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교회에 대한 애정이 딱히 없다. 교회에 다니며 가족 위해 기도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애정이 있다.
2.
첫 차 타고 출근한 적이 있다. 새벽 4시 20분에 오는 버스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탔는데 만원 버스였다. 버스 안에 앉은 사람은 전부 노인이었다. 이들이 이 새벽에 전부 어딜 가는 건지. 등산하러 가는 건가 했지만 옷 차림이 등산 차림이 아니었다. 새벽 일찍 일감 얻으러 어딘가 가시는 건가 하면서 버스 타는 40분 내내 서서 갔다.
의문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정류장에서 풀렸다. 버스 안 노인은 그 정류장에서 모두 내렸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새벽 기도회 가시는 거였구나.
3.
우리 부모님을 보고 추측하자면 교회는 노년층에게 종합 엔터테인먼트이자 주술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 공동체 같은 공간이다.
아빠는 매우 소심한 사람이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함부로 행동해도 언성을 높이는 적이 없다. 한번은 온 가족이 어떤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반찬에서 죽은 바퀴벌레가 나왔다. 엄마와 나, 동생은 경악을 했는데 아빠는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며, 모르고 먹으면 약이라며 식당 주인에게 따지지 말라 했다. 아빠는 젊은 시절에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와 자녀에게 풀었다. 가족에겐 함부로 하고 남에게만 한없이 자상한 아빠가 싫었지만, 어쨌거나 밖에선 "네네 아이고 제가 부족하고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제가 미안합니다" 하는 사람이다.
아빠는 나이들수록 점점 작아져 갔다. 이젠 키도 나보다 작고 몸무게도 적다. 집에선 아무렇게나 물건을 집어던지고 손을 올리는 폭군이었는데 나이들수록 "그래 괘안타 아이다"만 얘기하는 사람이 돼갔다. 엄마가 뭐라고 하면 "알겠어요", "여보가 하라는 대로 할게요"라고 말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엄마는 아빠가 변해서 좋지만서도 자꾸 위축되는 것 같아 초라하고 안쓰럽다고 했다. 젊은 시절, 가부장의 폭력을 견딘 여성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아빠는 교회 때문에 변한 것 같다. 아빠는 교회에서 운영한 '아버지 학교'라는 프로그램에 참석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내용을 정확히 모르지만,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가 교회에서 엄마를 향해 손편지를 써왔다고 한다. 내용인즉, 젊은 시절에 이쁜 우리 마누라를 때리고, 함부로 하고, 어쩌구 저쩌구 회개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평생 잘하겠습니다, 마누라 사랑합니다 등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다며 신기해 했다.
변한 아빠는 교회에서 전화가 오면 한밤중에라도 달려간다. 아빠는 고물상을 20년 넘게 운영한 경력으로 세탁기, TV 등 못 고치는 게 없다. 1993년에 산 헤어 드라이기를 아직도 고쳐서 쓰실 정도다. 교회는 그런 아빠를 자주 부른다. 하 집사님, 전등이 나갔어요, 불이 안 들어오네요, 본당 엠프가 안 켜지네요, 에어콘에서 물이 떨어지네요, 등등 교회에서 조금이라도 앓는 소리가 나면 쏜살같이 달려가 해결한다.
