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죠?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말은 함부로 내뱉기가 어려웠어요.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꿈인데, 그걸 꿈이라고 말했을 때 '피식' 하고 새어 나올 누군가의 비웃음이 두려웠어요.
그러다 그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한 건 결혼 13년 차에 접어든 작년 가을이었어요. 평소 동갑내기 남편과는 대화가 잘 통했기에 남편에게만큼은 이제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거죠. 글을 쓰고 싶다고, 보다 정확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드디어 말했어요. 말을 꺼내기까지가 어려웠지 막상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편했어요.
그렇게 마음 편한 몇 달이 지나자 저도 모르게 조바심이 생기네요. 글쓰기가 꿈이라 말을 해 놨으니 뭐라도 내놔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생긴 거죠. "어때? 글은 잘 써져?" 하며 가끔씩 묻는 남편의 말에 점점 '노땡큐' 하고픈 마음이에요.
하지만 뭐라도 돕고 싶던 남편은 '글쓰기 프로젝트' 기획 담당자 역을 자청한 사람 같았어요. 예를 들면, 제가 듣고 싶어 하던 글쓰기 강의가 있었는데 그 강의를 반대했어요. 지금은 요령을 습득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저만의 색깔이 없어질까 염려스럽기도 하다고요. 글은 내가 바람 쐴 수 있는 통로인데, 그래서 내가 글을 사랑하는 건데 뭔가 제 자유를 침해당한 기분이 살짝 들어요.
워킹맘이었다가 전업주부가 된 지 6년,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자, 즉 경제적 자유가 없는 자의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도 들었어요. 결국 그 수업은 듣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글도 좀 몰래 숨어서 쓰게 되네요. 시험 당일 날 아침, '나 어젯밤에 공부 하나도 못 했어' 하며 말하는 아이. 그 아이의 심정으로 저도 현재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괜히 떠벌리고 있어요.
어느 순간, 내가 구축해놓은 방어선
남편이 출근하길 기다리며 커피 한 잔을 마시려는데 어느 날 남편이 묻더라고요. 평소와 달리 뭔가 좀 싸한 표정으로 "글쓰기는 그냥 취미인 거지?"라고요. 갑자기 남편이 제 앞에서 해서는 안 될 금기어를 꺼낸 기분이에요.
저는 눈만 끔뻑끔뻑한 채 그 말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지만 순간적으로 날아온 그 질문은 폭발력이 대단해요.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대답 대신 나온 건 왈칵 쏟아진 눈물이었어요. 당황한 건 남편이나 저나 마찬가지. 한두 시간가량 침묵의 시간이 흘렀어요. 제 기분이 가라앉기를 끈기 있게 기다린 남편은 겨우 다른 질문 하나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그 질문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어도 지금과 똑같은 반응이었을까?" 하고요. 음, 아니요. 그럴 리가요. 다른 사람이 물었더라면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그들은 내 꿈을 모르니까요. 그냥 취미라고 둘러댔을 거예요. 남편의 질문을 그냥 넘기지 못한 건 제가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너 글쓰기가 꿈이라더니, 꿈 아닌 것 같네. 꿈이라고 했지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 그걸 꿈이라고 해도 되는 거야?'
꿈이라고 말했지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상황, 꿈이라고 증명할 만한 그 무엇도 없는 현실. 그걸 그 순간 제가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거예요. 체념하듯 '이제라도 그냥 없었던 일처럼 은근슬쩍 취미라고 말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자 울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어요. 취미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이제 와 취미라고 말하기엔 내 꿈이 헐값에 메겨지는 것 같아 싫었고, 꿈이라 대답하기엔 부족한 제 자신이 싫었어요.
'언젠가 글을 쓸 거야.'
'내가 글쓰기를 제대로 안 배워서 그렇지 배우면 곧 잘 쓰게 될지도 몰라.'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 여러 종류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나 봐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예리한 남편의 눈에는 저의 그런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고스란히 비쳤던 거죠. 남편은 저를 깨우고 싶었대요.
"언젠가'라는 생각을 버리고, 네 꿈이 맞는지 스스로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길 바랐어. 그러기 위해서 자극적으로 물어본 거야. 미안해."
비록 자극적이긴 했지만 덕분에 저는 제 꿈이 더 선명해졌어요. 절대로 취미로는 남겨두지는 않겠어, 글쓰기는 내 꿈이야!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브런치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angelasim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