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왜성은 임진왜란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성곽연구 뿐 아니라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 향후 임진왜란 뿐 아니라 전쟁과 평화, 교류를 주제로 한 관광 상품의 개발도 기대된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은 창원 진해에 있는 '웅천왜성'(경상남도기념물 제79호)을 정밀 측량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진주박물관은 지난 2년간 정밀 측량해 왔다.
웅천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 남해안에 축조한 18개의 성 가운데 하나로, 1593년 일본군 1군 지휘관인 고니시 유키나가(少西行長, 1555~1600)가 주둔하며 왜군의 제2기지로 활용했던 곳이다.
웅천왜성은 자마왜성과 명동왜성을 지성으로 두기도 하였고, 기독교도였던 고니시와 함께 조선으로 넘어온 스페인 세스페데스(Cespedes, G. 1552 ~ 1611) 신부가 활동한 곳이다.
진주박물관은 "웅천왜성은 전략적 중요도가 매우 높은 요충지였던 만큼, 방어시설이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었다"고 했다.
바다에서 오는 적을 맞이하기 위해 성벽을 큰 돌로 조성하고, 다수의 곡륜(曲輪, 방어진지)을 두었으며, 육상을 통해 서쪽에서 공격해 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2단의 해자를 성벽 앞에 두었다.
진주박물관은 웅천왜성에 대해 "측량사업과 학술조사 시에 참고하였던 일본 성곽담화회에서 제작한 도면(2000년 11월 제도)은 주요 시설과 계단, 해자가 표기되어 있었으나, 위치와 크기, 방향 등에 있어 부정확한 부분이 있었음을 새로 확인하였다"고 했다.
성벽 일부에 있는 글자와 표식이 새겨진 돌인 '각자석'(刻字石)에 대해, 진주박물관은 "표식은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기하학적 모양이 많았으나 일본의 경우 오사카성 등에서 이러한 표식이 다수 확인되기에 주목된다"며 "한자, 또는 한글 이름이 새겨진 돌도 다수 확인되었다"고 했다.
또 웅천왜성 본성 외에도, 서쪽 방면에 외성(外城)이 있었음을 구체적으로 새로 확인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진주박물관은 "부북쪽 사면의 성벽과 이중의 해자 구조를 확인하였다. 위치로 보아, 육로를 통해 진격하는 적을 막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고 했다.
또 진주박물관은 "처음 쌓인 당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쌓은 부분과 수리된 부분을 북쪽 사면 등지에서 확인하였다"며 "이것으로 보아 웅천왜성은 임진왜란 이후(정유재란 등)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웅천왜성의 남쪽 사면에 독립된 석축이 처음 확인되었고, 이 부분은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로, 해안에 접근하는 배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주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주박물관은 "산 정상부에서 이전에 확인되지 않은 많은 평지와 건물지를 확인하였다. 성안에 주둔한 부대의 생활공간, 지휘부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진주박물관, 30여곳 왜성 전수 진행 예정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은 2017년 남해 선소왜성에 이어 이번에 웅천왜성을 정밀 측량조사했고, 앞으로도 현재까지 알려진 30개의 왜성에 대한 전수진행할 예정이다.
왜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에 쌓은 일본식 성으로, 경남과 전남 일대에 30곳 이상 자리하고 있다.
왜성에 대해, 진주박물관은 "한반도 남부의 왜성은 '일본의 문화재'가 아니다"며 "왜성 축성에 있어 설계와 감독은 일본군이 담당하였지만, 동원된 인부는 조선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우리나라의 자재를 이용하였다"고 했다.
이어 "임진왜란 이후, 조선군이 활용하기도 했기에 '일본의 문화재'라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며"특히 왜성은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의 읍성과 산성의 축조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