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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9일(현지 시각), 캐나다 노스 밴쿠버에 있는 라이온스 게이트 병원의 직원이 안면 가리개와 마스크를 얼굴에 하고 임시로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앞에 서 있다.
지난 3월 19일(현지 시각), 캐나다 노스 밴쿠버에 있는 라이온스 게이트 병원의 직원이 안면 가리개와 마스크를 얼굴에 하고 임시로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앞에 서 있다. ⓒ AP=연합뉴스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된 느낌이었다. 캐나다에서도 필수업종을 제외한 모든 사업체와 기관들의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집에만 있기 갑갑해 드라이브를 나서보면 온 도시가 굳게 닫힌 문과 'closed' 사인으로 가득했다. 땅덩이 큰 나라답게 널찍한 주차장들과 길가는 그래서 더욱 텅 비어보였고 차량도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정지된 세상 속에서 나만 홀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기이해서 드라이브도 마뜩잖았다.

어릴적 좋아했던 TV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폴'은 시간이 정지되면 '니나'를 구하기 위해 마왕의 소굴이 있는 4차원 세계로 떠났다. 폴에게는 '니나 구출'이라는 뚜렷하고도 원대한 목표가 있었건만 내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은 연구진의 몫이고, 환자 치료는 의료진의 일이었다. 나는 그저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일조하기 위해 손 잘 씻고 거리두기 하면서 '슬기로운 집콕생활'에 대해 고민하는 게 최선이었다.

"칠십 년 넘게 살면서 이런 세상은 처음 본다"

캐나다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방편으로 '소셜 버블' 규칙이 시행돼오고 있다. 소셜버블(social bubble)이란 '가족이나 친구로 이루어진 작은 그룹'을 지칭하는 말이다. 가까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제한해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 동시에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추적을 용이하게 하자는 의도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이후 '소셜버블' 안에는 단 5명만 포함시킬 수 있었다. 한 집의 구성원이 5명을 넘을 경우에만 예외규정이 적용됐다. 우리 가족은 딱 다섯 명이니 가족 외에는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봉쇄령에 소셜버블까지, 이는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지하고 집에만 머물라는 정부의 명령과도 같았다. 일주일에 한번 장보러 갈 때 외에는 바깥 출입을 자제했다. 아이들 학교도 문을 닫았고 외출할 일이 없으니 새로 옷이나 신발을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피아노, 태권도, 수영 등 모든 과외활동이 중단되어 그에 따른 비용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차를 타고 나갈 일이 없으니 주유비도 들지 않았다. 지출되는 돈이라면 늘어난 식비와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아이들 책값 정도였다. 뜻하지 않게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지난 6월 12일, '소셜버블'의 인원을 10명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는 발표가 났다. 몇 달만에 그리운 친척이나 친구들을 만나 함박웃음 짓는 사람들의 사진이 SNS를 채우기 시작했다. 한 소셜버블 안에 있는 사람들과는 '안을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다'고 했다. 어떤 기자는 몇달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맥주 한 잔 기울인 일을 언급하며, 이런 것도 뉴스가 된다고 어이없어했다. "칠십 년 넘게 살면서 이런 세상은 처음 본다"는 엄마의 말마따나, 포옹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다.

그렇게 희한하기만 하던 세상이 조금씩 본모습을 회복해가고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이 효과적으로 억제되고 있다는 판단하에 주별로 상황에 맞춰 단계별 경제재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4, 5월 내내 하루 1000명을 훌쩍 넘기며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던 확진자수가 5월부터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고 다행히 감소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몇몇 주에 집중된 확진자가 하루 백 명대에서 많게는 삼백 명대를 오가는 중이다. 두 번째로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온타리오주는  얼마 전 4개월만에 가장 적은 확진자수를 기록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날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에 온타리오주에서는 광역 토론토 및 몇 지역을 제외하고, 하루 확진자 다섯 명 미만을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7월 17일부로 '3단계 재개'가 시작됐다. 고위험 장소로 분류된 놀이공원, 워터파크, 뷔페 음식점, 사우나 등이 또다시 제외되긴 했지만 레스토랑, 체육관, 극장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업체와 서비스가 재가동되는 3단계는 전체 재개 계획에 있어 가장 주요한 행보라 할 수 있다. '3단계 재개'에는 모임 가능인원의 확대도 포함됐다. 이제 실내에서는 50명, 실외에서는 100명까지 모임을 가질 수 있다. 지역사회 이벤트와 모임, 콘서트, 라이브쇼, 페스티벌, 컨퍼런스, 각종 스포츠 활동 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난 달 오픈 후 학급 당 10명으로 제한되었던 어린이집 정원 역시 7월 27일부터 15명까지 늘릴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코로나 사태 이전 수용인원의 90퍼센트까지 다가선 숫자다. 어린이집의 정상가동은 부모들의 일터 복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경제재개에 있어 필수 조력자 역할을 한다. 부모들이 어린이집같은 돌봄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함으로써 육아를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일이 생겨났던 것이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늘리고 실직자 수당을 지급하긴 했지만 경제적 손실을 온전히 상쇄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혹은 육아의 부담이 고스란히 조부모에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조부모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 아니면 이미 배우자 등 다른 사람을 돌보고 있는 경우, 이는 또다른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한 분야의 문제는 곧바로 다른 분야의 문제로 도미노처럼 연결됐다. 사회 한 부분이 제 기능을 잃으면 연이어 이곳저곳에서 삐그덕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각 분야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를 코로나19로 인해 그 어느때보다 절감하고 있다.

