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에 없던 순간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요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거대한 기후 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그럴 순 없죠!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아나서려고 합니다. 시민기자가 되어 같이 참여해 주세요. [편집자말] |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어느 날 조례시간, 담임 선생님이 우리 학교가 재활용 시범학교로 선정되었다는 알림을 전했다. 교탁 위에는 가로세로 25센티 정도의 쓰레기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돌출된 세로줄이 있는 파란색 몸통에 삼각형의 하얀색 뚜껑 달린 작은 휴지통이었다. 앞으로 그것에 우리 반 58명이 버릴 쓰레기를 담을 것이라고 했다. 쓰레기를 최대한 만들지 말라는 우회적 압박이었다.
하교 시간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쓰레기통 주변은 넘쳐난 쓰레기로 지저분했다. 당번일 때면 다 주워 담아 버려야 했다. 너무 싫었다. 다들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어느새 우리는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친구에게 넘기는 쪽지 접듯 과자 봉지를 세로로 길게 접어 꼬았고 종이 곽은 뜯어서 납작하게 만들어 모았다. 양과 부피를 줄이기 위해 궁리했다. 습관이란 신기해서 매일같이 차고 넘치던 쓰레기통에 우리를 맞췄고 이내 익숙해졌다.
재활용 시범학교 졸업한 지 20여년...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작년, 고교시절 짝이었던 친구와 다른 친구의 결혼식에서 마주한 날, 폭풍 수다를 떨던 도중 쓰던 냅킨을 접어놓은 모습을 봤다. 예전 그대로였다.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나도 고교 시절 이후 자주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강제에 의해 울며 겨자먹기로 갖게 된 습관이었지만 어느새 몸에 밴 것이다.
생활을 하다보면 수시로 쓰레기가 쌓인다. 생수병, 캔과 플라스틱 용기, 스티로폼을 각각 모아 주 1~2회 분리배출 쓰레기로 내놓고 있다. 나의 분리배출 습관도 고교시절의 경험 덕분에 조금 부지런하다 뿐이다. 친환경 소재로 된 물건들을 적극적으로 쓰며 생활의 편리를 반납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 편리와 불편 사이를 저울질하며 적당히 타협한다.
하지만 고교시절의 인식과 경험 때문인가? 쓰레기를 비우러 갈 때 마다 분리수거장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산을 마주할 때면 불편한 심정이 된다. 수거 포대 바깥까지 삐져나온 택배 박스들이 윗부분만 열린 채 마구잡이로 널려 있고 음식물이 묻은 병이며 비닐봉지가 흔하게 눈에 띈다.
어떤 출근길 아침에는 수거 직원이 "또 이렇게 해 놨군" 체념하듯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개인차원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는 걸까?'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바로 지금 내가 마주하는 상황을 불편하게 여기는 감각, 그것을 조금이나마 좋게 만들고픈 고민, 직접 노동하는 사람의 입장과 쓰레기의 수거와 처리, 순환의 과정을 한번 알아보려는 노력과 상상력에 힘입어.
흔히 재활용품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물건들이 실은 재활용되지 못한다고 한다. 사용한 칫솔, 컵라면 용기, 음식 묻은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용기가 모두 일반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 번거로워도 플라스틱 용기에 묻은 음식물 등 오염물질은 깨끗하게 씻어 내놓아야 재활용이 가능하다.
물질의 풍요로 인해 몽당연필과 양말을 기워 신는 풍습이 사라진 지 오래된 지금, 많은 물건들 특히 일회용품이 너무 쉽게 쓰이고 마구잡이로 버려진다. 정책을 입안하는 환경부에서 각 지자체를 통해 수시로 안내자료를 공동주택에 배포한다.
예쁘고 알아보기 좋은 이미지와 설명을 곁들여 친절하게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게시판에 설명을 해 두었지만 여전히 금지물품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자취를 드러낸다.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못하거나 또다른 비용을 수반한다.
물론 고교 시절처럼 당번이 돌아와서 직접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수의 담당자가 수많은 주민들이 내다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 노동에 대한 비용은 내가 낸 아파트 관리비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위생과 미관상에도 좋지 않다.
대충 분리되어 차에 실린 쓰레기가 처리장에 가서 제대로 정리되는 일은 더 어렵지 않을까? 우리의 귀찮음이 복리가 되어 쌓이고 쌓인다. 그렇게 처리된 쓰레기가 땅과 물에 스며들어 생기는 오염을 정화하는 비용도 내가 내는 세금으로 지불할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몸에 생기는 변화에 대한 건강상의 비용은 포함조차 되어 있지 않다.
80년대 중화학 공업이 대세이던 산업화 시대에는 수시로 낙동강에 공업 폐수가 유출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곤 했다. 재활용 시범 학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후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재활용 방법을 몰라서 또는 귀찮아서 지키지 않고 내버려지는 쓰레기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쓰레기들이 내뿜는 유해가스와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기간 쌓이며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더군다나 올해 초부터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지구를 덮쳤고 역대 최장의 장마가 이어져 환경오염의 영향에 대한 우려가 여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환경을 지키는 일, 상상력을 멈추지 말자
내가 사는 부산의 서쪽 끝 낙동강 하구에 을숙도라는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 리포트 작성을 위해 그곳에 간 적이 있다. 해질녘, 강에 인접한 곳 특유의 습기를 머금은 악취로 코를 움켜쥐며 세상의 끝과 종말을 생각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만든 갖은 편리한 것들이 땅속에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우리를 삼키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은 몇 십 년이 흐른 지금 많은 부분 현실이 되었다.
이제 그곳은 멋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그 땅을 가득 메웠던 쓰레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두텁게 다져 만든 매립지 위는 공원이 되고 인근에는 현대 미술관이 들어섰지만 밑에 묻힌 쓰레기들은 대부분 썩지 않고 고스란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미 지구가 부담하는 환경오염은 오랜 노력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현대문명이 이룩한 많은 것들을 버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갑자기 자연으로 돌아가 무위의 생활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돌이킬 수 없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지금의 환경적 위기는 가속화될 뿐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쓰고 버린 것들에 대한 감정이입, 고민,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들과 과정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내가 쓴 것을 어떻게 버리면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에 보탬이 될지 방법을 고민해 보고, 그것이 어디로 가 또 어떻게 처리되어 되돌아오는지 조금만 상상력을 동원해 관심을 가지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무수한 안내와 교육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 환경부나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올바른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돌아오는 주말, 가족 모두 모여 홈페이지에서 방법을 찾아보고 각자 역할을 분담해 보자.
다 먹은 페트병은 비닐라벨을 분리해 찌그러뜨리고, 신문지는 납작하게 모아 끈으로 묶고, 과자 가루가 묻은 비닐은 깨끗이 물로 씻는 일을 시작해 보자. '비우고 씻고 나눠서 제대로 된 곳에 버리기'. 그 작은 노력은 바깥으로 나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 만큼이나 필요한 환경 교육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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