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거의 가지 못한다. 대신 국내 여행은 느는 추세다. 요즘 SNS에서는 작년에 갔던 해외 여행지를 추억하는 사진과 글이 올라온다. 그 사진만 봐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언제 갈 수 있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여행 마니아들이라면 한 번쯤 꿈꿔왔던 일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바로 여행책을 쓰는 방법을 공부하는 일이다.
언제든 해외여행이 다시 열리고 국내에 새로 발굴된 여행지를 가게 될 때 그곳을 취재해서 책을 써보면 어떨까? 하지만 핸드폰 하나로 여행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취재가 좋아야 좋은 여행책을 쓸 수 있다.
국내외 여행서를 57권 냈고, 10년간 여행책을 만들어온 여행전문출판사 유정식 대표를 만나 여행 작가가 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열 가지를 듣고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요즘, 여행은 줄이고 여행작가 공부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작가가 되고 싶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에게 도서출판 나무자전거 대표의 짧은 팁 열 가지를 보낸다.
여행작가에 필요한 '나만의 특별한 것'
- 여행 작가가 되려면 어떤 감각을 갖추어야 하나요?
"책의 반은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지만 나머지 반은 독자가 보고 싶은 것이어야 합니다. 페이스북이나 브런치, 네이버 포스트처럼 글을 쓰는 SNS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여행 글을 씁니다. 그런데 어떤 글은 댓글도 공유도 많지만 어떤 글은 읽히지 않죠. 이렇게 독자의 관심도가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쓴 글이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인지는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나만의 특별한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독자에게 더 이상 정보가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겠죠. 몇 년 전부터 중남미국가와 잘 알려지지 않은 동유럽국가, 심지어는 아프리카대륙의 국가들까지 선망의 여행지가 됐습니다. 그건 곧 이러한 국가들이 국내에 소개된 책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책으로 소개할 필자가 많지 않다는 말도 되겠죠.
저희 <느린 시간의 흐름 멕시코> 저자의 경우 그런 와중에 만난 필자였어요. 멕시코를 가볍게 소개할 정도로 기획되었는데, 중남미 국가의 매력에 푹 빠져 춤과 언어 공부를 하고 있던 필자의 독특한 이력이 책을 좀 더 재미있게 기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경우입니다."
- 여행 작가가 되려면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요?
"여행책을 내고 싶다면 SNS 시대에 걸맞게 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대중들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매력을 충분히 알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옛날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더러 서점에서 내용까지 훑어보고 사는 비중이 크지 않아, 좋은 내용을 썼더라도 독자들이 알기 쉽지 않아요. 출간 전부터 대중과의 소통은 점차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가이드북이든 에세이든 자신의 관점에서 꾸준히 쌓아놓은 정보가 있다면 좋겠죠. 정보는 이미 홈페이지와 SNS에 꽉 차 있고, 출판사와 함께 그거를 트렌드에 맞춰 재가공하는 거죠.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만 빼서 정리하는 식으로요. 저희 가이드북 <특별한 여행 백서>의 필자 정상구 씨의 경우 여행하면서 본인이 불편했던 걸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노하우를 전수하게 된 거죠. "처음 가지? 처음 가면 이렇게 저렇게 해"라고 정보를 계속 전달하다 보니 그게 2~3년 동안 많이 모였던 거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책을 보면 여행 경비의 30~40%는 절약할 수 있어요. 비행기 표를 어느 시점에 끊어야 하고, 어떻게 끊어야 더 싼지도 정보를 주고 있거든요. '땡처리는 무엇인가', '왜 땡처리 상품이 나오는가'처럼 절약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나오거든요. 그 정도로 자신이 여행지에 대해 알아야 하물며 가이드북이 아니라 여행 에세이라도 읽는 독자에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고 생생함을 안겨 줄 수 있겠죠."
- 여행책은 어떻게 써야 하나요?
"여행책을 쓰고 싶다면 권장하는 집필 방법은 따로 있어요. 여행책은 여행을 가기 전에 써야 합니다. 물론 필자에 따라 다르지만, 저희 필자 일부는 그렇게 해요. 글을 50% 이상 써놓고 취재를 하러 갑니다. 원고를 쓸 만큼의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다양하게 있어요. 그러면 그 정보를 토대로 먼저 초안을 쓰고, 그다음에 취재를 갔다 와서 그 글을 수정하면서 내 글로 만드는 거죠. 그래야 필자도 출판사에서도 두 번 일하는 경우가 없어요.
