던 분위기를 추측해볼 수 있다. 한 남성은 시신이 다닥다닥 놓여 있는 병원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관을 어루만지고 있다.
데이비드 돌린저는 이 사진이 담긴 필름을 다른 평화봉사단에게 전했고, 이를 미국으로 가져간 이들이 미국의 잡지 <커버트 액션(Covert Action)>에 싣기도 했다.
평화봉사단 단원들은 역사적 사건 외에도 당시 한국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여러 장을 보내왔다. 도널드 베이커가 1972년 '곱창'이라고 적힌 광주의 한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모습은 제법 흥미롭다.
그가 1973년 전라남도의 한 서원에서 찍었다는 사진에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유생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폴 코트라이트가 나주에서 찍은 사진들에선 1980년 당시 자신이 거주했던 건물과 난방 수단이었던 연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쌓인 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엔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겨진 호혜원(한센인 정착촌)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닭들이 자전거 앞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도 이채롭다. 그는 5.18 40주년을 맞아 <5.18 푸른 눈의 증인>이란 제목의 회고록을 썼다(영문판 제목은 < Witnessing Gwangju >). 회고록엔 그가 이 자전거를 타고 광주와 나주를 오가며 광주의 참극을 목격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빌 에이머스는 1979년 자신이 근무했던 목포의 한 병원 직원들과 찍은 사진도 보내왔다. 그의 뒤편엔 '발견환자 등록', '추후 검사', '중환자' 등이 적힌 표가 게시돼 있고, 앞쪽엔 '표준 처방전'이라 쓰인 책이 놓여 있다. 그가 건물 옥상에서 한 학생과 찍은 사진에선 바짝 머리를 깎은 학생의 푸른 체육복과 뒤편 '드라이'라고 적힌 세탁소가 눈에 띈다.
[5.18 40주년 특집 - 이방인의 증언]
①-1 이 미국 청년을 아십니까 http://omn.kr/1nj3g
①-2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http://omn.kr/1nj2u
② 광주 할머니와 약속 지킨 청년 http://omn.kr/1nk4l
③ "전두환 부끄러워해야" http://omn.kr/1njqo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