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영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사회학자로서의 성찰을 담은 칼럼을 연재합니다.[편집자말] |
몰랐던 사람도 이제는 알고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전 세계를 휩쓴 엄청난 바이러스 사태가 있었다는 것을. 이름하여 '스페인독감'이다. 이 독감에 따라다니는 설명 중 하나는 이 독감이 실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그래서 스페인독감이라는 이름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은 전쟁 참전국들에 비해 이 바이러스에 대해 적극 대응할 수 있었고, 그 역설적 결과로 당시의 사태는 여전히 '스페인독감'으로 불린다. 스페인으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오랜 기간 그렇게 불려 왔기에 이제 와서 다른 명칭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일 정도다.
이름짓기의 중요성
어떤 사건이나 사안에 대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고 규정하는 작업의 거의 첫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름이 없다면, 그것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매번 다시 설명할 것인가.
내가 '광주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라고 말할 때 광주를 단순한 광주광역시라는 지명으로만 생각하는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때 '광주=광주민주화운동'을 자동연상시킨다. 그런데 '광주'는 오랫동안 광주사태 또는 5.18로 불렸다. 사람들은 '사태'라는 말의 위선적 가치중립성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정명(正名)을 요구했고, 기어코 이름을 바로잡았다. 이제 광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에 반해 제주 4.3은 아직 '최종적인' 이름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4.3은 아직 슬프다.
사실 지명이나 관련자의 이름이나 장소명, 또는 날짜 등을 딴 이름짓기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간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의 장점도 있다. 특정 사건이나 사안의 성격에 대한 규명이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교적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바로 이런 성격 때문에 자주 '게으른 작명'이 되기도 한다).
스페인독감 vs. 코로나19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붙여진 첫 번째 이름은 '우한폐렴'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우한코로나를 거쳐 이젠 코로나19(COVID-19)로 정리되었다. 2009년에 발생한 플루의 경우 돼지가 주요 매개체로 밝혀지면서 처음에는 돼지플루라고 불리다가 양돈업계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신종플루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됐다. 어떤 부정적인 사안에 대해 특정 지명을 붙이는 것이 단순 이름짓기를 넘어 낙인찍기, 비난하기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우리가 이제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독감은 스페인독감으로 남았지만, 우한폐렴은 코로나19라는 비교적 중립적 이름으로 교정되었다. 한 세기 동안 그만큼은 발전한 것이다. 그만큼은 온 거다. 뭐가 다르냐고? 다르다. 많이 다르다.
낙인찍기와 비난하기
그럼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우한코로나' 또는 '중국코로나'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야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지가 보다 분명해지기 때문이리라. 싸울 때는 전선이 명확하고 단순한 것이 좋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태도로는 싸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아군과 적군이 명확할수록 좋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비상시국에서도 사람들은 명확한 분류를 원한다. 누구 때문인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확실히 코로나19라는 명칭보다는 우한폐렴 또는 우한코로나라는 말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에서부터, 중국의 적절하지 못했던 대응 태도가 바이러스의 전 세계 확산에 적어도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떠오르는 것은 덤이다.
대구코로나는 안되고, 우한폐렴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대구코로나'라는 말이 문제가 됐었는데, 대구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었을 것이나. 대구 정치판 일각에서 대구코로나라는 말에는 발끈하면서, 우한폐렴이라는 말은 고집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구는 피해지이니 적절하지 않지만, 우한은 발원지이니 그리 불러도 상관없다는 논리일 수도 .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자. 우한은 인구 천만의 도시라고 한다. 그곳에서 코로나19 창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 앞으로 한참 동안 우한 사람들은, 우한 출신 또는 우한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아마 코로나19를 '만들어낸' 사람들로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답답한 마음을 잠시 시원하게 해줄지 모르겠으나, 과연 정당한가? 박쥐와 평화롭게(?) 공생하던 바이러스가 동굴을 나와 인류를 위협하게 된 작금의 상황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이름짓기가 낙인찍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름짓기는 분류와 사유의 기본. 피해가기 어렵지만, 그것이 특정 지역, 사람 등과 연결되어 부정적인 효과를 창출하는 경우 최대한 자제해야 마땅하다. 이름짓기를 통한 낙인찍기, 비난하기가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방식이 낙인찍기, 비난하기 중에서도 상당히 '죄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운명적' 조건, 예를 들어 출생지, 거주지, 성별, 나이, 키, 인종 등 어찌할 수 없는 조건에 기초한 낙인과 비난은 비겁하고 못난 짓이다. 물론 우한폐렴과 대구코로나가 아주 똑같다고는 볼 수 없겠다. 그러나 대구코로나는 안되지만, 우한폐렴은 무슨 문제냐는 태도로는 갈 길이 아직 너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