실제로 여행지에 가면 취재해야 할 스팟은 많은데, 시간에는 쫓겨 정신이 없습니다. 어제 못 찍은 장소가 가까운 곳이면 내일 가서 다시 찍으면 되는데, 프랑스의 어느 한 시골 마을이면 그럴 엄두가 안 나잖아요. 그만큼 일정을 수정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한 번 놓쳐버리면 글하고 사진 매치가 안 되기 때문에 독자가 보기 불편해지는 건 당연하겠죠.
물론 사람들이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여행지 정보와 이 여행지가 왜 좋았는지, 왜 하필 이 장소에서 이 음식을 먹었는지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정보들은 필요해요. 쉽게 말해 여행 작가를 꿈꾸는데 단순히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을 하면 어렵습니다."
- 필자가 글을 쓸 때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독자들은 필자가 쓴 글을 전적으로 믿고 여행을 가기 때문에 정보의 객관성과 사실성을 정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여행 정보라는 게 굉장히 시기성이 있어요. 보통 필자가 취재하고 와 글을 쓰고 책으로 출판하기까지가 최소 6개월 정도 걸리는데, 그 사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희 <제주도 여행백서>가 나온 지 지금 두 달이 좀 넘었는데, 그 당시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을 정도로 시장이 큽니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하면서 내용을 오히려 뺐어요. 과거에 우후죽순처럼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는데, 지금 그 게스트하우스 절반이 없어졌거든요. 그러다 보니 기존에 있던 게스트하우스 정보를 빼고 꾸준히 생기는 카페 위주로 추가됐습니다.
마냥 여행 트렌드를 쫓을 수도 없는 거죠. 그래서 저희 가이드북의 경우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부분들은 뒤쪽에 싣고 개정할 때마다 바꿔 나가려 노력합니다. 취재를 계획할 때도, 개정할 때도 필자들에게 이런 부분을 체크해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부분이고요."
- 여행책의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하나요?
"사진기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니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맞춰 글을 써야 하는 게 필자의 기본이겠지요. 그런데 여행책에 들어갈 사진 찍는 법도 일종의 매뉴얼이 있습니다. 볼거리든 먹거리든 독자들이 해당 스팟을 직관적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간판이나 상징적인 이미지 사진은 필수로 들어갑니다.
예를 들면 음식점에 들어가기 전 간판부터 찍을 것. 간판을 찍고 들어가기 전에 음식점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전체 사진을 찍을 것. 메뉴판이 나오면 메뉴판도 찍는 겁니다. 그리고 볼거리를 소개하는 곳이면 해당 스팟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이 필요할 것이고, 먹거리라면 추천할 만한 먹거리 사진은 물론 해당 스팟의 분위기도 필요하겠죠.
여행지에 갔을 때 찍지 못하고 돌아오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이런 것들을 미리 출판사와 이야기 하는 거지요. 그런 사진들이 있어야 필자가 글을 쓸 때도 용이합니다. 취재하는 것과 글을 쓰는 시간 간에 생기는데, 그러다 보면 취재했을 때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기억하지 못해요. 사진을 이런 식으로 찍어놓으면 나중에 현장을 떠올릴 수 있는 거죠."
- 여행에도 트렌드가 있나요?
"중남미 국가들은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올해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가 됐을 겁니다. 여행에도 일종의 흐름이 있습니다. 여행자 입장에서 보면 비용과 시간 못지않게 안전도 중요하죠.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일본, 홍콩을 포함한 동남아국가들이 해외 여행지로 선호되었고, 이후에는 유럽과 북미지역이 인기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한 번 가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보면 더 가고 싶은 욕망이 생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여행을 많이 할수록 안 가본 여행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로 관심이 옮겨지게 되고요.
현재 코로나로 국내 여행지에 눈을 돌리고 있는 추세인데, 그에 맞춰 나무자전거에서 나온 책이 <이야기가 흐르는 소도시의 기행>입니다. 강화도, 삼척, 밀양 등 여행지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주는 국내 여행 에세이에요.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힌 관람객들에게 색다르게 국내 여행지를 느껴볼 기회를, 여행 작가에겐 이렇게도 국내 여행지를 발굴해볼 수 있다는 예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전 자료조사와 반복적인 취재가 노하우
- 여행책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나요?
