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을 다녀온 친지 한 분은 '요즘은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LA 부근에 있는 딸네 집에서 석 달 간 감옥살이처럼 갇혀 있다 고향으로 오니 다른 세상을 사는 느낌이란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었다'는 방송 앵커의 멘트에 공감이 간다.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눠질만큼 변화 중이다.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먹고 사는 일에 당장 영향을 미치는 경제 변화다. 세계은행은 "올해 글로벌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불황(–5.2%)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글로벌 교역에 목을 매는 우리 경제의 앞길은 얼마나 험난할까. 우리는 1997년 IMF 경제위기 때 하늘 같던 대기업들이 날마다 우수수 무너지고, 수많은 청장년들이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길바닥을 헤매는 고통을 겪었다.
이럴 때 버틸 힘이 없는 보통 사람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고 위로를 받을까. IMF 위기 때 읽고 위로 받았던 책이 생각난다.
"왜 세상은 하나의 위기에서 또 다른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가? 항상 이러했는가? (...) 라다크는 나에게 미래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주었고, 엄청난 힘과 희망을 주었다."
세계화(글로벌리즘)에 반기를 든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1946~)가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 쓴 서문이다.
호지 여사는 1975년부터 16년간 인도 최북단 고원 사막지대, '작은 티벳'이라고 불리는 라다크(인구 13만 명)에서 생활했다. <오래된 미래>는 그 척박한 땅에서 검소함과 자존감으로 자급자족을 이루는 삶에 대한 현장 보고서다.
"겨울엔 영하 40도, 여름엔 탈 듯이 뜨겁고, 실제로 일하는 것은 일 년에 4개월뿐이다. 나머지 8개월 대부분은 잔치와 파티로 보낸다. (...) 혹심한 기후, 자원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라다크 사람들은 단지 생존이상으로 즐기며 산다. (...) 삽, 톱, 낫, 망치 같은 아주 기초적인 연장, 단순한 물레방아 일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낸다. (...) 그런데도 그들은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있다. 부드러운 속도로 일을 하고, 놀라울 만큼 많은 여가를 누린다. (...)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들의 속도로 웃음과 노래를 곁들이며 한다. 일과 놀이는 엄격하게 구분 되어있지 않다." (56~57p)
물론 세계화, 문명세계는 오래된 미래, 라다크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인도 정부가 파키스탄, 중국 침략으로부터 라다크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1974년부터 라다크를 관광객에게 개방했다. 1984년 한 해 관광객 수는 1만5000명, 전기도 들어왔다. "인구 1만 명이던 라다크 수도 레에 호텔, 접객 업소만 100개가 생기고 관광객 1명이 하루 쓰는 비용은 라다크 한 가족이 1년 동안 쓰는 금액이다". 개발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발 전에는 가난과 굶주림이란 없었다.
"내가 온 첫 해에는 처음 본 어린아이들이 나에게 달려와 살구를 손에 쥐여 주곤 했다. (...) 이제는 어린아이들이 외국인들에게 '한 닢만, 한 닢만'하며 빈 손을 내민다. (...) 전통음식에도 자부심을 못 느껴 전통보리빵을 내놓으며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1980년 라다크는 '라다크 프로젝트'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나아갔다. 호지 여사는 이런 움직임이 "지역적인 것, 작은 것, 친밀한 것, 인간적인 것 (...) 결국 자연이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평했다.
그녀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경제활동 규모를 근본적으로 줄이자, 생산과 소비거리를 줄이자. 정말 필요한 것은 집 가까이에서 생산하자!'며 '지역화'를 주장한다. 지금 세계는 경제 규모를 강제적으로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최고의 진리, 자연이 강제한 길이다. 이번에는 위기의 되풀이를 막을 수 있을까. 우리는 또 다른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