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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편집자말]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된 24일 점심시간에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배달직원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된 24일 점심시간에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배달직원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상석이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을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마흔 중반이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에서 실패했고, 취업은 요원했다. 문턱이 낮은 일을 찾아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 음식점의 문을 두드렸다. 주르륵 놓인 여러 대의 전화기 수만큼 다양한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울리는 전화기에 따라 오븐에서 피자가 구워지고, 기름 속에서 치킨이 튀겨지다가, 가마솥에서 삼계탕이 끓여졌다.

가게 주인은 처음에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대했다. 그때는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아직 플랫폼을 통한 음식 주문과 배달이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배달 라이더는 대체로 한 음식점에 소속되어 일했고, 청년들이 주로 맡았다.

"지금은 휴대폰 앱으로 배달할 곳을 찾아가지만, 그때는 다 음식점마다 지도가 크게 걸려 있었어요. 그걸 보고 찾아가는 거예요. 젊은 친구들은 지도만 보면 어딘지 딱 알고 가요. 교통신호도 잘 재껴. 나이 든 사람들은 지도 보는 데만 5분, 찾아가는 데도 한참이잖아요. (웃음) '아, 이 사람 가면 왜 안 와?' 이 소리 듣는 거지."

저녁 5시부터 새벽 2시, 주문이 몰리는 시간에만 일당제로 시급 7200원을 받기로 했다. 젊은 라이더보다 300원이 적었다. 배달업의 상징과도 같은 오토바이 '씨티 100'이 그의 발이 되었다. 한 달쯤 지나니 배달지를 못 찾아 헤매는 일은 사라졌다. 꾸준히 일하는 모습에 가게 주인의 눈빛도 달라졌다. 낮에도 그에게 일을 맡겼다.

유상석은 교통신호를 잘 지켰다. 과속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지만, 사고를 피해가진 못했다. 일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첫 사고가 났다. 겨울이라 노면이 얼어붙은 곳에서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았다. 뒷바퀴가 미끄러지면서 오토바이가 빙그르르 돌았다. 차가운 땅바닥이 쏜살같이 다가와 그를 때렸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혹시나 뒤따라오던 차량에 받혔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눈과 얼음이 덮인 도로에서는 바퀴가 넷 달린 자동차도 위태롭다. 두 바퀴로 가는 오토바이는 더욱 취약하다. 최대한 서행하거나 운행하지 않을 것이 권고된다. 급제동은 금물이다. 눈과 얼음이 아니더라도 추위는 노면과 타이어 온도를 떨어뜨려 접지력을 약하게 한다. 운전하기 훨씬 까다롭다. 그런데 춥고 눈이 많은 계절에 배달수요는 크게 늘어난다.

유상석은 오토바이라고는 그때까지 스쿠터를 잠깐 타본 게 전부였다. 배기량 125CC 이하의 오토바이는 자동차 운전면허(1종 또는 2종 보통)가 있으면 별도의 면허취득 없이 탈 수 있었다. 오토바이가 자동차나 자전거와 무엇이 같고 다른지, 주행 중에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은, 라이더 혼자 몸으로 깨우쳐야만 했다.

죽었어, 죽었어

몇 달 뒤 유상석이 일하던 지역에 본격적인 배달대행업체가 들어왔다. 배달대행업체는 시급 대신 배달 건당 돈을 주었다. 8년 동안 '장군콜'과 '부릉'이라는 두 업체를 거쳤다. 그사이 큰 사고를 두 번 더 겪었다. 두 번째 사고는 불법 유턴한 택시에 들이받혔다. 하늘로 붕 떴다가 바닥에 미동도 없이 누운 유상석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죽었어, 죽었어."

귓속으로 파고드는 말에 저항하듯 몸을 일으켰다. 음식 상태부터 살폈다. 사장에게 전화해 재조리를 주문했다. 전화를 받고 달려온 사장은 "괜찮냐"는 말만 건네고 카드단말기를 챙겨 휭하니 가버렸다. 배달 음식의 응급조치가 끝난 뒤에야 라이더의 응급조치가 시작되었다.

세 번째 사고는 비 오는 날이었다. 바로 옆 차선에서 달리던 다른 배달대행 라이더가 삼거리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부딪히겠다 싶어 브레이크 잡았고, 빗길이라 오토바이가 미끄러졌다.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 세 번의 사고 중 가장 큰 부상이었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무릎에 무언가 서걱이는 느낌이 남았다. 그 뒤로 비 오는 날이 두려워졌다.

수리비와 무릎 치료비를 제하고 합의금으로 백만 원을 받았다. 목돈이 들어온 듯했지만, 일 못 한 날을 따지면 손해였다. 일주일쯤 쉰 뒤, 채 아물지 않은 몸을 이끌고 다시 일터에 나섰다. 일하다 다쳤지만, 쉰다고 돈이 나올 곳이 없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고는 상대의 과실이 명백한 교통사고였다. 다행히 상대방이 모두 보험에 들어 있어서 치료비와 수리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혼자 미끄러져서 다쳤을 때는 하소연할 데조차 없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음식값도 배상해야 했다. 보통의 회사라면 다르다. 개인 용무를 본 게 아니라 일하다 다쳤다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구멍투성이 산재보험

우리 사회에는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계약된 사용자에게 종속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용역·도급·위탁 등의 계약 형태로 노무를 제공한다. (실제로는 계약서도 쓰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각종 권리와 지원에서 배제된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2008년 7월부터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4개 직종을 임의로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 배달대행 라이더는 2017년 3월에야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해졌다. (2020년 현재,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는 14개 직종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실제 사고가 났을 때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는 라이더의 숫자는 미미하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올해 서울, 광주, 대전 등 9개 지역 배달노동자 16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55.3%가 지난 1년간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했다. 매우 높은 수치다. 그런데 이 중 치료비를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는 겨우 2.6%에 그쳤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배달의민족과 같은 대형 플랫폼의 경우 산재보험 가입과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배달대행업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소 배달대행업체들의 사정은 딴판이다. 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않고 산재보험에도 가입시키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산재보험료의 절반을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 (보통은 사업주가 전액 부담한다.) 게다가 '산재적용제외신청제도'라는 걸 두었다. 노동자가 원하면 산재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당장 한두 푼이 아쉬운 라이더에게 배달대행업체를 운영하는 관리자는 '산재적용제외신청제도'라는 게 있다고 넌지시 찔러준다. 혹은 노골적으로 쓰지 말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 불법이다. 그러나 눈치를 봐야 하는 쪽에서 문제 삼기는 쉽지 않다.

배달대행 라이더의 산재 가입이 어려웠던 데에는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 바로 '전속성'이라는 기준이다. 지금의 노동법은 한 사업장(사업주)에만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가정해 만들어졌다. 산재보험법이 판단하는 전속성의 최소 기준에 부합하려면, 한 사업장에서 한 달에 118시간 이상 일하면서, 120만 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배달대행 라이더는 일감을 찾아 이 플랫폼과 저 플랫폼을 오가면서 일하기도 한다. 변화된 노동시장의 특성을 기존 노동법이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지난달 12일 '전속성 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가 양산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대지 않고서는 땜질식 처방이 될 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유상석씨 이야기 2편로 이어집니다) 
[다음 기사] 건당 배달료, 9년간 겨우 200원 올라... "이러니 빨리 달릴 수밖에" http://omn.kr/1qrsh​​​​​​​

#배달 #라이더 #라이더유니온#산재#안전배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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