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8일을 기억합니다. 5살 터울이던 동생 대희가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날이죠. 군 전역 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꿈 많던 아이는 그로부터 49일을 버티다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우 25살이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그 날 밤까지도 대희가 안면 윤곽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달려오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대희가 세상을 떠난 뒤 4년이 흘렀지만 우리 가족은 대희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놓아줄 수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제 잘난 맛에 살던 못난 형은 스스로가 얼마나 무력한지만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1인시위를 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죠. 우리 가족이 걸어온 지난 4년의 무게를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요.
충격적인 병원 CCTV 속 장면들
처음부터 싸우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병원으로부터 얻은 수술실 CCTV를 처음 열어본 그 날까지도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아마도 병원에서 가족을 잃은 많은 유족이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한 마디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했을 그 순간에, "법대로 하시라"는 병원장의 말이 우리 가족을 이곳까지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열어본 CCTV는 온통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집도의는 뼈만 잘라놓고 이방저방을 옮겨다녔습니다. 의전원을 졸업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그림자의사가 그 뒤를 이어받았습니다. 수술 중에 대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시트를 타고 붉은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져 고였습니다. 수술 중, 수술 후에 간호조무사들은 고인 피를 대걸레로 쓱 닦아냈습니다.
집도의와 그림자의사, 마취의사가 수술실을 드나드는 동안에도 대희는 계속 피를 흘렸습니다. 감정기관에서는 대희가 쏟은 피가 수술 중에만 3500cc라고 했습니다. 70kg인 제 몸속엔 피가 5000cc 정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이 병원에선 대희에게 한 차례도 수혈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후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수술실을 드나든 이유가 밝혀졌죠. 당시에 대희와 동시에 진행된 수술이 모두 3건이었고 의사들은 이 수술방 저 수술방을 옮겨가며 뼈를 자르고 지혈하고 봉합하는 과정을 분업했던 겁니다. 그래서 피를 그렇게나 많이 흘린 대희가 어떤 상태인지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거지요. CCTV에 따르면 대희가 피를 흘리는 동안 간호조무사가 수술실에 홀로 남아 지혈한 시간만 30분이나 됩니다.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던 의사는, 심지어 마취과의사와 그림자의사도 동생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습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의사로서 출혈 가능성을 고려해 (중략) 적절한 치료를 신속하게 취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다...(중략)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이를 게을리하여,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였고 (중략) 적절한 치료나 상급 병원으로의 이송 준비 등을 하지 아니하였고, 수술 후 회복실에 있던 피해자의 혈압, 맥박 등을 세심히 감시하지 아니하였고, 간호조무사에게 피해자의 상태 관찰을 일임하고 퇴근했다"라고 적시돼 있습니다.
이때부터 겪은 고통은 이루말 할 수 없습니다. 대희의 억울한 죽음만큼 힘들었던 건 진실을 밝혀줄 거라 기대했던 검찰의 배신이었죠. 경찰은 의사 3명과 간호조무사들을 무면허 의료행위 관련 혐의로 기소하려 했지만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수차례 찾아다니며 항의를 하고 나서야 경찰은 겨우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송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의료진을 기소해 책임을 묻는 대신 사건을 처음부터 재수사했습니다. 이미 경찰이 1년 10개월이나 수사한 사건을 1년 1개월이나 더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기소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적용된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로 집행유예가 고작이었죠.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가 인정돼야 영업정지나 자격정지 같은 처분이 나올 수 있는데 검찰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공교롭게도 수사 검사와 피고인 변호사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사법연수원 동기 동창이란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과한 의심일까요.
그동안 언론 인터뷰도 몇 번이나 해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습니다. 검찰은 잘못된 게 없다고 했고 우리 가족만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다 포기할까 싶었지만 마지막으로 이렇게 직접 글을 씁니다.
우리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전엔 내 일이라곤 생각한 적 없는 일들이었죠.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입었다는 뉴스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역시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끝까지 책임진다'라던 의사가 6개월 차 신입 의사와 교대하고, 수사 검사가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일이 우리 가족에게만 일어난 일일까요.
들추면 고통뿐인 기억을 헤집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로 한 건 그래서입니다. 이제 기다리지 않고 제가 직접 쓰겠습니다. 하늘로 간 동생의 이야기를, 이 땅 위에 남은 우리의 이야기를요. 다음 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대희의 못난 형, 태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