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학생 아이들과 '열정 페이'를 주제로 독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열정 페이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기업이 '당신의 열정을 사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으로 청년 사원들을 부려먹으려 드는 부당한 노동 관행을 일컫는 말이라고 이야기해주자 아이들 반응이 재밌었다.
도대체 청년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뭐하러 그런 회사에 다니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학력 고스펙의 청년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그들을 전부 수용할 수 없는 빈약한 시장구조의 문제와 몇 년째 별다른 성과 없는 지지부진한 정부의 취업 촉진 정책,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실질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대신 학벌 장사를 일삼는 일부 대학들이 힘을 합해 청년 실업률을 높이고 있는 중이라고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동시에 "헐!"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토론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열정 페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글쓰기를 지도했다. 그런데 수업이 종료된 이후, 아이들이 쓴 글을 읽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미래에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 불안하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요지의 글을 작성한 것이었다. 안타까웠다. 불합리한 노동 문제의 원인을 사회 구조가 아닌 개인의 역량 부족에서 찾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걸까?
몇 해 전,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비정규직 사원 장그래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받지만 끝내 정직원 전환에는 실패한다. "이럴 수는 없다!"의 분노조차 감히 품지 못한 고졸 출신 비정규직 사원 장그래가 혼자 조용히 짐을 싸서 회사를 나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서 또 다른 장그래가 될까봐 걱정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더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더 많은 자격증을 따지 못하고, 더 많은 봉사 활동을 하지 못한, 결국 더 다양한 스펙을 쌓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여겨 자책할까봐 그게 더 걱정이다.
<땀 흘리는 소설>은 '과연 노동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책이다. 우리나라에 젊은 세대가 함께 읽을 만한 제대로 된 노동 문학 선집이 없다는 안타까움을 담아, 문학을 지도하고 있는 현직 선생님들이 오랜 고민과 토론 끝에 엮어냈다.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하듯이, 비교적 최근 발표된 단편 소설 가운데 '노동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는 문제작 여덟 편을 싣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까? 그 일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을까? 그렇게 흘린 땀방울은 어떤 보상을 받아야 할까? 질문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소설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이 소설들이 피부 깊숙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의 한 면으로 이해되기를 깊이 소망합니다. ('땀 흘리는 소설' 머리말 중)
여덟 편의 단편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일다운 일'을 찾아 헤맨다. 이쯤되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다운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일다운 일'이란 일단 4대 보험이 적용되며, 부당 해고의 위험 없이 퇴직금과 연차와 월차, 육아 휴직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정규직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또한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이 사회 통념상의 윤리에 어긋남 없이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일을 하는 동안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지 아니하며 인간의 존엄을 훼손 당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하는 일은 정말 '일다운 일'일까? 나부터 대답하자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내가 앞서 말한 '일다운 일'의 조건을 꽤 많이 어기고 있는 중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흉기란 바로 말이지요. 사람들은 벼려 온 칼을 이때다 싶어 우리한테 푹푹 꽂아 넣어요. 장시간 통화로 뜨끈한 귀를 만지작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우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요. 난자당한 상처를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건 고사하고 쏟아진 피를 닦을 시간도 없이 바로 그다음 공격이 들어와요. 통화를 마치게 무섭게 다른 콜이 연결되는 거죠. (땀 흘리는 소설 수록작 중 '어디까지를 묻다' 154P)
'감정 노동'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특히 그 최일선에 서 있다고 해도 무방한 콜센터 상담 직원들은 고객 응대 과정에서 수시로 폭언과 성희롱에 시달리기 일쑤다. 게다가 회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할 것'을 강요한다.
위 소설 속 주인공이 일하는 콜센터의 센터장은, 어느날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를 응대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리고만 주인공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쿡 누르며 말한다.
"너 오늘 짐 싸서 가라."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가장 울컥한 대목이기도 하다. 단지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그 이유 하나만으로 주인공의 존엄은 처참하게 훼손된다.
우리의 노동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분명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8년 제정된 '감정노동자 보호법'만 해도 그렇다.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법안이 제정된 지 이제 이 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물론 그 실효성을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일다운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응원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땀 흘리는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기도 하다.
<땀 흘리는 소설>은 현재 우리가 처한 노동 문제를 직시하며 '일할 맛 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게다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문학계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아온 젊은 작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은 하나같이 섬세한 문장력과 탄탄한 서사로 무장해서 소설 읽기의 재미마저 놓치지 않고 있다.
출퇴근 길, 한 편 한 편 음미하듯 천천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러 가는 길인지, 혹은 어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지 담담히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