의료업계에서는 3단계 재개조치로 인한 바이러스 재확산 위험과 그에 대한 긴급대비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독감시즌과 맞물려 2차 확산이 현실화될 경우 이미 전례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의료분야에 가중될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지난 14일, 2차 확산 대비책이 마련돼있으며 곧 구체적 내용을 발표하겠다는 더그 포드 온타리오 주지사의 성명이 있었다. 신민당 안드레아 호와스 의원은 포드 주지사의 자신감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포드 주지사의 지역방문(3단계 재개가 시작됨에 따라 주민들의 필요를 직접 듣는 기회를 갖겠다는 취지)에 대해서도 재선 기반을 다지기 위함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같은 비판이 포드 주지사를 향한 정치공략인지 실질적인 우려인지는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 3단계 재개는 이미 시작됐고 독감유행 시즌도 불과 몇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팬데믹 초기보다 의료나 보호장비 등에 있어 100배는 더 잘 준비되어 있으며 그럼에도 결코(3번이나 강조했다)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는 주지사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불확실성'

캐나다에 아직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았을 때, 언론에서는 사스(SARS)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초기방역에 실패해 한국식 민주방역이 아닌 봉쇄령을 택해야 했었다. 한국에서 하루 2만여 건의 검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드라이브스루 검사도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겨우 '진단센터'가 생겨났지만 그나마 검사가 아닌 상담을 진행하는 곳이라는 말에 헛웃음만 나왔었다. 그랬던 기억을 떠올리면 주지사의 말은 반드시 믿을만한 것이어야 한다.

이제 캐나다는 봉쇄령이 내려지기 이전 모습으로 성큼 다가서긴 했지만, 모든 재개 조치들에는 단서가 따라붙기 때문에 경제재개가 곧 익숙했던 일상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레스토랑에서 거리 확보를 위해 테이블 수를 줄여야 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사업체가 문을 열긴 하지만 엄격한 안전 및 위생관리 수칙을 엄수해야 하니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모임 가능인원이 확대되긴 했지만, 거리두기 없이 가까이 교제할 수 있는 인원을 10명으로 제한하는 '소셜버블' 규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마트의 수용인원 제한도 계속되고 있어서 2미터씩 떨어져 줄선 채 입장해야 할 때가 많다.

아직 멀어 보이는 일상의 회복과 함께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사람의 몸속에서 촉수를 뻗는 모습이 관찰되었다는 둥, 변이가 생겼다는 둥,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여전히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바이러스의 정체는 다른 분야에까지 불확실성을 파생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이 염려하듯 올가을 2차 유행이 시작될 것인지를 비롯해, 경제회복까지는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백신과 치료제는 언제쯤 접할 수 있을지, 불과 6주밖에 남지 않은 9월 새학기 학교의 모습은 어떠할지,(1. 엄격한 안전수칙 하에서의 정상등교, 2. 온오프라인 수업의 병행, 3. 전적인 온라인수업, 이 세 가지 안에 대한 학부모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여전히 논의가 진행중이다) 아직까지 모호한 것 투성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눈이 녹아 새순이 돋고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하더니, 가지만 앙상하던 나무가 풍성한 나뭇잎을 가득 매달고 초록을 뽐내고 있다. 산책을 할 때면, 섭리에 맞춰 변함없고 확실한 건 자연뿐이구나 싶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머지않아 세 번째로 계절이 바뀔 것이다. 그 즈음에는 사람 사는 세상도 자연을 닮아 있으면 좋겠다.

#캐나다#코로나19#경제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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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말고 진짜 어른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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