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유령들이 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타인을 위해 일을 한다. 그들은 앱을 통해 모든 일을 하므로 그들의 노동이력, 즉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어떤 일을 했는지 등에 대한 기록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집적된다. 그 데이터는 노동을 제공받는 사업주에겐 영업활동의 핵심원료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력을 확인할 권한이 없다. 법적으로 계약서를 쓸 의무마저 없으니, 사업주가 마음만 먹으면 이들의 존재를 지워버릴 수도 있다. 이런 황당한 일이 혁신이라는 간판을 내건 플랫폼비즈니스에서 벌어지고 있다.
플랫폼사는 플랫폼노동자가 생성한 데이터를 다방면으로 활용한다. 언제 어디에 고객이 있는지, 어떤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지 등을 이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한다. 나아가 기업은 노동을 효율적으로 통제·관리하는 수단으로 이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얼마의 수수료를 주면 얼마만큼의 노동자들이 업무에 뛰어드는지 파악하고, 고객에게 서비스가 도착하는 최단 시간을 찾는 수단 등으로 활용한다. 이 모든 데이터는 기업이 독점적으로 소유한다. 이것이 플랫폼사가 말하는 혁신의 실체다.
노동자들은 자기 노동이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무언가 권리를 주장할 때 난관에 부딪힌다. 플랫폼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법적으로 노동자라는 걸 증명하려 할 때 노동청에 낼 증거자료가 없다. 운이 좋아 일하면서 관리자와 주고받은 SNS기록이 있다면 그것이 유일한 증거다. 그것마저 없으면 기억이나 증언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부에선 전국민고용보험을 하겠다며 플랫폼노동자에게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고용보험 수급권을 인정 받으려면 자기 노동이력을 제출해야 한다. 플랫폼노동자들이 노동이력에 접근할 수 없다면 고용보험 적용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다 떠나서 플랫폼노동자들은 존재마저 부정당할 만큼 하찮은 대접을 받고 있다.
플랫폼사는 기본적인 노동이력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평가하고 심지어 해고하는 상황에도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라이더 A씨는 어느날 갑자기 회사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창구인 카톡플러스친구에서 업무관련 질문을 하면 '상담이 지연되고 있다'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받았다. 같은 일은 하루 이틀을 넘어 무려 4개월째 계속됐다. 배달이 잘못 갔거나,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모두 카톡으로만 소통을 할 수 있는데, 이게 막힌 것이다. 회사는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라이더 B씨는 지난 7월 중순경 월말로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라이더 B씨도 카톡을 통해 이유를 물었으나, 이는 카톡상담가능 사항이 아니므로 회사 공식 이메일로 문의하라는 답을 받았다. 회사에 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이번에도 답변은 없었다. 라이더 B씨는 이유라도 알고 싶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두 경우에 대해 노조가 확인해 보니 사측은 두 라이더에 대한 일종의 인사조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인사조치의 근거와 절차를 당사자들에게는 설명하지 않았다. 플랫폼사들은 노동자와 관련한 그 어떤 데이터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해외에선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ILO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나 정보에 대한 접근권, 데이터가 처리되고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밝혔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디지털 노동자가 노동조건에 관해 플랫폼의 통지를 받을 권리'를 법으로 정했다. 한국에선 논의가 시작되지도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모든 플랫폼노동자가 언제든 자신의 노동이력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사업주가 임의로 접속을 차단해서도 안 된다. 노동자가 자기 경력을 증명하려 할 때, 산재신청이나 부당한 지휘감독을 받았을 경우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등 필요시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업무를 평가하고 있다면 먼저 그 평가에 대해 동의를 구해야 하며 평가의 기준과 조치사항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현재 산재보험은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을 해야 적용받을 수 있는데, 일감을 찾아 여러 사업장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은 플랫폼노동자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주로 하나의 사업장이라는 기준이 아닌 소득에 따라 보험을 부과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 경우에도 노동자가 자기 노동이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이력 데이터는 노동자의 여러 권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혁신은 가짜다. 정부가 제시한 '디지털뉴딜'이 이런 현실조차 바꾸지 못한다면 그 또한 가짜일 것이다. 거창한 구호를 내걸기에 앞서 상식부터 지키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구교현님은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