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에 없던 순간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요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거대한 기후 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그럴 순 없죠!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아나서려고 합니다. 시민기자가 되어 같이 참여해 주세요.[편집자말] |
나는 자기가 아는 어휘의 수가 생각의 폭과 깊이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방법으로 어휘의 양을 늘릴 수 있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영화를 보는 방법도 있다. 나는 국립국어원 누리집을 자주 드나드는 편이다. 이 누리집에는 순화한 우리말을 보도자료로 내놓는다. 단순히 외래어나 신조어를 어떻게 순화했는지 아는 것도 좋지만 그 외래어나 신조어 자체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 알 수는 없다. 그 변화가 이 세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된다면 그에 맞는 단어를 갖게 된다. 그러니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순화어로 올라올 정도면 그 현상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사는 곳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넘쳐 나는 시간을 정말 의미 있게 쓰고 싶어서 다양한 활동을 찾아보고 있다. 헌혈은 예정되어 있고 두 번째로 찾은 것이 유기동물 보호소 자원활동이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혹시나 해서 전화도 해봤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당분간은 자원활동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국립국어원 보도자료에 나온 '플로깅'의 대체어
이것도 물 건너 가고,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천변 산책 겸 청소이다. 그런데 이렇게 산책을 하거나 뛰면서 청소를 하는 것이 나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이미 용어도 있고 순화어도 있다. 그것은 바로 '쓰담달리기'이다.
국립국어원 보도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이삭 등을 줍는다는 뜻의 '플로깅'은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다. 달리기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 정화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달리기 대신 걷기를 할 때는 영어 '워킹(Walking)'과 합성하여 '플로킹(Ploking)'이라고도 한다. '플로거(Plogger)'는 '플로깅'이나 '플로킹'에 참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국립국어원은 '쓰담달리기'를 '플로깅'의 대체어로 선정했다. 여기서 '쓰담'은 '손으로 살살 쓰다듬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쓰레기 담기'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행위라는 본뜻을 살릴 수 있고, 환경을 보듬고 참여자들을 격려하는 느낌도 함께 담을 수 있어 '플로깅'의 대체어로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쓰담운동', '쓰담걷기'(플로킹), '쓰담이'(플로거)와 같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었다(국립국어원 보도자료 게시판 659번 자료 참조).
나는 '쓰담이'였고 내가 하는 일은 '쓰담걷기'였다. 그냥 천변 걸으면서 쓰레기 치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름도 있다니,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만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동질감이라고 할까? 보통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이상하게 볼 수도 있는데 세계 어딘가에는 그런 이상한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인정'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시간에 천변에 나가서 쓰레기를 줍는다.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하는데 산책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대개 비슷한 때에 하는 것 같다.
지난번에는 할머니 한 분이 내가 뭘 줍는 것을 보시고는 '뭐 하느냐'고 하셨는데 바로 뒤에 오는 다른 할머니가 내 가방을 보더니 '쓰레기네' 하셨다. 그런데 오늘 그분들을 또 만났다. 나는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는 편이고,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두 분은 나를 기억하셨나보다. 한 분은 '고맙다'고 하시고, 다른 한 분은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인데 장하다'고 하셨다.
내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기 때문에, 가방 안에 뭐가 있냐고 묻지 않고 저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뿌듯함이 더 느껴지는 것 같다. '왜 할까, 뭘 바라고 할까' 하는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시니 고맙다.
오늘도 쓰담걷기를 나가는데, 작은애가 '봉사활동 많이 하면 선물도 준다는데 그런 걸 알아보라'고 한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니, 봉사인정 시간 같은 것은 상관 없다고 했다.
난 환경을 보듬는 전세계 플로거와 함께 하는 한국의 '쓰담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쓰레기들을 털어주었다. 나뭇잎이 숨을 쉬어야 하는데 막고 있으니 그 부분이 죽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답답할 것 같아서였다. 하루에 한 나무씩, 답답하게 달려 있는 풀뿌리나 비닐 등을 털어줄 생각이다.
그런데 천변에 쓰레기봉투가 거의 다 채워져 간다. 산책하면서 주운 쓰레기를 공용쓰레기 봉투에 넣었는데 내용물이 거의 다 차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이다. 구청에 전화해서 갈아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