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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집 밖으로 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단풍 명소를 열심히 찾고 적당한 곳이 나오면 바로 출발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내 것으로 잡으려는 중년 부부의 노력이다. 

하루 코스로 제법 먼 거리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내장산도 새벽에 출발해서 다녀왔고 대둔산 역시 하루 코스로 다녀오며 세 시간의 산행도 했다. 오늘 하루의 의미를 담기 위해 생애 마지막 가을을 보내는 것처럼 맹렬하게 단풍을 찾는다. 

가는 곳마다 단풍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사진으로 담으면 가장 예쁜 풍경을 담기 때문에 굳이 그곳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거기가 거기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 보는 풍경은 차이가 있었다. 갈 때마다 단풍잎들이 가지에 붙은 채로 조금씩 더 말라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잎은 물들었으나 물기 빠진 마른 잎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양상이다. 단풍을 보며 우리는 무섭도록 정확한 계절과 단풍 변화의 단계를 온몸으로 느낀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 장순심
 
몇 곳을 다녀오고 난 후 새로이 찾은 곳이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이었다. 독립기념관은 올 봄에도 갔었지만 코로나로 문을 닫아 먼 발치에서 보았을 뿐이었다. 작년 광복절에 기념식이 열린 것을 방송으로 보았을 때에도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화면으로 보면서도 느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그 규모나 느낌이 더욱 엄청나게 다가왔다.

겨레의 집에서 한국인의 비상을 상징하는 조각과 독립운동가들의 서명이 담긴 대형 태극기, 무궁화의 삼각편대 같은 웅장한 전시물을 마주하는 순간 한순간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북관대첩비 임진왜란때 세워지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갔다가 2005년 반환, 2006년 원래의 장소인 함경북도에 복원된, 의병이 왜병을 격파했다는 승전비
북관대첩비임진왜란때 세워지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갔다가 2005년 반환, 2006년 원래의 장소인 함경북도에 복원된, 의병이 왜병을 격파했다는 승전비 ⓒ 장순심

제1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북관대첩비에 눈이 갔다. 임진왜란에서 의병을 이끌고 왜병을 격파한 정문부 선생이 세운 승전비라고 적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비석이 뽑혀 일본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1978년에 최서면 선생이 조소앙 선생이 쓴 글을 읽고 야스쿠니 신사에 있던 비석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알려지며 정부와 민간단체들의 노력으로 2005년 반환 받게 된 것이라고 했다.

실제 비석은 2006년 본래의 자리인 함경북도 김책시에 복원되었고, 원래의 비석을 그대로 복원하여 2006년 독립기념관에 세웠다고 한다. 비석의 사연을 읽으니 지금까지 많은 전시관을 둘러봤다고 자부하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땅에, 독립기념관에 놓고 볼 수 있다는 사실에도 가슴이 뭉클했다. 늦더라도 우리의 역사를 차근차근 바로세우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기념관은 사실상 처음이니 전체적으로 다 둘러보자고 생각했다. 관람할 수 있는 전시실이 6곳. MR독립영상관까지 봐야 할 곳이 많았지만, 제1전시실로 들어서면서부터 화살표의 안내를 따라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면 수월하게 6전시실까지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1전시실은 우리나라의 시작,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유물, 유적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관 내의 광개토대왕릉비의 크기에 먼저 놀랐고 엄청난 크기의 비석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곳을 재현해 놓은 곳에도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자격루와 천상열차분야지도, 거북선의 모형은 전시장을 꽉 채웠고 공연히 마음도 뿌듯해졌다.

전시관에서 크기에 놀랐던 광개토대왕릉비는 독립기념관 겨레의 큰마당에도 모사 비석으로 세워져 있었다. 중국 지린성의 광개토대왕비와 같은 석질, 같은 형태의 글씨로 제작되었다는, 동양에서 가장 크고 높은 비석의 위용에 과거 고구려의 기상이 느껴질 정도였다. 
 
광개토대왕릉비 전시실 내의 실제 크기의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비전시실 내의 실제 크기의 광개토대왕릉비 ⓒ 장순심
 
2전시실의 겨레의 시련, 겨레의 함성, 평화누리, 나라되찾기, 6전시실의 새나라세우기까지 역사적 시련과 고통, 벗어나는 과정, 국민들의 구국의 노력을 차근차근 보는 동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패망과 제국 열강들의 침략, 일제의 식민 지배와 벗어나려는 항일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에서 해방까지 촘촘한 설명들은 한국사를 다시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지역의 전시실을 가도 우리 역사의 한 꼭지 정도는 볼 수 있을 법한 익숙한 전시였지만 이곳만의 디테일과 스케일이 있었다.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조악한 전시가 아닌 체계적으로 자료가 망라된 것 같았고, 전시 내용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뛰어난 전시 시설도 돋보였다. 단지 몇 번의 해외여행 경험이지만, 어느 나라의 박물관에 견주어 보더라도 역사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태극기 겨레의 집에 걸려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서명한 태극기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태극기겨레의 집에 걸려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서명한 태극기 ⓒ 장순심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또 우리 국민이라면 독립기념관 전시실은 꼭 가볼 것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마침 초등학생 여러 그룹이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 모습도 흐뭇하게 바라 보았다.

본래 목적이었던 단풍나무숲길보다 우리는 전시실을 둘러보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다. 2시간 이상의 관람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 전시내용이었고 이번처럼 진지하게 몰입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이런 좋은 시설의 수준 높은 전시를 관람하는 데 주차료만 내면 다른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도 엄청난 문화적 혜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 단풍나무숲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단풍나무숲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 장순심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 장순심
 
전시실을 나와 드디어 단풍나무숲길로 향했다. 독립기념관을 둘러싸고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단풍나무숲길을 걸으려면 한 시간 이상은 충분히 걸릴 것 같았다. 총 3km 정도의 노랗고 빨간 단풍나무가 둘러싼 길을 천천히 걷고 나면 지는 가을의 여운을 충분히 오래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풍객들을 위한 단풍나무숲길 인증샷 이벤트도 진행되고 있었다. 전시실에서 느낀 묵직한 울림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벤트까지, 멀리 온 보람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고향인 충청도에 가면 늘 담뿍장(청국장)을 찾는다. 본래 청국장이 유명한 곳이어서인지, 독립기념관에서 벗어나니 음식점마다 청국장이 간판에 젹혀 있었다. 때늦은 점심으로 맛있게 먹고 올라왔다.

#독립기념관#단풍나무숲길#역사공부#청국장#훌륭한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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