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인 골동품상에 의해 반출되었고 조선총독부에 압수되었다가 경복궁 복원 정비 때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던 통일신라시대 석탑이 77년만에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찾았다.
한국 근현대사와 영욕을 함께한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국보 제105호)이 그 주인공이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이 이 석탑의 이전․복원을 완료하고, 그동안의 경과와 복원 전시를 전후하여 이뤄진 종합적인 연구 결과를 담은 <국보 제105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보고서를 낸 것이다.
보고서는 문헌자료,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사진, 3차원(3D) 스캔 이미지, 정밀 실측 도면 등 범학리 석탑 관련 자료를 집대성하였다.
절터와 석탑이 있던 곳은 둔철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617번지로 추정된다.
박물관은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15세기 후반까지 기록에 보이다가 이후 폐사지가 되었으며, 범학리 석탑도 이곳에 허물어져 있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거나 제 자리(고향)를 떠나게 되었는데, 범학리 석탑도 그 같은 운명이 되었던 것이다.
이 석탑은 1941년 1월 일본인 골동품상 오쿠 지스케(奧治助)에 의해 대구로 반출되어 제면공장 구내 빈터에 보관되어 있다가, 조선총독부에 압수되어 이듬해 서울로 옮겨졌다.
광복 후에도 수난은 이어졌다. 1946년 미군 공병대의 도움으로 경복궁 안에 세워진 범학리 석탑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서 살아남았으나, 1994년 경복궁 복원정비 사업이 추진되면서 다시 해체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었다.
박물관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새 청사를 마련하여 이전한 뒤에도 복원이 지연되자 다수의 문화재 전문가들이 경남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국보 석조문화재를 볼 수 없게 된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다"고 했다.
진주박물관은 범학리 석탑의 진주 이관을 요청하였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을 결정하였으며, 2017년 2월 고향인 경남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 석탑은 2018년 11월 27일 국립진주박물관 오른쪽 야외전시장에 복원 전시되었다.
이 석탑은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갖춘 통일신라 9세기 석탑으로만 알려져 왔는데, 박물관의 연구에서 다양한 사실들이 확인되었다.
박물관은 "범학리 석탑은 9세기 말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특히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과는 규모와 구조도 유사하여 주목된다"고 했다.
또 이 석탑은 경남 지역 석탑 중 유일하게 부조상(浮彫像)을 갖춘 석탑으로, 상층기단과 1층 탑신 각 면에 부조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물관은 "석탑의 부조상은 9세기 후반 합천, 순천, 구례 등 인근 지역 석탑, 석조불상의 대좌, 승탑(僧塔) 등의 부조상과 도상적인 공통성을 보여 9세기 후반 경에 조성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있다. 석탑의 암질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였는데, 분석 결과 섬장암(閃長巖)으로 밝혀진 것이다. 섬장암은 국내에 지질 분포가 적어 석탑 부재로서의 사용은 희귀하다.
박물관은 "범학리 일대 지질과 산지 조사에서 섬장암이 넓게 분포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석탑 부재와의 동질성 분석에서도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며 "하층기단 결실부의 복원에도 동일 산지의 섬장암을 사용하였다"고 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복원 재료를 원 석탑 부재와 동일한 산지의 돌로 복원한 사례는 국내에서 극히 드문 경우로 석탑은 77년 만에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찾아 의미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