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만 전전하다가 8월 중순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결혼 후 6년 동안 총 3번이나 전세로 이사만 다니다가, 빚을 잔뜩 끌어안고서야 겨우 내 집을 마련했네요. 따로 모임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집 장만한 걸 축하해주고 싶다고 해서, 이사한 후 한 달 안에 바로 집들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코로나19였습니다. 제가 사는 광주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거든요. 날짜를 잡으려 해도 계속해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집들이 일정을 정하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초청하기로 한 친구들 중 대다수가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어, 조금 더 민감하게 상황을 살펴봐야 했거든요.
부부동반으로 어른들은 물론 자녀들까지 합하면, 저희 집에 놀러 올 사람이 15명이나 되었습니다. 집은 좁은데 한 번에 저 많은 사람들을 들일 수 없어 1차는 집 근처 식당에서 먹고, 2차는 저희 집에서 함께 다과를 들기로 했습니다. 계획도 세우고 식당도 예약했는데, 결국 늘어나는 확진자 때문에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되자 식당 예약은 취소하게 됐네요. 결국 집들이도 한 달 후로 다시 연기하게 됐습니다.
취소, 취소, 취소... 좌절하던 와중에 떠오른 아이디어
문제는 또 코로나19 확진세가 가파르게 올라가자 그 뒤로도 한 차례 더 집들이를 연기해야 했다는 겁니다. 이번 집들이까지 연기하면 세 번째 연기라,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판단을 못 하겠더라구요. 전전긍긍하는 제게, 친구들이 먼저 집들이를 연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습니다.
집들이 날짜를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다고 말하는 중에,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유튜브로 비공개 방을 열어 랜선 집들이를 하자고요. 무엇보다 코로나19 때문에 계속 집들이를 연기하는 게 너무 싫어서, 이번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마음먹던 상황이었습니다.
친구들도 랜선 집들이를 하겠다고 하니, 다들 황당해 했습니다. 친구 몇몇은 고작 집안 곳곳을 사진 찍은 후 SNS에 올리는 식으로 때우려는 거냐고 묻기도 했고요. 사실 요새 10대 아이들 중 일부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줌', 구글이 개발한 'Meet' 등을 활용해서 온라인 생일파티를 열기도 하고, 대학생들 같은 경우 동아리 모임도 온라인에서 활발히 열고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며 유튜브 라이브로 집들이를 해보겠다고 했더니 다들 재미있겠다고 반기더라고요.
이후 집들이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제가 정한 집들이 시간 때 다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카카오톡 기프티콘으로 치킨과 와인을 일곱 명의 친구들에게 각각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죠. 집들이 하기로 한 시간에 미리 주문해서 식탁에 올려두라고요. 이후 친구네 부부들을 전부 카카오톡 단톡방에 초대한 후 랜선 집들이 계획을 공지했습니다. 아래는 제가 그때 공지한 내용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랜선 집들이인 만큼 나름 프로그램도 알차게 꾸며보았습니다. 거실, 안방, 딸 아이의 방, 옷방 등을 구경시켜주는 건 물론, 이사 오게 된 집의 장점과 단점, 이사를 오게 된 이유 같은 것도 상세히 설명해주기로 했습니다.
이외 포털 사이트의 거리뷰 서비스를 이용해 제가 사는 집의 외관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여주고, 이웃해서 살고 있는 친구의 집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집에 올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해서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스피커에서 재생할 신나는 음악들도 미리 준비해뒀고요. 제가 준비한 내용을 단톡방에 올려 알리자, 단톡방엔 금세 즐거운 분위기가 흘러넘쳤습니다.
행사 날, 집들이 시작 5분 전 저는 유튜브 라이브 방을 비공개로 만든 후 접속 링크를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하나둘, 친구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유튜브 라이브 방에 접속하기 시작했고, 전부 다 라이브에 참여한 걸 확인 후 저는 바로 집들이를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 있다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식으로 집들이를 시작했네요. 실제 초대받은 사람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저희 집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가상으로 나마 느껴보게끔 해주고 싶었거든요.
초청한 사람이 모두 친한 친구들인 만큼, 방송은 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각 방문에 드림캐처를 왜 달았는지도 이야기하고, 책장에 꽂힌 책들도 소개하고, 주말에 제가 직접 감 농장에서 딴 감들도 보여줬네요.
방송 중간중간 저 역시 식탁 위에 놓인 치킨을 뜯고 와인을 조금 마신 후,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왜 제가 이런 가구를 여기에 놨는지, 어떤 옷들을 어떻게 빼놓았는지, 오늘의 집들이를 위해 욕실을 청소하는라 얼마나 진땀을 빼야 했는지도 자세히 늘어놓았습니다.
집들이 행사엔 저만 주최 측으로 참여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섯 살 난 제 딸도 자기 방을 소개할 땐 직접 스마트폰 앞으로 뛰어들어 여기가 자기 방이라고, 자기 방이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이야기하며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집안에 대한 설명은 20분 정도 이어졌는데, 스마트폰에 대고 와인잔을 건배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게 됐네요. 행사가 끝난 후 그룹콜 기능을 활용하여, 다 함께 전화로 집들이 행사가 어땠는지 후기를 나눴습니다. 모두 처음 해보는 행사였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웃으면서 제게 랜선 집들이를 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친구들 각자에게 기프티콘으로 음식들을 미리 주문해서 보내주는 게 조금 번거로웠을 뿐, 일반적인 집들이 행사와는 달리 고생한 게 별로 없었습니다.
만나지 않고도 마음을 확인하는 방법
유튜브로 랜선 집들이를 하게 되다니, 정말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 할 계획이 아니었나 싶네요. 처음 랜선 집들이 소식을 알렸을 때 친구 한 명은 직접 들고 오기 힘들게 됐다며 주문한 화분을 저희 집으로 보내주기도 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집들이 준비하는 데 쓰라며 제게 선물을 사주는 대신 적지 않은 돈을 모아주기도 했습니다. 랜선 집들이에 참여해, 함께 즐거운 행사를 만들어준 제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생활 양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단체로 모이는 회식은 가급적 피하게 됐고, 친구들을 만나도 카페에서 음료는 테이크아웃 하고 거리두기를 하며 산책을 하기도 했네요. 수영 강습을 받고 있었는데, 거리두기 강화에 따라 한동안 좋아하는 수영을 못하게 되기도 했고요.
코로나19로 달라진 생활 양식들이 뉴노멀로 정착되면서, 랜선 집들이 또한 일상화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랜선 집들이를 하면서 느낀 게 많네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도, 직접 만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방법을 확인한 집들이였다고나 할까요?
제가 친구들과 함께 만든 랜선 집들이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도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슬기로운 시도들이 더욱 다양해졌으면 하네요. 많이 힘든 시기이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그 날까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더욱 많이 생기길 바라며 글을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다 같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