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 북한산 가까이 산다. 코로나19가 좀 수그러들던 4월 어느 날, 급한 볼일로 잠깐 온 친정 언니가 말한다.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고. 언니는 부천에 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어, 골목은 물론 큰길에도 인적이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한데 한편으론 삭막하고 무섭게 느껴진다는 것.
그래서 출퇴근 길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바짝 웅크려지곤 했고 숨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겠더라는 거다. 그런데 우리 동네 골목엔 사람이 없어도 나무가 많아서인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것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말이었다.
언니의 심정에 공감이 갔다. 지난 몇 달 출퇴근 길에 내가 느끼곤 했던 것도 그랬기 때문이다. 와중에 위로가 됐던 것은 봄이련가 어김없이 싹을 틔우거나 꽃망울을 터트리는 수많은 풀과 나무들, 그리고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보여주는 변화였다.
식물 관련 책을 읽다 보면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삶의 고비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은 풀꽃 한 송이에 위로를 받았다거나, 이를 계기로 자연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같은 사연을 종종 접하곤 한다. 식물 혹은 자연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가 길어지면서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이 또한 식물을 통해 위로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식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두고 다가가면 꽃이 예쁘다고 감탄하며 보고 말 때와 전혀 다른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출간된 책들 중 식물을 이해하거나, 화분 가꾸기에 도움될 책 세 권을 소개한다.
<안녕, 밥꽃>
장영란 지음, 내일을 여는 책, 1만 4800원
존재만으로 반갑고 고마워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책들이 있다. 농부 부부가 쓴 <밥꽃 마중>(들녘 펴냄)도 그중 하나다(관련 기사:
시금치에 암수가 따로 있다고? omn.kr/n42a).
우리에게 식량이 되는 꽃들을 '밥꽃'이라 정의, 그런 꽃들만을 다루고 있어서 읽기 전부터 신선하게 와 닿았다. 게다가 우리의 먹거리가 되는 꽃들만을 다룬 유일한 책이라 감동이 컸다.
그 책을 읽으며 바랐다. 어린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먹거리가 되는 고마운 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밥이 되는 벼꽃이나 나물이 되는 시금치 꽃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피는지 등을 알게 되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밥꽃들은 물론 풀이나 나무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나아가 자연을 가까이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안녕, 밥꽃>은 그 아내 장영란이 <밥꽃 마중>에서 다룬 60여 가지 밥꽃 중 우리의 밥상에 많이 올라오는 밥꽃 7가지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풀어 쓴 것이다. 우리가 먹는 것들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우리의 밥상에까지 오르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생생한 사진과 그림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아이들이 많을 것 같다.
겨울을 난 무는 특히 싹이 잘 난다. 이런 무는 윗부분을 잘라 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이젠 버리지 말자. 아이와 함께 접시 등에 담아 물이 마르지 않게 해주자.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자란 후 (연)분홍의 예쁜 꽃을 피운다. 무는 흙 없이도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무꽃 이야기는 92~105쪽에서 다루는데 이와 같은 과정을 볼 수 있도록 관찰일지를 더했다.
아이들과 해볼 수 있는 것 또 하나는 주전자로 콩나물을 키워본다거나, 현미 싹을 틔워 벼에 대해 알아보는 것. 벼꽃에 대해서는 물론 쌀밥과 현미밥, 오곡백과라는 말과 연관 지어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은 이처럼 평소에는 물론 한겨울에도 아이들이 집에서 쉽게 식물을 관찰하거나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애플 북스, 1만 6800원
대다수 과일나무는 꽃이 비교적 늦게, 그러니까 대략 4월이나 5월에 핀다. 이건 아주 좋은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 주씩 지날 때마다, 꽃을 망치는 냉해의 위험은 줄어들고 곤충들이 충분히 돌아다니며 가루받이를 할 가능성은 올라가기 때문이다. 과일나무는 실제로 낮 시간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 빛의 총량은 특정 단백질을 통해 측정된다. 이 단백질은 빛이 작용하면 형성되고 어두울 때는 분해된다. 그리고 그 양이 충분하면 기온이 충분히 따뜻하다는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라고 판단, 꽃을 벌어지게 한다. - 82~83쪽.
