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채식을 시작하게 됐어?"
자주 듣는 질문이다. 논비건(비채식주의자)에게 내가 채식을 하게 된 계기를 단순하면서 명쾌하게 설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채식 정당성을 논비건에게도 인정받으려는 과도한 욕심 탓일까.
나는 어느 날 홀연히 채식주의자가 된 게 아니다. 채식을 시작한 지 1년이 좀 넘었지만 이전에 채식에 대한 고민은 4년 정도 했다.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반려동물 때문이었다. 그 기간에도 고기를 맘껏 먹는 기간도 있었고 동물복지농장 고기를 먹는 나름의 과도기를 거치기도 했다.
반려동물과의 만남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 '똘이'는 젖을 막 떼자마자 우리 집에 와서 무럭무럭 자랐다. 당시 똘이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고' 나와 깊은 대화를 자주 나눴다. 서로가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똘이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만 특별한 동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강렬한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책을 구매했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읽는 내내 나는 괴로웠다. 내가 동물의 고통에 가담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고 동물권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개만 특별한 동물이라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차곡차곡 내 가슴에 수많은 동물의 희노애락과 죽음의 장면들이 함께 쌓여갔다.
동물의 기쁨과 행복을 보며 미소 짓기도 했지만 인간의 동물학대와 동물 착취로 인한 고통이 나를 압도했다. 그들의 삶은 가혹했고 참혹했다. 자주 눈물을 흘렸지만 돌아서면 또 고기를 먹었다. 나름 노력했다. 일말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동물복지농장 고기를 사 먹는 식이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채식을 결단하다
나는 의지박약한 인간이라 여러 핑계로 채식을 포기할 위기가 많았다. 그러나 두 가지 결정적인 사건을 겪으며 채식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는 똘이의 죽음이다. 우리 집 막내 똘이가 개장수에게 팔려 갔다. 참혹한 사건이 나의 채식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두 번째는 길고양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의식하지 않았었던 생명체의 생존과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 번의 이별과 한 번의 만남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내게 채식은 '애도'다
강아지와 고양이에게서 느꼈던 감정은 다른 동물에게로 확장되었다. 나는 분명히 다른 동물을 차별하고 있었다. 인간 역시 동물인데 단지 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되진 않는다. 어떤 동물은 인간과 가깝다는 이유로 죽음을 면하고 어떤 동물은 인간과 멀다는 이유로 고기가 된다.
수많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는 개를 보며 소와 돼지를 떠올리고 함께 사는 헬씨(고양이)를 보며 인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갖은 채소로 요리하면서 이별한 똘이를 애도하고 고통받고 도살되는 수많은 동물들을 애도한다. 채식은 내게 애도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계정 @rulerstic에 동일한 글을 발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