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코로나 확진 100만 명 넘어.. 세계 10번째
-2020.11.12. 동아일보
코로나 19 덮친 이탈리아... 국토 3분의 1이 '레드존'
-2020.11.14. 서울경제
이탈리아 11월에만 80만 명 신규확진
-2020.12.2. 연합뉴스
탄탄한 공공의료를 자랑하던 이탈리아가 코로나19로 무참히 무너지는 광경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의사들이 찾아와 NHS(국가의료제도)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사례로도 많이 언급되었지만, 지금은 '저렴한 공공의료의 민낯'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체면을 구긴 상태다 .
지역사회의료체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과 보건의료인들, 그리고 나 또한 이러한 상황이 매우 의아했지만, 코로나19가 우리나라도 정신없이 휩쓸었기에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 그 와중에 책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가 출간되었다.
왜 이 시점에서 방역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이탈리아의 의료를 참고해야 할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의 여파로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왔던 곳들의 실체를 알게 됐다.
그들의 실패가, 아직 우리의 실패가 되지 않았음에 안도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한때 정부와 의료계가 맞부딪히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의료 제도의 모순과 의사들의 현 주소를 목도할 수 있었던 전공의 파업이 대표적이다.
이해하기도 힘들고 답을 내기도 어려운 복잡한 상황들을 잠시 뒤로하고, 코로나 이후의 모습을 상상하기 위한 말랑말랑한 준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탈리아 동네의료 현장의 모습이 담긴 이 책을 들고 말이다.
이탈리아의 특별한 1차의료 제도
"첫째, 누구든 가정의를 선택해 일차의료를 무료로 이용한다. "
"둘째, 전문의 진료와 검사 등 다양한 외래진료와 가정간호를 동네에서 이용할 수 있다. "
"셋째, 입원 수술 분만 응급 등 병원의료를 가정의의 의뢰절차를 통해 무료로 이용한다."
"넷째, 의사가 처방한 필수 약품을 무료로 구매한다. "
이탈리아는 1차의료(의원급)의 탄탄한 역할과 체계적인 방문 진료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예산 또한 어마어마하다. 책에서 예시로 든 볼로냐 지역의 경우, 인구 87만 명에 대한 의료 예산이 약 2조 원에 이른다(우리나라는 5000만 명에 약 90조이다).
이탈리아 1차의료는 투자만큼 많은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당뇨병 환자의 입원률이 OECD 회원국 중에 가장 낮고, 만성 폐쇄성 폐질환 및 천식 환자의 입원율도 두 번째로 낮다. 그 결과, 가정의가 제공하는 일차의료의 수준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아왔다.
왕진 제도도 활발하다. 의사가 직접 가파른 알프스 산골을 오르내리며 왕진을 하고, 백신도 직접 들고 다니며 접종하기도 한다. 중증환자는 통합가정 돌봄을 받는데, 의사 등 7개 분야의 인력이 집으로 찾아온다. 자택에 노란색 통합활동기록부가 비치돼 있는데, 이를 통해 모든 인력들이 상황을 공유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방문 진료 시범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왕진 의료 서비스 등에 대한 시범 수가도 책정되고 있다. 치료뿐만 아니라 재활이나 복지, 요양, 영양 상담 등의 진행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는 제도다. 특히, 최근 코로나로 인해 의료기관 방문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라, 이런 방문 진료 서비스는 더 유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이탈리아 의료진들의 역할과 환경
나의 경우, 같은 의료진이라서 그런지 책에서 소개되는 이탈리아 의료진의 역할과 환경에 조금 더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가정의사는 의과대학 졸업 후 3년간 일차의료 수련 과정을 마쳐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의학과에 근무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보수의 경우 70%는 진료를 담당하는 환자 수에 따르고, 등록된 인원이 너무 많아질 경우 오히려 환자 수당 보수가 낮게 보정된다. 나머지는 행위별 보수(치료행위, 왕진, 예방접종 등)에 따라 지급된다. 환자가 너무 많아져 진료의 질이 낮아지지 않도록 하고, 적정한 보상 제도를 통해 의사들을 유인하려는 방안으로 보인다.
