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서초·동작 청년들과 함께 알고 싶은 가게를 소개해드립니다. 관·서·동 청년세대 지원센터 '신림동쓰리룸'과 '프로딴짓러' 박초롱 작가가 안내하는 '관서동 사람들'은 당신 주변의 바로 그 사람들이 동네에서 먹고, 살고, 나누고, 웃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
서울 종로나 방배동의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작은 갤러리를 만난다. 그러나 어쩐지 선뜻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지는 않는다. 문을 열고 고작 몇 발자국을 내디디면 될 뿐인데 그 몇 걸음을 걷기엔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갤러리는 예술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 돈 많은 사람이 가는 사교의 장 같다.
그러나 방배동에 있는 '갤러리빈치'의 최다영 관장은 그런 편견을 깨는 갤러리를 만든다.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듯, 영화관에 영화 관람을 하러 가듯 편하게 오는 갤러리를 만드는 게 최 관장의 목표다.
서울청년센터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에서는 지역 가게를 소개해 지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네 상권 안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돕는 '관서동 사람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방배동 갤러리빈치의 최 관장을 만났다.
젊은 예술가를 위한 색다른 공간
- 갤러리빈치를 소개해주세요.
"청년예술가들과 다채로운 기획전을 진행하는 갤러리입니다. 회화뿐 아니라 설치작업이나 사진전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예술을 담고자 해요. 돈 많은 사람들이 고상한 여가를 즐기는 갤러리가 아닌, 누구라도 편하게 와서 이야기하고 뛰어놀 수 있는 화랑이 되고 싶어 2017년에 개관했어요."
- 청년예술가들에게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갤러리 관장 중에서 젊은 편에 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진 예술가들과 소통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갤러리도 관장의 작품 스타일이나 성향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저희가 컨템포러리아트(현대미술) 갤러리다 보니 그들의 작품을 접할 일도 많고, 그런 활동이 후원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저희도 도약하는 단계고 저희 갤러리에 작품을 거시는 분들도 젊으시다 보니 서로 함께 성장하는 걸 볼 수 있어요. 같이 발전하고 커가는 거죠."
젊은 예술가들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젊은 관장이 있다는 게 새로웠다. 갤러리빈치 최다영 관장은 청년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뿐 아니라 신진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공모전도 운영하고 있다.
- 신진아티스트를 위한 공모전도 운영하고 있네요.
"젊은 작가들 중에는 전시를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전공자도 있고 비전공자도 있어요. 하지만 갤러리에서 찾는 작가들은 아주 소수죠. 작품성도 좋고 이슈도 만들 수 있는 블루칩 작가여야 하니까요. 연예계처럼 주목받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고 나머지 90%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만한 곳이 없어요.
그렇다고 저희가 돌아다니면서 그런 분들을 발굴할 수는 없어서 공모전을 만들었어요. 배경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심사를 해서 작품이 좋다면 전공이나 유명세 상관없이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죠. 지금까지 총 3회를 운영했어요."
- 갤러리에 와서 작품을 사는 분들이 있나요?
"있지만 많지는 않아요. 아직은 사람들이 동네에 아는 화랑에 와서 작품을 구매하는 걸 낯설어해요.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잘 못 하시죠.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작품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라 구경하러 가는 곳이잖아요. 갤러리도 그런 공간인 줄 아시는 거죠."
- 그럼 어떤 분들이 주로 사나요?
"4년 동안 갤러리빈치에서 전시를 관람해 주신 분들께 초대장을 보내서 전시 작품을 보여 드리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 친분이 생긴 고객들께는 좋아하실만한 작품이 들어오면 따로 초대 하기도 합니다. 또한 작가의 컬렉터가 전시장을 방문해서 작품을 소장해주시기도 하고요."
중제
갤러리빈치는 신진아티스트에게 전시의 기회도 주고, 경력이 많지 않은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기획도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시를 하는 걸까?
- 최근에는 어떤 전시를 진행 중인가요?
"지금은 발달장애인들에게 위안이 되고 힐링을 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서 전시하고 있어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한동안 온라인 전시를 했고, 지금은 사전에 예약을 하고 오시면 갤러리빈치에서 오프라인으로 보실 수 있어요. 주로 청년작가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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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시와 행사를 열고 있는데요.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나요?
"페미니즘 관련 전시가 기억나요. 페미니즘은 이슈화되고 있는 주제지만 다루기 어렵잖아요.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주제라도 그걸 전시로 보여주면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잘 와닿는 것 같아요.