아빠는 "하 집사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듯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 성격이 소심하다보니 아빠는 한참 어린 동생들한테도 무시당하고 집에 와서 혼자 화내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교회에서 환대받고, 집사님이라고 치켜세워지니까 행복하신 듯했다. 그리고 교회라는 공동체에 무리 없이 스며들기 위해 교회 전반에 깔려 있는 사랑과 친절과 회개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 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를 향한 손편지도 거기서 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1년에 두어 번, 부모님이 출석하는 교회에 간다. 아빠는 "예 목삿님, 우리 딸래미가 왔네요, 에이 아입니다 즈그 엄마 닮아가 이뿌지요, 내 안 닮았습니다. 우리 딸 그냥 평범하게 삽니다. 인천서 대학 나와가지고 스울서 한양 박사 하고(아빠 나 석사 수룐데..), 지금 어디가면 작가님, 기자님 소리 듣고 삽니다. 에이 아입니다 평범하지요. 이만치도 안 하고 사는 젊은 아(아이)들이 어데 있습니까. 아입니다" 한다. 누가 봐도 자랑인데 자랑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것은 나를 그렇게 소개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 딸이 이쁘고 똘똘하고 다 좋은데 체력이 약해가 걱정입니다. 스울 사는 넥타이 부대들이 다 그렇듯이(아빠는 여성인 내가 넥타이 부대, 즉 서울 사는 직장인의 지위를 성취한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앉아서 글만 쓰고 책만 들따 보다 보이, 몸도 마이 상하고 그라지요. 그리고 우리 딸이 인자 시집도 좀 가고 해야 되는데, 원체 똘똘해가 웬만한 머스마들은 씅에 안 차고 그라나 봅니다(음 그렇게 알고 계시는 게 나을 거예요). 우리 딸 근강하게 해주시라고, 배우자도 좋은 놈 만나게 해주시라고 날이면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끝나고 나면 오늘 초면인 교회 어른들이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기도 중의 기도는 역시 목사님 기도다. 온갖 교회 어른의 기도를 받는 퀘스트를 거치고 나면 최종 퀘스트인 목사님 기도가 남아있다. 목사님이 내 정수리에 얹은 손의 온기를 느끼면서 조신하게 두 손 모으고 눈 감고 있으면 아빠는 진짜로 내 체력이 풀피가 되고 금방이라도 훌륭한 사윗감이 나타날 것처럼 싱글벙글해진다.
이렇게 교회라는 공동체는 주술성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누구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기도와 환대를 아끼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게 이뤄질 거라고 확신한다. 이 맹목적인 희망이 작은 도시의 노인을 묶는 강한 끈인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교회 내 엔터테인먼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다. 페북에 여러 번 써서 내 페친은 많이들 알겠지만 엄마는 성악가가 꿈이었다. 여성이 대학에 가는 게 놀라운 일이었던 시절, 엄마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대학에 원서를 냈고 실기 시험 보고 성악과에 합격했다. 물론 집안에서 여자는 대학 가는 거 아니라고, 자퇴하라고 종용해 세 학기만 다니고 자퇴당했지만.
엄마는 현재 경상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4개의 지역 합창단에 소속돼 있다. 당연히 교회 성가대에서도 활동한다. 자신이 가진 탤런트로 하나님을 드높이는 일을 하는 게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엄마가 노래를 하는 건 하나님을 드높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결국 자아 실현을 위해서다. 한번은 교회에서 찬양 대회였나 뭐였나, 아무튼 노래 관련 큰 행사를 했는데 엄마는 소프라노 자리를 꿰차고 싶어했다. 합창을 잘 모르지만 엄마 말에 따르면 소프라노는 가장 화려하고, 가장 주목받고, 가장 노래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다. 엄마는 당당히 소프라노에 발탁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소프라노는 다른 아줌마가 차지했다. 엄마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이유인즉, 자신은 2030대를 스울서 보낸 스울 사람인데, 졸업 못했지만 대학도 다녔는데, 나는 평생 노래만 듣고 살았는데, IMF 때 단칸방 이사해도 이탈리아 가곡 LP판은 절대 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싸들고 다녔는데, 노래라고는 개똥만큼도 모르는 저년이 뭔데, 저년이 뭐라고 소프라노를 차지하다니.
엄마는 그날로 금연을 시작했다. 보건소에 가서 금연껌을 받아와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더니 유튜브와 네이버를 검색해 서울서 제일 잘한다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성대결절 수술도 했다. 유튜브를 보면서 밤낮으로 발성 연습을 했다. 그 다음해 합창대회에선 소프라노 자리를 되찾았다.
엄마는 기뻐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고운 찬양을 올리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하나님이 알아주신 거라고 했다. 이후에도 노래를 향한 열정을 잃지 않고 매일 노래하시는 중이다.
이외에도 교회에서는 무슨 퀴즈대회, 야유회, 전 교인 친목대회, 전도대회 등 자식을 서울로 보낸 노년층이 즐길 수 있는 많은 놀거리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의 모든 행사에 참석하며 즐거워 했다.
4.
