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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코로나19 확진자 확산 관련해 성소수자 혐오가 이어지자 부산지역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이루어진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가 14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1대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태원 코로나19 확진자 확산 관련해 성소수자 혐오가 이어지자 부산지역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이루어진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가 14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1대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 김보성
 
지난 2월, 숙명여대 합격생 트랜스젠더 A씨를 둘러싼 이슈는 트랜스젠더,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생각할 지점들을 남겼다. 한편으로 이 이슈는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도 한 가지 논의 지점을 남겼다. 당시 A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측 일각에서 "차별금지법에서 성별정체성을 빼고 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차별금지법 중 일부 사유를 문제 삼는 것은 2007년 이래 줄곧 있었던 일이지만 위 주장은 약간 다른 결을 갖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주로 반대해온 보수개신교가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금지법 자체를 반대한다면(이들은 최근 성적지향을 삭제하더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위와 같은 주장을 펼친 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은 찬성하되 '성별정체성'만은 들어가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목표로 하는 것은 명확하다. 소위 성별정체성으로 대변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따라 모든 사람은 차별없이 평등해야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평등해서는 안 된다. 문구 자체로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러한 주장에 맞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복잡한 부분이 있다.

차별금지법에서 성별정체성을 빼면 트랜스젠더는 보호받지 못하니까 반드시 성별정체성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반론으로 충분한 것일까. 정말 성별정체성이 없으면 트랜스젠더는 차별금지법에서 제외된 존재로 남는 것일까. 차별금지법에서 차별금지사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글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거칠게나마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차별금지사유 = 역사적, 구조적 차별의 반영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언어, 인종, 피부색, 국적,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상황,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출신학교, 경제적 상황, 병력 또는 건강상태, 유전형질,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고용형태 등 사회적 신분"
 
현재 주로 논의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안에는 대체로 위와 같은 20여 가지의 차별금지사유가 명시되어 있다. 이 중 성별정체성의 경우 2007년 법무부 차별금지법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2008년 노회찬 의원 발의안을 비롯해 국회 발의안에는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차별금지사유는 각 국가 및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여 한 사회에서 역사적이고 구조적으로 차별로써 작동한 지점들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차별금지사유는 국가별로, 제정시기별로 차이가 난다.

가령 한국의 차별금지법은 초창기부터 '학력, 출신학교'를 차별금지사유로 두고 있는데 이는 학벌과 학력에 따라 위계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아일랜드의 평등지위법은 '유랑민공동체의 일원'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데, 이 역시 역사적으로 유랑민에 대한 차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시대의 발전에 따라 새롭게 추가된 사유가 있는데 바로 '유전형질'이다. 최근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전해 낮은 비용에 빠르게 검사가 가능해지자, 기업, 보험업계에서 유전자 검사를 바탕으로 직원을 채용하거나 보험리스크를 산정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유전형질'이 새롭게 차별금지사유로 논의되고 있다.
 
이처럼 차별금지사유는 그 나라, 그 시기에 어떠한 차별이 있었는지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특정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와 관련된 차별이 사회 내에서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포착조차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 당시 삭제된 7가지 사유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성적 지향, 학력'이 바로 그러하고, '성별정체성'이 그러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특정 사유를 삭제하자는 주장은 역사적,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차별금지법의 제정 목적 자체를 훼손하는 것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차별금지사유 ≠ 정체성 집단
 
