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됐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역시 30일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9월 6일까지 '천만시민 멈춤주간'으로 하고자 한다"면서 "1주일은 일상을 포기한다는 각오로 생활방역에 철저를 기해달라"며 사태의 심각을 강조했다. 2020년 9월, 모두가 방역에 힘을 모아야 하는 중요한 고비다. 마라토너 남승룡 정신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남승룡은 출중한 실력에 비해 그간 주목을 받지 못한 선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손기정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손기정은 금메달 시상품 월계나무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지만 남승룡은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손기정과 같은 1등의 영광은 없었지만 그는 묵묵히 제 역할을 다했다. 해방 후 손기정과 함께 마라톤 보급회를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마라톤 발전을 이끌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이 처음 두각을 드러낸 경기는 1945년 10월 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였다. 남승룡은 10마일 단축 마라톤 경기에서 2위를 기록한 서윤복에게 "소질이 있으니 열심히 뛰어보라"는 조언을 건넸고 청년 서윤복은 올림픽 영웅의 조언을 듣고 훈련에 몰두한다.
남승룡은 36살이라는 많은 나이에도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해 신인 서윤복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한국 마라톤을 이끌어 갈 서윤복을 위한 자신의 희생은 오히려 값진 보람이라는 생각이었다. 조력자 역할을 다했던 남승룡 역시 12위로 대회를 완주했고 그의 존재는 서윤복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밑거름이었다.
남승룡의 장조카 남청웅 전 호남대학교 교수는 "(서윤복 선수가) 남승룡 선배가 없었다면 자신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던 인터뷰를 소개하며 우승 이면에 있었던 남승룡의 숨은 공로를 언급했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었던 남승룡의 생전 사회적 지위는 대한육상연맹 이사, 전남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정도가 전부였다. 그는 충실했고 한국 마라톤, 한국 체육을 위해 헌신한 숨은 영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K-방역'의 힘 역시 남승룡 같은 숨은 영웅들에게서 온다. 초유의 사태를 맞아 바이러스와 사투하며 최선전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과 거리두기 지침을 스스로 지키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시민들의 참여는 'K-방역'을 이끌어 내는 진정한 힘이다.
'K-방역'은 긴 기간 이어나가야 하는 마라톤 같다. 남승룡은 마라톤을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생각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제 역할을 해냈던 한국 마라톤의 숨은 영웅, 마라톤으로 삶의 철학을 실천했던 남승룡 정신이 더욱 절실한 2020년 9월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