"이 부분은 출판사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우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이 해당 출판사에 맞는지 출판된 책을 읽어보고 고민한 후 투고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여행 가이드북을 만드는 저희 출판사의 경우엔 처음 책을 쓰는 필자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계약까지 가는 과정이 다소 길다고 할 수 있고요.
필자가 시장조사를 통해 구성한 목차를 받아보고, 한 꼭지 정도 샘플 원고 작업을 해보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봅니다. 그리고 난 후 집필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될지를 필자와 예상해보고 계약을 하지요. 물론 이 사이 여러 차례 피드백이 오갑니다.
계약 후에는 필자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파트별로 원고를 받으며 진행 상황을 점검해요. 간혹 계약 당시와 달리 원고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어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이기도 합니다. 초고가 탈고되면 그때부터 담당 편집자가 붙어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는 피드백 작업이 이뤄집니다. 주로 원고 보강이나 사진 추가 작업이 진행되고, 2~3차례 피드백을 거친 후 조판작업에 들어가게 되지요."
- 여행전문출판사에서는 어떤 필자를 선호하나요?
"이 부분도 출판사마다 달라요. 여행 가이드북을 만드는 저희 출판사의 경우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필자보다 해당 여행지 정보를 잘 알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유독 처음 책을 쓰는 필자가 많다는 말에 대한 이유일 수 있겠네요.
가이드북의 경우 감성적인 글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다양한 검색과 취재를 통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스팟을 소개할 때 이미 어느 정도는 틀이 정해진 경우가 많아서 필자가 놓친 것을 체크해 피드백 과정에서 보강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글을 잘 쓰는 필자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의욕적이고, 성실함을 갖춘 필자인지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글을 써내는 실력보다는 독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피드백 과정에서 보강하는 성실함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원고를 다 써온 필자라도 저희가 요구하는 피드백이 반영이 안 된다면 계약 단계에서 어그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 취재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을 말해주신다면?
"남의 이야기 같겠지만 자료 백업이 정말 중요합니다. 타이베이 책을 쓴 필자의 경우 호텔 측과 취재비는 물론 숙식 제공까지 합의 후 재취재한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분이 3달간의 취재를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 날 호텔 데스크에 노트북을 비롯한 짐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카메라 하나만 메고 돌아다녔어요. 그러고 왔더니 노트북을 비롯한 취재했던 자료 모두를 도둑맞아버린 겁니다. 그때는 필자는 물론 저희도 아득했죠. 그 사건 이후 필자들에게 취재한 자료는 그날그날 저희 웹하드에 올려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취재에서 필자의 체력 또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태국 책을 쓰는 필자는 의욕이 넘쳐 취재에 열을 올리다 보니 취재 중 정신을 잃고 그대로 거리에서 쓰러지기도 했지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마저 잊을 때가 있잖아요. 열성적으로 취재에 임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체력도 신경 쓰면 좋겠습니다."
- 온전히 필자의 역량에 달린 건 무엇일까요?
"출판사가 관여하긴 하지만 여행책을 쓰고 여행 목차와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건지는 온전히 필자의 몫입니다. 여행책 출판사는 특히 필자와 많은 피드백이 오가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줄 순 없습니다. 결국 필자의 역량과 성실성 부분이겠네요.
'베네치아에서 1박 이상 여행자를 위한 추천 코스'를 짠 저희 이탈리아 필자의 경우 실제 이탈리아 여러 대도시에서 여러 해 동안 직접 가이드를 하면서 쌓은 현장 지식과 노하우를 통해 최적의 동선을 만들 수 있었어요. <제주도 여행백서>를 집필한 손만기 필자의 경우 올레 1코스부터 21코스까지 21가지 추천 동선을 넣었고요. 제주도에 살지 않지만 여러 차례 방문해서 최적의 동선을 짜낸 겁니다.
여행 스팟들의 정보는 사전 자료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동선 구상만큼은 직접 반복해 돌아보지 않으면 최적의 동선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결국 필자가 발품 팔아 투자한 시간만큼 독자에게는 시간을 벌어주는 겁니다. 사전 자료조사와 반복적인 취재가 노하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