어떤 식물을 좋아해 관심 두거나 키우다 보면 스치며 볼 때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거나 알게 된다. 아울러 궁금한 것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궁금증 중에는 식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가꾸거나 관리하는데 도움되는 것들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궁금한 것들을 속 시원히 해결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인터넷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도 있다지만 누군가 입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만큼 한정될 수 있어 막상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은 예뻐서 찍은 꽃 이름조차 쉽게 알게 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독일의 한 원예 학자가 쓴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는 식물 관련 수많은 질문에 답한 책이다.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풀이나 나무, 정원에서 가꾸는 식물들과 과일나무 등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식물들과 관련된 질문 82가지에 답한다. 비교적 이해가 쉽게 설명하는 데다가 화분 가꾸기나 정원 가꾸기에 도움 될 질문들이 많아서 좋다. 좀 아쉽다면, 더러 이해가 쉽지 않은 문장들이 있다는 것. 원문이 그런지 번역이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씨앗들은 싹틀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무 한 그루가 증발시킬 수 있는 양은 얼마나 될까? ▲뿌리는 아래로 뻗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일부 식물은 어떻게 꽃 색깔을 바꿀까? ▲바늘과 가시의 차이는 뭘까? ▲왜 식용 열매도 있고 독성 열매도 있을까? ▲꽃봉오리는 왜 밤이 되거나 비가 올 때 닫힐까? ▲덩굴 식물은 어떻게 지지물을 발견할까? ▲도대체 거름은 왜 줘야 할까? ▲식물이 물을 원하는지 어떻게 알까? ▲커피 찌꺼기는 정말 좋은 비료일까? ▲화분 속의 흙은 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까? - 목차에서
<이끼와 함께>
로빈 월 키머러 지음, 하인해 옮김, 눌와, 1만 3800원
자주 보고 살지만,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거나 간과해버리는 것들이 많다. 이끼도 그중 하나일 것 같다. 조금만 관심 두고 보면 이끼는 어떤 식물보다 우리와 밀접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몸을 바짝 엎드려 관찰하거나 확대경의 도움을 받아야 생김새를 어느 정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작다. 게다가 예쁜 꽃을 피우지도 않기 때문인지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한번은 도시에 거주하는 어떤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잔디에 난 이끼를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정성스럽게 가꾼 잔디를 이끼가 죽인다고 확신했고 이끼에게 복수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끼는 풀을 죽이지 못한다. 전혀 적수가 될 수 없다. 이끼가 잔디밭에 등장하는 까닭은 주변 환경이 잔디보다는 이끼가 자라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늘이 짙거나, 물을 너무 많이 뿌렸거나, pH가 너무 낮거나, 흙이 너무 압착되어 있어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잔디는 자라지 않고 대신 이끼가 나타난다. 이끼를 죽인다고 해서 시들한 잔디가 살아나진 않는다. 햇빛을 더 잘 받도록 하거나…. - 161쪽
그런데 관심 두고 싶어도 막상 쉽지 않다. 이끼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 또한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좀 알려진 이끼의 역할은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곳에 먼저 자람으로써 부식물을 생산해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있게 한다는 것 ▲제 몸의 5배 되는 물을 흡수했다가 땅이 메마를 때 내놓는 것으로 다른 생물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혹은 산사태 등을 막는다는 것 ▲특히 차에서 발생하는 매연을 빨아들여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이끼의 페놀릭 성분은 피를 멈추게 하고 덧나지 않게 하므로 오래전부터 인류의 약이 되었다는 것 정도? 그러나 생태 특성 등 거의 알려진 것들이 없다.
최근 출간된 <이끼와 함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포타와토미족 후예인 한 식물학자가 20여 년간 이끼를 관찰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삶과 접목해 들려주는 수필 형식의 글이다. 출판사 눌와는 이 책에 대해 '식물을 공부하며 과학이 지나치게 인간을 배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끼의 생태를 과학적으로 규명할 뿐만 아니라 이끼가 같은 자연의 생명체인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자신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지 성찰한 결과물'이라고 소개한다.
꽃 사진을 찍을 때면 쉽게 눈에 들어오곤 했으나 알고 싶어도 자료가 많지 않아 호기심을 눌러야만 했던 이끼에 대한 많은 것들을 들려준다. 거의 모르던 것들인 데다 내용이 많다. 그에 원주민들의 생태적이며 사색적인 삶의 방식이나 이야기들을 곳곳에 녹여 넣고 있어서 처음엔 좀 어렵게도 읽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몰입하게 되고 대단한 무엇을 알았을 때의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여러 종류의 이끼 세밀화를 보는 즐거움도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