우리 부모님을 토대로 추측하자면, 60대에게 놀거리와 즐길거리가 너무 없다. 어떤 사람들은 트로트 열풍의 주역이 오팔세대라고, MZ세대급 신흥 소비층이라고도 하지만 그것도 서울 중산층 이상의 얘기다. 지역에 사는 저소득층 60대에게 유일한 즐길거리는 TV, 놀거리는 산책이다. 이 두 가지에선 사람을 만나 교감하기 어렵다. TV에는 잘 모르는 유행어들이 나와 이해가 안 되고 산책을 하자니 마스크는 답답하다. 여전히 스마트폰은 어려운 물건이다. 1년에 두어 번 오는 자식이 한게임 맞고나 포커를 깔아줘야 스마트폰의 유용함을 겨우 깨닫는다.
5.
나는 한국 교회에 대해 별 애정이 없지만, 부모님이 교회에 다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인생이 조금 더 즐거울 수 있으니까. 밖에선 "하씨"이지만 교회 가면 "하 집사"다. 밖에서야 엄마가 노래를 잘하든 말든 관심도 없지만 교회에선 가수다. 이렇게 즐겁고 대접받는 공간에서 자식을 위해 기도도 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나와 동생 이름으로 매주 감사헌금을 하신다. 그래서 교회 사람들이 내 얼굴은 몰라도 내 이름은 다 안다.
6.
광화문에 운집한 수만 명을 봤다. 저들에게서 우리 부모의 얼굴을 본다. 교회가 삶의 탈출구, 해방구가 된 이들에게 교회의 명령은 곧 법이다. 교회에서 전화가 오면 자다가도 뛰어나가는 우리 아빠가 그랬듯이 말이다. 전광훈은 정부의 방역 지침을 어기고 기어이 집회를 열었다. 교회의 명령을 어길 수 없고, 교회 말을 따르는 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따르는 게 내 자식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집회로 몰려갔다.
7.
노년층을 대상화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광훈이 이번에 집회 안 한다고 했으면 그들은 안 모였을 수도 있다. 교회의 말을 법 같이 따르는 이들이기 때문에 목사의 말을 믿고 다음을 도모했을 수도 있다.
8.
지난 3월 기준, 코로나19 사망자의 약 99.8%가 50대 이상이다. 치명률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올라간다. 60대 1.75%, 70대 6.49%, 80대 16.2%다. 80대의 경우 코로나19에 감염되면 7명 중 1명은 죽는다.
9.
그리고 전광훈 목사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뉴스를 보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교회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따르는 우리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전염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냥 허탈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노년층이 대부분이다. 노년층 치명률을 쳐다 보니 섬뜩하다.
10.
나는 사실 극우 개신교가 외치는 말들, 이를테면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 공산화된다", "문재인 빨갱이" 같은 말들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잘은 모르겠다. 그들이 뭐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공포심을 내비치는지도 알 수 없다. 기이할 정도로 충성스럽고 맹목적인 애국심도 어디서 온 건지 모른다. 그저 7080 반공 국가, 독재 정권의 망령이 아닌지 추측할 뿐이다.
빨갱이를 몰아내면 대한민국 지킨다는 말처럼 주술적인 말도 없을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논리도 없고 실체 없는 희망만 가득한 말이다. 이 주술성이 무속신앙처럼 돼버린 한국 개신교와 맞물려 반공 정서가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 짐작한다.
그럼에도 이 시국에 방역 당국의 지침을 거스르고 집회를 열어 주술적인 말을 쏟아내야 할 이유와 목적이 있었을까. 전광훈은 매 집회 때마다 헌금을 현금으로 걷는데 그 때문이었을까. 좀 속되게 말하면, 815 집회가 '대목'이라 피할 수 없었던 걸까.
11.
전광훈은 확진돼 치료에 들어갔다. 전광훈을 따른 수만 명의 사람들은 감염 위기에 처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 버리고 도망 갔다고 한다. 전광훈이 집회를 기어이 연 배경에 어떤 야욕이 있는지 단언하긴 어렵다. 빨갱이 몰아내고 대한민국 지키기 위해선지, 문재인 대통령을 성토하기 위해선지, 헌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허나 중요한 건, 교회에 다니며 가족 위해 기도하며 당장 나 먹고 살 돈은 없어도 자식 이름으로 헌금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가난하고 나이 든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이웃들도. 이 생각을 하면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하민지 시민기자 페북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