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기자말] |
"죄송합니다. 저희도 독감 백신이 확보가 안됩니다."
매일 독감 백신 취급 제약사 직원에게 독촉전화를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오늘도 독감 백신을 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전국 병의원에서 독감 백신 품귀현상이 심각합니다. 지난 9월 중순까지 병의원에서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었던 독감 백신은 10월 들어서 구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최근에는 20km나 떨어진 지역에서 수소문 끝에 가족들을 대동하고 제가 운영하는 의원으로 독감 백신 접종을 위해 방문한 가족도 있었습니다. 독감 백신이 남아 있는 병의원들에 대한 정보가 돌면 며칠 사이에 백신이 품절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제가 있는 지역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독감 백신 품귀현상이 심각합니다. 상온 독감 백신 사태 이후 무료독감 예방접종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유료접종을 하겠다는 희망자들도 증가했습니다. 병의원에서는 무료 접종 대상자들에게는 가급적 무료 독감 예방접종을 받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일부 희망자의 경우 안전성을 이유로 끝까지 유료 접종을 원합니다.
지난 14일 질병관리청(이하 질병청)이 발표한 '2020-2021절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현황'에 따르면 국가예방접종(NIP) 대상군 중 유료 백신을 접종한 인원은 총 24만9114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18세 이하의 유료 접종 인원은 총 24만8329명이었습니다. 나머지 인원은 임신부 815명으로, 어르신 대상군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품귀현상
만 12세 이하 어린이용 독감 백신(이하 어린이용 독감 백신)은 병원에서 먼저 구매하여 접종하고, 이후 정부가 비용을 지급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병의원에서 구매한 백신의 상당수가 소진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만 12세 이하 어린이의 경우 백신을 접종하고 싶어도 접종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입니다.
최근 질병청은 만 13세에서 18세 청소년용으로 공급한 무료 독감 백신 중 최대 15% 이내를 어린이용 독감 백신으로 전환하기로 발표했습니다. 약 35만 명분 정도를 어린이용 독감 백신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청소년용 독감 백신을 보유한 병의원들이 15% 내에서 전용 가능한 물량 비율을 결정하기 때문에 어린이용 독감 백신으로 전용하는 백신 총량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량 부족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입니다. 청소년용 독감 백신과 어르신 독감 백신의 경우 정부에서 현물로 의료기관에 공급하고 있고, 목적에 맞게 접종해야 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예측이 가능합니다. 이와 달리 만 12살 이하 어린이용 독감 백신은 의료기관이 유통업체로부터 자체 구매한 뒤 정부가 가격을 보상해주는 방식입니다.
어린이용 독감 백신과 일반 성인용 유료 백신은 동일한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용 독감 백신의 경우 자체 구매한 백신을 사용한 후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청소년용 독감 백신이나 어르신 독감 백신과는 달리 어린이용 독감 백신으로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올해와 같이 일반 성인들이 유료 접종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어린이용 백신으로 사용할 물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용 독감 백신은 유료로 구매한 후 정부로부터 1회 접종당 일정 금액 백신비를 보전 받습니다. 그러나 유료 독감의 경우 병의원이 설정한 가격을 환자에게 직접 수령합니다. 병의원에서는 올해와 같이 유료 독감 접종 수요가 많을 경우 유료로 구매한 독감 백신을 무료 독감 백신으로 전용하려는 동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린이용 독감 백신 공급도 어르신 독감 백신처럼 현물 공급 등의 전환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만 12살 이하 1회 접종 대상 어린이는 총 478만 명 정도인데, 18일 0시 기준 318만 명(66.5%)이 접종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예년 접종률이 80%를 상회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직 80만 명분 이상의 독감 백신 물량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독감 예방접종을 하려는 가수요가 몰려 더 많은 물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용 독감 백신이 있는 병의원을 찾아다니는 부모님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혼란 불가피
질병청은 만 70세 이상 어르신은 19일부터, 만 62~69세는 26일부터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다고 지난 16일 발표했습니다. 연령별 접종일을 구분한 것은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시행 초기 접종 쏠림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질병청은 예년과 달리 올해부터는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해 독감 국가예방접종시 예진의사 1인당 1일 접종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선착순 예방 접종에 따른 '줄서기'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접종 인원이 제한되다 보니 오전 시간에 몰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오전 중에 하루 접종 분량이 모두 소진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19일부터 시작된 어르신 무료 독감 예방접종이 시작되면서 심화되고 있습니다. 100명분 예방접종이 끝난 이후 접종이 중단되자 늦게 방문한 어르신들이 의료기관에 항의하는 등 현장에서 혼란이 있었습니다. 질병청의 취지는 코로나19로 인해 접종인원이 특정일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마스크 대란 때와 같이 많은 인원이 좁은 장소에 줄을 서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과제
질병청은 지난 16일 접종 대상자에게 건강상태가 좋을 때에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좋으며, 혼잡을 피하고 장시간 기다리지 않도록 시행 초기 며칠은 가급적 피하고 사전 예약을 통해 방문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확보된 독감 백신은 2900만 명분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5178만 명(2019 인구주택총조사) 중 약 2278만 명은 독감 백신을 접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는 독감백신 물량의 부족을 예상해 일시에 많은 접종자가 몰리면서 건강상태가 나쁜 경우에도 접종하고자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감기에 걸렸음에도 감기약을 처방받고 독감 예방접종을 해달라는 경우도 있어 질병청의 권고사항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부족한 독감 백신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접종받게 하는 것도 정부의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전문가들은 고위험군 무료 접종 대상자들에겐 가급적 접종을 권장하고, 유료 접종자 중에서도 코로나19 치명률이 높아지는 55세 이상 연령층에 우선 접종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또한 집단생활을 하는 유소년층과 청소년층의 접종률을 최대한 높이고, 단체생활을 하는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우선 접종할 수 있도록 해야 한정된 백신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