전문의들의 경우 환자의 수가 아니라 환자와 면담하는 시간에 따라 보수가 책정된다. 보수와 시간을 국가에서 조금 더 보장해주니 의사-환자의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가 조금 더 열려있는 편이다. 의료 정보의 경우, 국영의료체계 안에 있다면 의료기관 별로 기록이 모두 공유되기도 한다. 의료 정보도 공유되지 않고, 의원들과 병원 간 경쟁이 잦은 한국의 의료 환경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이탈리아 의사들은 이러한 네트워크 속에서 자신들의 장점을 발휘한다. 환자들의 관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내의 정착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이탈리아는 '민주적 정신의학'이라고 일컫는 정신 건강 서비스의 탈시설화로 정신질환자의 지역 내 정착을 돕는 문화가 마련돼 있다.
"무료라고 하니까 왠지 진료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병원시설도 훌륭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모유수유 전문가가 와서 수유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간호사들은 아기 목욕시키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해요 이정도면 월급의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낼 가치가 있지 않나요?"
이 책이 인용한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의 내용 중 일부가 꽤나 인상적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의료 보험금을 많이 내도 환자가 만족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또, 이러한 치료 외 서비스 뿐만 아니라 수술에 있어서도 고가의 수술 장비 및 소모품의 사용을 꺼리지 않는다고 한다.
진료 예약 및 수술 대기 시간도 주정부의 '쿠프 2000'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조정된다고 한다. 담당자의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모든 의료시설의 예약 및 대기 현황이 공유된다. 처음 예약 대기 시간이 4~6주이더라도 실제 2주 안에 바로 수술이나 진료를 보기도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한국 교민 H의 경우, 난소낭종을 수술하기 위해 처음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으나, 실제로는 2개월 후에 입원 및 수술이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이렇듯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대기 시간 상한제를 통해 적극적으로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처하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에 무너진 이유
하지만, 이처럼 책에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성과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치명적인 일이 벌어졌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제일 잘 사는 롬바르디아 주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한 것이다.
작가는 나름대로의 인적 경로를 그려 그 원인을 분석했다. 필자는 이탈리아 정부가 산업 위축을 우려한 나머지 초기 감염 전파 차단에 실패했고, 노인 환자를 요양원에 보내 대규모 확산을 자초했다고 분석한다.
의료 시스템에서는 의료의 민영화가 확산되면서 공공의료가 수축되기 시작했고, (사립병원 비중이 약 50%) 비용 절감을 위한 병상 감축 정책이 전 유럽 내로 확산되면서(인구 1000명당 병상수가 영국 2.5, 이탈리아 3.2개다. 10개가 훌쩍 넘는 우리나라의 1/4 수준이다) 호흡기 응급 환자를 받을 여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한국이 여태껏 버틸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마스크와 방역의 힘이 아닐까 싶다. 실제 우리나라의 병상은 대부분 사립의료기관의 병상이다. 게다가 인구 수에 비해 적은 편이다. 코로나19 입원 병상의 부족은,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 국가의 의료제도는 '환자에게 의사가 어떤 존재로 여겨지는 가'로 성취가 판가름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료제도의 변화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미묘하지만 큰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와 다른 국가 주변을 살펴보면, 의료가 사유화 될 경우에 의료는 단지 서비스업에 그치겠지만, 의료가 국유화 될 경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된다.
의료진이 의료 행위를 함으로써 거둘 수 있는 사회적 성취가 무엇인지 공동체가 논의할 수 있는 장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열어야 하지 않을까. 이탈리아는 기존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답습하기도 하고 고치기도 했다. '공든 탑이 무너지더라도 다시 쌓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숙제인 것인가'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