그때 세부 주제가 '왜 모르는 척 하면 착한 건가요?'였어요. 예를 들어 여자들이 콘돔 쓰는 걸 모르면 착하다고 하고, 다 알면 되바라졌다고 안 좋게 보잖아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왜 모르는 걸 착한 거라고 교육받았나 싶었던 거죠. 아무리 연설을 잘해도 어떤 주제는 반감을 살 수도 있는데, 그런 주제를 전시로 풀어서 보여주니 좋았어요. 이게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었어요."
- 청년들이 하는 전시다 보니 그 세대의 관심사를 담기도 할 것 같아요.
"네. 한 번은 '공존'을 주제로 여러 작가들이 모여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를 했어요. 누군가는 반려동물과의 공존을 다루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지구와의 공존에 대해 작업을 하기도 했죠.
한 분이 자연과의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멋진 겨울 풍경이 그려진 그림을 훼손시키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너무 멋진 그림을 망치니까 다들 퍼포먼스를 보며 탄식했거든요. 우리가 멋진 예술 작품을 뭉개는 걸 보면 안타까워하지만, 실은 우리가 그 자연을 일상적으로 망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행위였죠. 아무리 입으로 떠들어도 와닿지 않다가 그런 퍼포먼스로 보여주면 마음에 와닿는 거죠."
- 코로나 시대에 맞춰 온라인으로도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로 운영하나요?
"저희가 오프라인 전시를 할 때마다 유튜브를 통해서 온라인 전시도 병행하고 있어요. 온라인 판매도 하고 있고요."
- 온라인으로 작품을 판매하다 보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작품을 눈으로 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텍스처나 색감을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예술 작품은 전자제품처럼 사양이 나와 있는 게 아니니까요. 비교해서 가장 싼 걸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할 수 있는 선에서 대책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편안한 갤러리 만들고 싶어요"
젊은 관장이 운영하는 갤러리답게 '갤러리빈치'는 시대에 맞춰 온라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갤러리의 콘셉트와 기획, 프로그램에 젊은 감각이 묻어났다. 그는 어쩌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갤러리의 관장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궁금해졌다.
- 굉장히 젊은 나이에 갤러리 관장이 됐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미술관 가는 걸 좋아했지만 학부 전공은 미술과는 상관이 없었어요. 졸업 후에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가들과 협업할 수 있는 문화예술복합공간이 있었으면 했죠. 목적 의식 없이 노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며 노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관심있는 작가들을 알리고 그들의 작품을 살 만한 사람과 연결해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게 갤러리더라고요."
- 예술하는 청년들과 협동조합도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아트혜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있어요. 저희까지 포함해서 개인사업자를 가진 다섯 명의 예술팀들이 모여 하나의 큰 협동조합을 만든 거죠. 저희처럼 갤러리 사업을 하는 분도 있지만 공연이나 미디어, 테크 관련된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다양한 분야와 연결될 수 있어서 좋습니다."
- 협동조합의 목적은 뭔가요?
"개인으로 있으면 활동 기회도 적고 수익률도 나지 않아요. 함께 하면 더 단단해지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큰 사업도 많아져요. 규모가 큰 아트 프로젝트를 지원해볼 수도 있고요."
예술에 대한 문턱은 점점 낮아지고, 예술가와 일반인 사이에 그어져 있던 분명한 선이 흐릿해진다. 갤러리빈치가 그런 흐름에 한몫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앞으로 갤러리빈치는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지 궁금했다.
- 앞으로 갤러리빈치의 운영 계획이 궁금해요.
"저는 더 편안한 갤러리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작품이 많이 팔리고 유명한 갤러리가 되는 것도 좋겠지만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갤러리가 되지 않는 게 먼저입니다. 와서 쭈뼛거리고 빨리 나가야 할 것 같고 내가 잘못 왔나 싶은 갤러리가 되고 싶지 않아요. 편한 곳, 전시가 바뀔 때마다 오고 싶은 곳,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곳. 그런 갤러리가 되면 좋겠어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티켓을 끊고 들어가 관람하는 게 익숙한 일반인들은 갤러리에 선뜻 들어가지 못한다. 왠지 관람료를 내야만 할 것 같고, 누군가 너는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눈치를 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갤러리는 산책하다 들리는 일반인을 환영한다. 갤러리빈치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방배동에 가게 된다면 갤러리빈치를 한 번쯤 들리길 추천한다. 갤러리빈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