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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래전 열사 분신 현장 맞은 편에 세워진 추모비
박래전 열사 분신 현장 맞은 편에 세워진 추모비 ⓒ 민중해방열사 박래전기념사업회 제공
 
군사정권에 저항하다가 사망한 박래전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박래전 열사 기념사업회'의 사무실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17일 숭실대학교 학생처는 박래전 기념사업회에 현재 기념사업회가 쓰고 있는 공간(학생회관 313호)을 10월 1일부로 회수한다고 알렸다. 

이에 박래전 기념사업회 측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21일 "학교 측이 공간 회수 조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며 "결정이 철회되지 않으면 결연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측이 표면적으로는 '정식으로 단체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성소수자 연대 활동 등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이 기념사업회 측의 주장이다. 

기념사업회 "30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성소수자와 연대 후 학생처서 연락"
  
 박래전 기념사업회가 숭실대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에 연대하며 내건 자보
박래전 기념사업회가 숭실대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에 연대하며 내건 자보 ⓒ 이방인 페이스북
  
1988년 숭실대에 재학 중이었던 박래전 열사는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분신했고, 결국 사망했다. 이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그의 뜻을 기리고자 1989년에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박래전 기념사업회 측은 전혀 일체의 교류나 왕래조차 없던 학교 측이 갑자기 '정식단체화'를 요구하다가, 일방적으로 공간을 회수하겠다고 밝힌 배경을 '성소수자 연대'로 보고 있다.

2019년 3월, 기념사업회는 '국가인권위원회 숭실대학교 시정권고에 대한 입장서'라는 대자보를 썼다. 인권위가 성소수자 관련 영화 상영을 위한 강의실 대관을 불허한 숭실대에 '시정권고'를 내린 것을 지지하는 동시에 학교 측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숭실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의 연대 요청을 받아 작성한 대자보였다.

학생처는 대자보 게재가 이뤄진 직후에 기념사업회 측과 접촉해 '정식 단체 등록을 위해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박래전 기념사업회'는 학교의 공식적인 기구에 속한 단체가 아니므로, 기념사업회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정식 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기념사업회 측은 "학교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5.18 기념사에서 박래전 열사를 언급했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했다. 30여 년 동안 이러한 제안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라고 밝혔다. 논의 과정 중에 학생처가 '추모 행사가 아니라 왜 성소수자 지지 활동을 하느냐'고 지적하고, 기념사업회 측이 '유감스럽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해 11월까지 약 7~8번가량 간담회를 열어 총학생회 산하로 갈 것이냐, 학교 조직에 포함될 것이냐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방학과 코로나 등을 맞아 논의가 잠정 중단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28일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이 숭실대 측의 성소수자 차별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기념사업회의 한 회원이 연대 발언을 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학생처에서 기념사업회에 문제제기를 했으며, 6월 9일 교무위원회 회의를 통해 기념사업회의 '공간 회수'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 공간을 회수한 진짜 이유?
   
 2019년 3월 6일 진행된 숭실대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의 '인간 현수막' 퍼포먼스. 이방인에 연대 의사를 표명한 이후부터 학생처는 '정식 단체 등록' 논의를 제안했다.
2019년 3월 6일 진행된 숭실대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의 '인간 현수막' 퍼포먼스. 이방인에 연대 의사를 표명한 이후부터 학생처는 '정식 단체 등록' 논의를 제안했다. ⓒ 강연주

학생처는 공문에서 ▲사업회 공간은 효율적·정상적 운영되지 않고, ▲ 학교본부가 사업회 활성화를 통해 아이디어 제언했으나 효과가 없었고 ▲ 재학생이 배제됐으며, ▲ (부차적인 이유이나) 이방인(성소수자), 노학연대 등의 첨예한 이슈마저 가세했다 등을 '공간 회수'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윤수 박래전 기념사업회 회장은 "자체적으로 꾸준히 고정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매년 박래전 열사 추모제를 비롯해 시화전이나 문학상을 주최하거나, 주점 행사(축제)나 영화 상영회 등을 해왔다"라며 "사무국장을 포함한 재학생이 소수지만 활동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회장은 "('부차적인 이유'라고 밝혔지만) 성소수자 모임에 대한 연대 활동이나 노학연대(청소노동자 연대) 등을 학교 측이 문제 삼은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념사업회 측이 확보한 6월 9일 교무위원회에서 공유된 학생처 명의의 회의자료는 노골적으로 기념사업회의 '성소수자 연대'에 대해 문제삼고 있다. 

이 자료에는 ▲박래전 기념사업회'의 설립 취지와는 무관한 성소수자 모임, 메갈리아(워마드), 일베 등의 일부 극단적인 성향의 단체들이 공간을 점유하고 ▲"성소수자 단체 '이방인'의 입장을 옹호하는 대자보 게시하였고, 2020.4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 옹호 및 학교본부 비난 취지 발언을 했고 ▲'학교 본부를 적대시하는 것으로 관찰됨' 등이 '공간 회수 취지'의 근거로 서술돼있다.

기념사업회는 회의 자료에 대해 "명백한 허위보고"라며 "일부 극단적 성향의 단체들과 공간을 같이 쓰고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에 대해 향후 책임을 묻겠다"라고 밝혔다.

"기념사업회가 단체 등록 거절" vs. "올해는 논의 자체가 없었다"

성소수자 연대 등을 문제 삼은 기념사업회 탄압이 아니냐는 주장에 학생처 관계자는 "완전히 의도를 곡해하고 있다. 기념사업회가 정식 단체 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에 회수 조치를 한 것"이라며 "모임의 주축이 졸업생들 아닌가. 학교 본부 입장에서는 재학생들 공간이 없는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관계자는 "학교는 기념사업회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공간 회수가 목적이 아니었다"라며 "정식 단체로 등록을 하면 공간도 쓸 수 있고,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기념사업회가 거절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기념사업회 측은 지난해 11월 이후 공간 회수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도 않았다며, '정식 단체' 등록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김남석 박래전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논의 과정에서 제시된 학교 측의 계획안을 보면, 활동 상황을 보고 공간을 주겠다고 하는 등 기존의 공간을 유지하겠다는 보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래전 열사의 형이자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30년 넘게 있던 공간인데 정당한 사유도 없이 갑자기 없애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며 "추후에 학교에 문제제기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래전#숭실대#성소수자#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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