그런데 한편으로 차별금지법에서 특정 사유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다 보니 마치 개개의 차별금지사유가 특정한 정체성 집단에 대응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가령 성별은 여성에, 성적지향은 동성애자에, 성별정체성은 트랜스젠더에 대응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삭제는 곧 차별금지법으로 보호되는 집단 중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만을 제외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차별금지법에 성별정체성이 없더라도 이로 인해 트랜스젠더가 어떠한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차별금지법이라 할 수 있는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이 그 예이다. 민권법은 고용에 있어 '성별(sex)'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 조항은 초창기에는 소위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좁은 조항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이 조항은 사회문화적 성별, 성별 고정관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포함하는 것으로 점차 넓게 해석되게 되었다. 특히 법원에서는 트랜스젠더가 겪은 차별을 민권법 중 '성별 고정관념'을 이유로 한 차별로 해석하여 법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가령 트랜스젠더 여성 소방관이 '여성스러운 모습'을 했음을 이유로 시 당국으로부터 해고를 당한 사건에 대해, 미 제6항소법원은 "시 당국의 행위는 성별에 따라 특정한 행동, 외모를 강요하는 성별고정관념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성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Smith v. City of Salem, 378 F.3d 566 (6th Cir. 2004)). 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특정성별에 맞는 옷차림, 외모를 해야 한다는 성별고정관념에 의한 차별은 트랜스젠더/시스젠더에 무관하게 차별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별정체성 없이 성별만 있더라도 해석과 적용을 통해 트랜스젠더 역시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 말이 곧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삭제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앞서 말했든 차별금지사유를 명시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어떠한 차별을 중요히 봐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필요하다.

따라서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그 반대다. 차별금지법에서 성별과 성별정체성은 완전 별개인 것으로 보고,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은 성별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할 때, 그때의 성별은 '생물학적 성별'로 좁게 해석되고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차별은 성차별로 포섭되지 못한다. 이는 결국 트랜스젠더가 아닌 여성들 역시 충분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이 겪는 차별의 경험은 특정 차별금지사유에 따라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동성애자 여성/트랜스젠더 남성들은 면접 시 왜 머리를 짧게 하냐, 화장을 안 하냐는 차별적인 발언들을 계속 경험한다. 때로는 이러한 외모로 성소수자인지 추궁을 당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차별 경험이 당사자가 실제 성소수자인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성별에 따라 요구되는 외양이 있다는 사회적 믿음, 성소수자는 특정한 외모를 할 것이라는 편견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이다. 따라서 이러한 차별 경험을 어디까지는 성별에 의한, 어디까지는 성적 지향에 의한 것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아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러한 차별행위는 성별, 성적지향 등에 의한 복합차별로 규정될 것이다.
 
결국 차별금지사유는 특정 정체성 집단에 1:1로 대응하는 개념이 아니며, 차별금지법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각각 경험하는 차별을 하나로 묶은 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각각의 차별금지사유는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를 한정시키는 구조, 즉 성별을 매개로 '여성'을 종속시키는, 성적지향을 매개로 '이성애'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되는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도구이자 분석 범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범주들은 때로는 중첩될 수도 있고 교차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차별금지법이 차별로서 문제 삼는 것은 특정 정체성 집단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인식을 위계화하고 범주화하고, 이를 이유로 특정한 사람을 낙인찍는 권력인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이와 같이 차별금지사유를 개개의 정체성이 아닌 범주로서 이해할 때,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의미는 보다 분명해진다. 가령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정의되는 개념 중 한 가지 중요한 것으로 '복합차별'이 있다. 여기서 복합차별은 각각의 차별의 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여성장애인이 복합차별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차별과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단순히 더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여성이자 장애인으로서 한 개인이 갖는 온전한 정체성이 존재하며, 그로 인해 겪는 고유한 차별 경험이 있음을 의미하고, 한 사람의 정체성이나 경험이 분리되지 않은 채 전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삶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단일한 정체성만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은 남성이나 여성 또는 그 밖의 성별을 가진 존재로, 시기에 따라 다양한 연령을 가진 존재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존재로, 부모, 자식, 형제, 배우자 등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다.

개인이 포괄적인 존재인 이상 차별의 문제도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단지 개별 차별금지법이 부족한 영역을 채우는 것을 넘어선다. 그보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야말로 법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 차별 경험을 온전히 반영하는 당연하고 필수적인 법인 것이다.
 
첫머리로 돌아가서 "성별정체성을 빼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렇기에 틀린 것이다. 이는 차별금지법의 목적을 훼손하는 것일뿐더러 이러한 주장은 차별금지사유를 다시 개개의 정체성에 대응시키고 구분 지음으로써 차별금지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제는 더 이상 차별금지사유를 넣고 뺄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과 경험을 온전히 반영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실질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격월간소식지 <월간평등업>에도 실립니다.


#차별금지법#트랜스젠더#차별금지사유#성별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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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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