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소득불평등과 부의 쏠림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지금, 11월 9일을 경제민주화의 날로 선포하고 관련 정책을 적극 도입하자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중소상공인,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차례로 싣습니다. [편집자말] |
지난 2015년 제일모직보다 3배쯤 큰 회사인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분의 1의 가치로 합병되는데도, 단 한 명의 이사도 합병비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한국의 대표 대기업들의 이사회 지배구조가 얼마나 불투명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전략에 따라, 미래전략실의 일사불란한 지시에 의하여, 삼성물산 이사회에서 불과 2~3시간 만에 합병이 결의됐다. 주주들은 주당 1만~2만 원의 큰 피해를 입게되는데, 주주나 회사에 충실한 이사들은 한 명도 없고 대주주 총수에 충성하는 이사들로만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2018년 총수일가의 땅콩회항, 물컵갑질, 회사조직을 이용할 밀수, 횡령 등으로 회사가치는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이를 조사하거나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이사회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대한항공 이사회는 대주주 경영진에 충성하는 거수기(Rubber Stamp)에 불과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피해자는 온 국민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시장에서 저평가 받는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discount)'라고 한다. 이러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기업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를 들고 있다.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OECD 평균과 비교하여 70% 이상 떨어져 있는 한국기업의 주식가치로 인해, 619만 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들은 많은 손실을 보고 있다.
주가가 기업의 가치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지표로는 주식가격을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인 주가순이익비율(PER, Price Earing Ratio)이 사용되는데, 한국의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대기업 종목으로 구성된 코스피200의 PER은 2019년 기준으로 10.0으로, 미국 20.2, 선진국 평균 17.8은 물론이고 중국 13.7, 인도 23.9 보다 낮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재팬 디스카운트'의 오명을 받고 있는 일본의 12.8보다도 낮은 수치다.
직장생활을 하는 국민들 또한 노후자금을 국민연금에 맡기고 있는데, 국민연금은 2020년 8월 말 기준으로 전체자산 788.9조 원 중 한국기업의 주식에 144.1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도 이러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투자수익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기에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으로 주당 1만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만 해도, 국민연금은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것이 된다. 단지 관념적인 상처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재산적 손실도 보고 있는 것이다.
재계의 궁색한 변명
적어도 2000년대 이후의 기업 지배구조는 회계부정 등 불법, 부당경영에 대한 내부 통제, 즉 이사회의 견제와 감시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이 될 이사의 분리선출, 노동이사제 등은 모두 대주주나 경영진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를 이사회에 참여시켜, 이사회의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분리선출 하도록 하고, 감사 및 감사위원에 대한 대주주 등의 의결권 3% 제한 룰을 적용해 대주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이사가 선출되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한 지배구조 개선 방향에 부합하는 것이다.
재계는 그동안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하게되면 투기자본이나 반대주주 측이 경영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경영권 상실론'을 반대논거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이 될 이사의 분리선출로 기껏해야 한두 명의 독립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정도로 경영권 장악은 불가능하고, 독립이사들이 대주주나 경영임원의 불법이나 위법행위를 감시·견제하는 것이 주된 기능일 것이라는 반론에 막혔다. 그러나 최근에는 투기자본의 스파이가 이사회에 참여하게 된다는 '스파이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사회에 참여한 이사가 회사나 총체적 주주의 이익에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고, 기업정보를 빼내 투기자본에 전달한다는 것은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산업기술보호법, 영업비밀 보호법 등 지적재산권 법률의 형사처벌(해외는 7년 이상 중형에 처함)을 감수해야 하는데, 발생하기 어려운 매우 예외적인 사안이 마치 일상화 될 것처럼 주장하며 개혁입법을 반대하는 것은 궁색한 논거에 불과하다.
기업을 상장하겠다는 것은 이사회에 경영진의 의사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이사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공정경제 3법은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기업의 치를 높이고 기업을 살려 그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꼭 필요한 경제개혁의 입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재계는 공정경제 3법은 기업경영에 부담을 주는 '반기업 3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정경제 3법은 기업경영규제법이 아니라 '재벌총수 전횡 규제법'이다. 이사회가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회사 자금은 총수의 사익을 위해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정경제 3법은 총수 등 특정인의 사익편취를 막고, 금융소비자들의 돈이나 공익활동에 써야할 돈을 자신의 지배력 확장에 사용하는 것을 방지해 기업을 성장·발전시키는 법이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이 공정경제 3법의 추진을 추진하면서 소비자, 노동자, 주주, 중소기업 등 다른 경제주체의 요구에는 귀기울이지 않고 재계 달래기에만 매달리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여당의 공정경제 3법 추진 과정도 헌법 제119조 제2항의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라는 경제의 실천원리를 잘 구현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변호사이자 참여연대 정책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