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사과를 못하면, (내가) 비상대책위원장직을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 사과에 나설 뜻을 굽히지 않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 비공개 시간에 위와 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김종인 위원장께서 (비공개) 회의 도중 대국민 사과에 대한 의지를 다시 밝혔다"라면서 "비대위원 중에는 시기상 이유로 우려를 표현 사람도 있고, 찬성한 사람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대국민 사과에 나서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다만, '형사 절차가 완료된 이후'라며 구체적 일정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지난 6일 청년국민의힘 창당 행사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국민의힘에 처음 올 때부터 예고했던 사항인데 그동안 여러가지를 참작하느라고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운을 띄웠다.
김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설 경우, 오는 9일에 행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박근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날이 12월 9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도가 잇따르자, 당내에서는 김종인 위원장을 향한 비판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러한 반대 여론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며 "내 판단대로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D-데이는 9일?... 커지는 반발 "민주당 2중대로 가는 굴종의 길"
김종인 위원장의 이런 방침에 반발하는 목소리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최근 들어 더 빈번해지고 있다.
무소속인 홍준표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당 2중대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추진하는) 이‧박 전 대통령 사과라고 보이는데, 그것을 강행하는 것은 5공 정권하에 민정당 2중대로 들어가자는 이민우 구상과 흡사해 보인다"라며 "이민우 구상으로 양김(김영삼‧김대중)이 반발하고 이민우 신민당 총재 체제는 무너지면서 야당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는 이‧박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공과를 안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며 "사과는 전 정권들을 모두 부정하고 일부 탄핵파들의 입장만 두둔하는 꼴이고, 민주당 2중대로 가는 굴종의 길일뿐이다. 옳은 길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김종인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방침을 비판해온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도, 사과 주체의 정통성도 확보하지 못한 명백한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국민의힘은 김 위원장의 사당이 아니다. 의원들과 당원들이 김 위원장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정통성 없는 임시 기구의 장이, 당의 역사까지 독단적으로 재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단 한 번의 의원총회도 거치지 않은 (대국민) 사과가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사과일 수는 없다"라며 "민주당의 폭주를 막는 데 당력을 집중시켜야 할 시기에, 비대위원장이 나서서 당의 분열만 조장하는 섣부른 사과 논란만 벌이고 있으니 참담한 심정으로 일주일을 시작한다"라고 날을 세웠다.
당 원내대변인을 맡은 배현진 의원 역시 지난 6일 늦은 시각, 페이스북에 "잠시 인지부조화… 아찔하다"라며 "이미 옥에 갇혀 죽을 때까지 나올까 말까 한 기억 가물가물한 두 전직 대통령보다 문 정권 탄생을, 그 자체부터 사과해주셔야 맞지 않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 나라 헌정사를 뒤엎고 국민 삶을 뒤엎는 문 정권을 탄생시킨 스승으로서 '내가 이러라고 대통령 만들어준 줄 아냐' 이 한 마디면 족했다"라고 적었다. 이또한 과거 민주당에서 비대위 대표.선거대책위원장 등을 했던 김 비대위원장을 겨냥한 말로 읽힌다.
부산광역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서병수 의원 또한 6일 "과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게 된 데 사과를 하지 않아 대한민국 우파가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사과만이 '탄핵의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저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덮어씌운 온갖 억지와 모함을 걷어내고 정상적인 법‧원칙에 따른 재평가 후에 공과를 논해도 늦지 않다"라며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런 반발들 커지면... 이명박·박근혜 비호 세력으로 보일 수도"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김종인 위원장의 성격상,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긴 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김종인 리더십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당내 반발을 진화하고 플러스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과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사과하는 걸 넘어서 전임 정권과의 단절을 통해서 거듭 태어나야 하는데, 사과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도 반발이 불거지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실정과 여권의 난맥상이 부각되니 '굳이 사과까지 해야 하느냐'하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긴 것"이라며 "이렇게 반발이 세게 터져 나오면 '역시 국민의힘은 이명박‧박근혜를 비호하는 세력'이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되레 크다"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방침을 지지하는 당내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김종인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는, 국민의힘이 보다 책임 있는 정당으로 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한다고 당장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그 시작은 될 수 있다"라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