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이 우리 곁을 떠났다. 논란이 있었지만 나는 문상을 갔다. 2년 전 노회찬, 얼마 전 김종철 선생, 그리고 다시 박원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문상을 갔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문상집을 나서면서 순간적으로 나는 최장집 교수 생각을 했다.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2002년에 처음 등장하였다. 형식적으로 DJ가 집권을 한 것이 민주화라고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정말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것은 노무현 때였다. 이제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형식으로는 완성이 되었고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MB와 박근혜가 연달아 집권하면서, 비록 껍데기 뿐인 민주주의마저 위협받는 상황을 다시 경험했다.
민주화,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공식은 어떻게 보면 80년 민주화 항쟁의 주인공들이 헤게모니를 갖고 권력의 중심에 서는 과정과 일치하는 지도 모른다. '주류의 교체'라는 단어가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민주당은 지금 권력의 중심에 서 있고, 그걸 지탱하고 있는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이 주류 세력으로 전환되는 중이다.
주류 세력의 교체와 박원순 사건
'박원순 사건'은 이 한 가운데에서 생겨났다. 더 앞을 보면 안희정 사건도 있고 오거돈 사건도 있다.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개별적 일탈 같은 사건이지만, 민주당 계열이 집권한 지방자치단체와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내부 고발과 견제를 위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방치된 문제는 결국 폭발하였다.
오거돈 때, 아니 안희정 때 전면적인 성찰과 함께 제도적 정비를 하였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집권당이자 한국에서 가장 큰 정치집단인 민주당이 뭔가 각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 사건은 크게 직장 민주주의와 젠더 민주주의, 두 가지 흐름의 중첩점에서 볼 수 있다. 직장 내 위계에 의한 극도로 수직적인 권력 구조, 이 문제를 조금 더 수평하게 전환하자는 것이 직장 민주주의 논의이다.
그리고 생활 환경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젠더 차이에 의한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것이 젠더 민주주의다.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보다 상위 개념은 생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가정에서의 폭력과 의사 소통의 실패 등을 지칭하는 가정 민주주의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 투사의 두 얼굴
586,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국가 민주주의에 익숙하다. 또 국가 혹은 지자체의 재정 정책과 복지 정책을 얘기하는 국가 수준의 민주주의와 정책에 대해서 주로 얘기하였다. 이걸 지역, 젠더, 그리고 가족과 같은 좀 더 생활 수준의 민주주의 담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민주주의를 만든 게 아니라 배운 것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국가와 싸워서 만드는 민주주의를 우리는 교과서로만 배웠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개념을 직장과 가정, 그런 생활 단위로 연결시키는 것이 민주화 논의의 다음 단계라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
한 때 '민주주의의 투사'였던 사람이 직장에서는 권위적이고 가정에서는 폭력적인 일이 비일비재하다. 불행한 청년 시대를 보냈다고 그게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은 아니다. 엘리트주의, 특히 남성 엘리트주의 시대에 보수든 진보든, 하급 직원에 대해서 권위적이고 일방주의적인 것이 문제라는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착각하고 그렇게 하는 게 효율적인 조직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민주당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정책적 대안을 아예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법규를 비롯해서 몇 가지 제도 정비들을 했다. 그러나 그건 주변부적이고, '이런 것도 했다'는 면피에 가깝다. 생활 민주주의에 대한 좀 더 전면적이고 강력한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그게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민주당이 당으로서 가진 약점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민주당은 수많은 선거를 치루어 왔고, 특히 지난 총선의 압승 이후 더 많은 선거에 나서게 될 것이다. 원래 정당은 그러라고 있는 조직이다. 크든 작든, 선거 때마다 캠프가 만들어지고 정치적 동지와 함께 '영웅 만들기'가 이루어진다. 후보는 누구나 영웅이 되고 이기면 그 영웅 현상이 더 강해진다. 그렇다고 집권하면 '왕국'이 만들어져서는 곤란하다. 그걸 견제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장치가 없다면 선거용 영웅 현상이 소왕국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피하기가 어렵다.
비극을 피하기 위하여
지금이라도 지체하지 않고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거나 영향권 안에 있는 수많은 지자체와 공공기간, 그리고 공기업들에 대해서 최소한 '젠더 민주주의' 정도라도 점검을 하게 해야 한다. 또 필요한 장치와 매뉴얼 등을 만들어서 자발적인 '젠더 민주주의 선언' 같은 거라도 하도록 해야 한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야당 시절에는 "집권하면"이라는 유보 조건을 늘 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집권여당이다. 자발적 선언은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무슨 제도 정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노력하겠다"고 선언하면 되는 일이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그렇게 하도록 '권고'하는 결정을 내리면 된다.
단체장 등 기관장 차원에서 선언하고, 기관 차원으로 그 선언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면 되는 일, 간단하지만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결정 아닌가 싶다. 넓게 보면 생활 민주주의, 좁게 보면 젠더 민주주의, 제도로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하는 게 좋다. 앞으로도 수많은 선거를 치러야 하고 수많은 영웅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비서를 여자로 하지 말자고 하는 걸 대안이라고 논의하는 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럼 여성 단체장이나 기관장의 비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퇴행적 논의보다는 좀 더 근본적이고 실용적으로 생활 민주주의와 젠더 민주주의에 대한 제도를 고민하는 것이 추도가 끝난 민주당이 지금 시급히 해야 할 일 아닌가 싶다.
소왕국이 되기 십상인 지자체, 그리고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인 검찰과 경찰, 군대, 이런 곳에서의 젠더 민주주의 논의는 민주당이 아니면 추진하기 어렵다. 이런 거 잘 하자고 집권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