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30~40대를 낯선 언어, 낯선 땅에 적응하기 위해 온 시간을 바쳐야 했다.
"결혼하고 바로 러시아에 선교를 위해 갔어요. 당장 먹을 것을 사기 위해서라도 언어를 배워야 했고 낯선 시선을 견디며 살아내야 했죠. 좋은 분들도 만났지만, 러시아에서 보낸 25여 년은 이주민이 한국에서 느끼는 차별과 고충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안산시에서 러시아·고려인 자녀를 위한 방과후학교 '레오(Love each Other)'를 운영하는 형진성 센터장은 "러시아에서 25년을 살다가 잠시 한국에 왔는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보면서 남게 됐다"라고 말했다. 형진성 센터장을 지난 11일 '레오'에서 만났다.
러시아에서 살며 아이들도 낳고 키우며 겪은 교육 문제나 비자, 의료 등의 어려움을 한국에서 거꾸로 겪고 있는 러시아인과 고려인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려 했던 계획은 러시아, 고려인 자녀를 위한 방과후학교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바뀌었다.
한국 내 러시아 이주민 만나며 삶의 방향 전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그에게 낯설지 않다. 러시아 정착 초반인 1995년부터 7년여간 한국외국어대학의 야쿠츠크 '사하한국학교'와 '16번 학교'에서 협력교사로 7년을 일했다. 러시아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했던 경험은 방과후학교 '레오'에서 만나는 학생들과도 도움이 됐다.
"러시아 고려인 등은 가족 단위로 오기 때문에 안전하고 공원이 있고, 교육환경도 좋은 곳을 찾아 안산 원곡동 땟골에서 사동 쪽으로 많이 옮겨오고 있어요. 우리 센터에도 현재 30여 명이 와요. 러시아 고려인과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고려인과 현지인들이 찾죠."
한국에 온 것은 2015년이니 어느새 5년여가 다 돼간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안산 다문화센터장으로 일하다 2019년 7월 사동 쪽에 문을 열고 부부가 함께 레오를 운영하고 있다.
"경제적인 부담도 크지만, 러시아에서 생활할 때 도와주시던 현지인들의 고마움도 자주 떠올라요. 아이를 낳고 힘들 때 붕어, 잉어 등 고아서 가져다주시기도 했죠. 우리가 그곳에서 살았던 것이 한국에 온 러시아 이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죠."
고려인 자녀 "남과 북을 잇는 통일의 주역이 될 것"
한국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는 고려인을 동포보다는 외국인으로 보는 시선에 낯섦을 이야기했다.
"얼마 전에 주차금지 고깔 글에 쓰인 '주차금지. 외국인이세요?'를 보고 외국인에 대한 공격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에 놀랐어요. 동포라 해도 외국인으로 받아들이고 억양 등이 강한 러시아어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차이를 차별로 인식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나는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하지만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놀며 한국을 이해하고 좋은 감정을 갖길 바라기 때문에 레오는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과 북을 오갈 수 있는 러시아 고려인 자녀들이 통일의 주역이 되길 바란다. 언어를 가르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은 한국에 정착하든 다시 돌아가든 이곳에서 얻은 경험들이 통일을 이끌어갈 힘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같이 살려면 언어가 중요해요. 러시아, 중앙아시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온 고려인들이 안산지역에 타운이 형성돼 있어 언어나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아 아이들과 부모들을 설득하죠. 갈급함이나 절실함이 없는 아이들을 끌고 나가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교육제도 진입 어려운 학생 위한 대안학교 꿈꿔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이뤄지지만, 올해 입학한 러시아 이주민 자녀들은 수업을 듣기도 어려워져 레오는 현재 수업지도 중심으로 운영한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월~금요일 오후 2시부터 6시 30분까지 한국어와 국어 영어 수학 컴퓨터 교육과 그림 그리기 등 활동을 한다.
현재 타임제로 운영되는 레오를 찾는 학생은 30여 명이다. 코로나19로 자원봉사자나 외부 강사를 부를 수 없어 형진성 센터장 부부가 이끌어가고 있다.
형진성 센터장은 "한국에 남든 떠나든 '따뜻했던 나라였다'라는 좋은 느낌, 애틋함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서류가 없어서 한국 교육제도에 들어갈 수 없는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 규모가 커지면 나중에는 대안학교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