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24일 개최 예정이던 2020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되면서 대한민국 올림픽 참가 역사는 전 세계와 함께 한 차례 쉼표를 찍게 됐다.
한국 체육은 냉전 구도 속에서 불참했던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제외하곤 줄곧 올림픽 대회에 참가해 왔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도 참가했으니 올림픽 출전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이 '코리아(KOREA)'란 이름을 내걸고 처음 출전한 올림픽은 1948년 2월 생모리츠 동계올림픽과 같은 해 8월 런던 하계올림픽이었다.
런던 올림픽은 1948년 8월 14일 폐막했는데 다음 날인 1948년 8월 15일은 한국 사회에 의미가 깊은 날이다. 대한민국 공식 정부가 수립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정부를 공식 수립하기도 전부터 올림픽에 참가했다. 이 배경에 몽양 여운형이 있었다.
1945년 해방 후 체육계 인사들은 신생국 대한민국을 국제무대에 알리기 위해서는 올림픽에 참가해야 한다는 뜻을 모았다. 지금이야 '대한민국(KOREA)'이란 이름으로 으레 참가하는 올림픽이지만 나라가 없던 시절에는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해야 했다.
일장기를 달고 1932년 로스앤젤리스 올림픽,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었고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손기정과 남승룡이 마라톤 금메달, 동메달을 획득하며 민족적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었다. 베를린 올림픽 메달로 불거진 '일장기 말소사건' 경험이 보여주듯 당시 한국 사회에 올림픽은 단순한 체육대회를 넘어서는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신생국으로 올림픽 출전에 힘을 모은 배경이다.
올림픽 출전에 힘쓴 여운형 선생
몽양 여운형은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회장을 겸해 올림픽 무대 참가에 힘썼다. 1947년 6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 제41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 인준을 받으며 올림픽 참가 길이 열린다. 정부수립 전이었지만 국제법상으로 정부수립이 보장돼 있는 상태였다. 미군정 역시 대한민국 IOC 인준을 지원하고 나섰다. 공식정부 수립 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IOC 인준을 받은 건 한국이 최초였다.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이대택 국민대 스포츠건강재활학과 교수는 "해방 후 조선(대한)체육회장을 처음 역임한 인물이 왜 몽양 여운형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제강점 당시 조선체육회장을 역임한 인물들 중 다수가 친일 행적을 가지고 있다"며 "(몽양은) 해방 후 국가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체육이 가지는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희생도 치러야 했다. 미국을 오가며 올림픽 참가에 힘썼던 전경무 올림픽대책위 부위원장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일본 후지산 인근에서 목숨을 잃는다. 스톡홀름 IOC 총회에 참가하는 길이었다. 미국에서 IOC 인준을 돕던 사업가 이원순이 대신 총회에 참가해 일을 마무리 짓는다.
이원순 자전 <세기를 넘어서>(1989)는 "미군정 하지 중장으로부터 올림픽 대책위원회 대표로 IOC 총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은 전씨(전경무) 사망소식을 들은 지 3일이 지난 때였다. 여운형씨도 곧이어 별도 전문을 보내왔다. 모두 올림픽 위원회가 IOC에 가입되도록 최선을 다해달라는 부탁이었다"고 긴박했던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인명 희생까지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IOC 인준은 신생국 대한민국을 국제무대에 알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IOC 인준 후 대한민국 올림픽 참가를 기념하는 종합경기대회가 1947년 7월 19일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렸다. 기념 대회 참가차 길을 나섰던 몽양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19세 청년 한지근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장을 맡으며 한국 올림픽 출전에 힘썼던 몽양의 마지막 길이었다. 한국은 올림픽 참가를 댓가로 또 다른 희생을 치러야 했다.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한상구 사무처장은 "몽양 여운형은 (올림픽 출전을 포함해) 체육계 전반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었다"며 "업적에 비해 그 가치가 덜 알려진 편인데 이와 관련한 지속적인 관심과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