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죄를 무죄라고 했다가 '얼치기 운동권 검사', '막무가내 검사', '부끄러운 검사'라는 온갖 화살을 맞은 고슴도치가 되어버린 그 사람의 화살을 하나라도 빼주어야겠어요. 제가 외면했던 그 모든 문제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피를 뿌리며 걸어간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도록,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보게 해준 그 사람을 위해 저는 거기에 가려 합니다." -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시어머님께 보내는 편지 357쪽.
한때는 군대가 그랬고 한때는 국정원(전 중앙정보부 혹은 안기부)이 그랬다. 국가 조직 혹은 기관의 공공적인 성격과는 상관없이 특유의 폐쇄성이 권력의 사유화와 도구화로 오랜 기간 악용된 역사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리고 다른 조직들이 적지 않게 털어낸 안 좋은 유산을 검찰은 여전히 쥐고 있다.
이연주 변호사의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는 책 표지의 글귀대로 검찰 조직의 민낯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SNS에 연재된 글을 정리해서인지 내용이 현실적이고 생생하다. 아마도 이 책은 일반 시민이 접할 수 있는 검찰 내부의 가장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오랜 기간 존속함에도 불구하고 쇄신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고이고 썩은 물이 생기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다.
한때 검찰에 근무했던 이 변호사는 검사 당시의 경험과 그 곳을 나온 이후의 여러 사건들을 둘러싼 안팎의 이야기들을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생생히 묘사한다. 이 책은 크게 조직의 불합리, 스폰서 문제, 도덕적 해이 등을 다룬 1장, 검언유착, 제 식구 감싸기,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다룬 2장, 증거, 사건, 기록을 조작한 이야기를 다룬 3장, 여자로서 검찰에서 일한다는 것을 주로 다룬 4장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사건의 안팎에 대한 사실과 요약을 김미옥 작가가 일목요연하게 매 글마다 덧붙였다. 이전부터 검찰에 관심이 있었던 일반시민이라도 이 책을 보면 이 조직이 이 정도였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달(the Moon)은 공전시간과 자전시간이 같고 공전시간은 지구의 자전시간과 같다. 지구에서 볼 때 달의 표면은 늘 밝은 면만 보인다.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서 달의 어두운 뒷면을 보지 않는 한 대부분의 지구인은 직접 목격할 일이 없다. 직접적인 법조 관계자가 아니면 대부분 볼 수 없는 검찰의 어두운 뒷면을 이 변호사는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보여준다.
이 변호사는 1990년대에 감사원이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가 상당히 큼에도 작은 것처럼 통계를 조작한 것을 언론에 제보한 이문옥 감사관을 연상케 한다. 또한 미국 3대 담배회사의 하나였던 B&W의 니코틴 효과 증폭을 위해 암모니아 화합물을 추가한 사실을 폭로한 연구개발자인 제프리 와이갠드도 떠오르게 한다. 이연주 변호사는 검찰 밖에서, 임은정 검사는 검찰 안에서 역사의 진화를 이어가려는 공익수호자이다.
이 변호사는 책에서 역사상 최악의 기회주의자의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조제프 푸셰의 전기를 썼던 츠바이크의 이야기를 빌어 현재의 검찰이 푸셰와 얼마나 비슷한지를 꼬집는다.
"어느 도박판이든 아무래도 좋다. 왕국의 판이든 제국의 판이든 공화국의 판이든 상관할 바 없다... 권력에 달라붙어 핥고 뜯어먹기만 하면 된다. 어떤 찌꺼기 권력이라도 그것을 물리치는 도덕적, 윤리적 힘을 결코 갖지 않을 것이며, 자부심이나 긍지 같은 것을 갖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주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속에서 어떻게 승리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고 내 몫을 챙길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88쪽)
물론 이 책은 검찰의 어두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했으므로 이런 점이 검찰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과거를 볼 때 여러 권력과 재력의 비리를 검찰이 성공적으로 재판에 넘긴 사례도 적지 않다. 문제는 기소권과 수사권이라는 양대 검을 쥔 검찰이 오랜 기간 국민보다는, 심지어 국가를 넘어 검찰 조직 자체라는 이권을 위해 존속하지 않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완전한 정의를 달성할 수 없고 그것에 이르는 영원한 과정에 있을 뿐이다. 그 끝나지 않을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내 안의 인간과 내 밖의 인간이지, 무슨 조직이 아니다. 그러나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것에만 온몸의 감각이 집중된 탓에 인간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이 퇴화하여 괴물이 되어버린 검사들은 조직을 사랑한다는 핑계를 대며 인간을 향해 오만한 칼날을 찍어 누른다." (81쪽)
현재의 대한민국은 시기적으로 보자면 힘이 있다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고 통했던 권력 중심의 시대에서 인간적인 상식과 합리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의 시대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실적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위력의 시대에서 사람과 뭇 생명의 존재를 살피며 개선과 진화를 이루어 가는 인간 중심의 시대로 가고 있다. 목적보다 수단이, 인간보다 이념을 빙자한 이데올로기가 우위에 서는 세상으로 퇴행하지 않도록 지켜보고 나아가는 시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한비자(韓非子)는 진나라를 통해서 공평무사한 법치주의 국가의 모범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었다. 법가 철학은 여전히 그리고 오히려 이 시대에 절실하고 유효하다. 한비자의 유도(有度)편에서는 유명한 구절인 '법불아귀(法不阿貴)'가 나온다. '법은 귀한 신분이라고 해서 아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이 존재하되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처벌을 일삼는다면 그 법은 그들만의 법일 뿐이다. 21세기에 들어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도달했다고 자화자찬하더라도, 복잡하고 정교한 법 규정이 있더라도, 법의 근본정신을 되새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거나 여전히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소권과 수사권이 포함된 비대한(!) 검찰권력은 일제 강점기의 묵은 숙제를 이제야 푸는 것에 불과하다. 그 당시의 경찰권력은 검찰보다 훨씬 컸고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시기판단 등의 건설적인 토론도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한시적으로 두기로 했던 권한집중의 시기는 너무나 길었고 조직의 관성은 브레이크없는 질주를 이어 왔다.
이제는 그 관성을 멈추고 정의롭고 공정한 검찰로 진작에 다시 태어나야 할 시기다. 이연주 변호사가 용기와 열정과 정의감으로 검찰의 어두운 부분들을 나무와 잎의 묘사처럼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렇기에 이제는 전체적인 숲의 그림을 다시 그려나갈 때이다. 그러나 숲의 그림은 모든 이가 함께 그릴수록 더 아름다울 것이다. 합리적 논의와 공론의 장은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폐쇄와 불통은 과거를 부여잡고 소통과 절차는 미래를 부른다.
너무나도 시의적절하게 나왔지만 바로 그 시의성 때문에 이 책의 취지를 많은 이들이 받아들일지언정 모두가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연주 변호사의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가 한국사회를 좀 더 진화시키기 위한 디딤돌의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본질적 가치와 절대적 이상향에 바로 이를 순 없더라도 퇴행을 막고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정표는 필요하다.
힘의 사회가 가치의 사회로 넘어가면 갈수록 비로소 대한민국 시민들은 민본과 정의와 공평무사가 허공 속의 구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가치로 느낄 것이다. 대다수의 행복은 바로 그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