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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7일 캠프보산 월드 푸드 스트리트 군인 몇이 거리를 구경한다.
▲ 10월27일 캠프보산 월드 푸드 스트리트 군인 몇이 거리를 구경한다.
ⓒ 김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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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오후 6시, 경기도 동두천 보산역 1번 출구로부터 백여 미터. '365일 차 없는 거리' 위 간판에 하나둘 불이 켜진다. 오후 11시까지 열리는 '캠프보산 월드 푸드 스트리트' 소속 푸드 하우스들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페루 등 각국 음식이 모였다.  

'YAMMA'(얌마)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시선을 끄는 미얀마 식당은 '난지또'와 '샨누들'을 판다. 난지또의 '난지'는 두꺼운 면, '또'는 비빔을 뜻하는 데 미얀마식 비빔국수다. 샨누들은 소수민족 '샨' 스타일 국수다. 주인은 이 거리의 유일한 이십대 이한희(27)씨. 경기 북부 변두리 마을 보산동에서 홀로 미얀마 음식을 전파한다.  

미얀마 문화를 향한 환희씨의 열정은 각별하다. 그는 재작년 YMCA 대학봉사단 활동으로 미얀마의 수도 양곤을 방문했다. 현지인들과 함께 봉사하는 동안 자연스레 현지 요리에 매료되었다. 독특하면서 친숙한 '통할 맛'이었다.

"딱 필이 꽂혔어요."

사이사이 휴식 시간을 쪼개 요리를 익히고, 한국에 돌아와 우리 입맛에 맞춰 개량했다.

"셀 수 없이 고쳤습니다. 샨누들 특유의 느끼함을 한국인 입맛에 맞도록 조정해야 했어요. 재료 수급에도 문제가 있었죠. 몇몇 포인트만 남기고 재해석했습니다. 면도 현지의 두꺼운 쌀국수 면 대신 식감이 익숙한 우동면을 써요."

그러다 동두천 시청에서 내놓은 '월드 푸드 스트리트' 사업자 공고를 보고 미얀마 음식을 파는 간이매장 '얌마'를 열게 됐다. 얌마는 미얀마를 빨리 발음할 때 소리를 재치있게 표현한 것으로 봉사활동 당시 팀명이었다.

"원래 푸드트럭에 관심이 많았어요. 미얀마 요리에 애정을 품고 천천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주제가 '월드 푸드'라 딱 맞는 기회였죠."

9개월 간 100만 원이라는 저렴한 자릿세와 가게 인테리어 및 기초 설비 지원. 동두천시가 파격적인 조건을 내놓았지만 모든 일일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코로나19가 복병이었다. 개장은 두 번이 지연됐고 그사이 함께 준비하던 18개 매장 중 6곳이 개장을 포기했다. 추가로 사업자를 모집해 간신히 열다섯 곳을 채웠다. 운영도 쉽지 않았다. 이날 환희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 이한희씨가 샨누들을 조리하고 있다.
 사장 이한희씨가 샨누들을 조리하고 있다.
ⓒ 김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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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에 제일 어려운 점은? 
"유동인구가 너무 적어요. 많은 사람이 미얀마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거의 원가로 가격을 책정했는데 사람이 아예 다니질 않아요. 도전하는 의미로 하고 있지만, 인건비라도 건지고 싶습니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데,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벌고 싶어요."  

동두천은 인구 10만 명이 되지 않는다. 보산동 인구는 3000명 남짓. 보산동 면적 3분의 2밖에 안 되는 여의도 인구수는 3만4000명을 웃돈다. 미군기지가 떠난 거리의 경제를 되살리고 외국문화에 이질감이 적은 지역적 특색을 살리고자, 시가 나서 이 사람 없는 곳에 월드 푸드 스트리트를 조성했다.

동두천을 누빌 수 있는 푸드 트럭이 아니라 붙박이 푸드 하우스 형태로 거리를 구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태원 같은 관광명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첫날, 개장식 행사 때 사람이 제일 많았고 장마가 시작되자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날이 좀 맑아지나 했더니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에, 지금은 추워진 날씨 탓에 사람이 없어요. 아쉽습니다."

시는 핼러윈 행사를 계획했으나, 매주 열던 버스킹 공연마저 중지해야 했다. 인터뷰를 하는 1시간여, 거리를 찾은 이는 여성 둘과 근처 펍에 술 마시러 온 남자 서넛뿐이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마련한 공동테이블 구역은 썰렁했다. 한희씨는 애초에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마트에서 야채·과일을 팔아요.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끝나자마자 달려와서 재료를 준비하고 밤 11시까지 장사를 합니다. 하루 열일곱 시간쯤 되네요. 생활은 해야죠. 푸드하우스 운영만으로는 생활비를 벌 수 없습니다. 솔직히 지치고 아픈 적도 있어요. 아직 죽겠다고 나자빠질 정도는 아닙니다. 하고 싶던 일이고 재미도 있어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

조명 아래, 그가 불을 켜고 소스를 끓인다.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이국적인 냄새가 피어오르고 친숙한 콩가루와 치즈가 솔솔 뿌려진다.

"내년에도 할 겁니다. 공부해서 맛도 끌어올리고 메뉴도 다양하게 선보여서 손님을 늘릴 거예요."   
 
 얌마 푸드하우스 매장 모습. 난지또/ 레몬을 짜 넣으면 감칠맛이 배가된다(위 음식 사진). 샨누들과 파라타. 토마토소스와 치즈 사이 카레향이 살짝 난다. 한희씨는 파라타를 샨누들 소스에 찍어먹으라 귀띔했다(아래 음식 사진. 이 사진은 기자가 직접 찍었다).
 얌마 푸드하우스 매장 모습. 난지또/ 레몬을 짜 넣으면 감칠맛이 배가된다(위 음식 사진). 샨누들과 파라타. 토마토소스와 치즈 사이 카레향이 살짝 난다. 한희씨는 파라타를 샨누들 소스에 찍어먹으라 귀띔했다(아래 음식 사진. 이 사진은 기자가 직접 찍었다).
ⓒ dytod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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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 있는 메뉴는?
"난지또. 샨누들이 대표 메뉴지만 맛 표현이 여전히 어려워 공부 중입니다. 난지또가 맛이 더 완성됐어요."

- 꿈이 있다면?
"당장은 최대한 많은 분께 미얀마 요리를 알리는 게 목표예요. 미래에는 큰 레스토랑을 열어 더 다양한 미얀마 요리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미래를 그리는 한 평 남짓한 식당에 스투키 화분이 하나 있다. "친구들이 주고 갔어요." 친구 셋 가운데 먼저 성공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끌어주기로 했다며 웃는 한희씨의 표정에 유쾌함이 넘친다.

보산동 푸드 스트리트에는 '얌마' 외에 열네 개의 식당이 함께 꿈을 키우고 있다. 지자체도 현장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 중이다. 취재 직후 동두천시는 버스킹 공연을 다시 열며, 동절기를 맞아 푸드 스트리트의 개장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고 공동테이블존에 바람막이 시설을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 푸드 스트리트는 올해 11월 30일까지 운영되며, 금·토요일에는 버스킹 공연이 열립니다.
- 12월 15일, https://blog.naver.com/gomyr2020 에도 게제됩니다.


#동두천#얌마#월드푸드스트리트#미얀마#푸드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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