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따르릉"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화면을 켜고 보니 뉴욕에 살고 있는 딸과 손녀다.

"카일리~ 잘 지내니, 반가워!(How are you, Nice to meet you)"

맨날 딸에게서 전화가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소리다. 그 다음은 말이 막힌다. 또 한마디를 덧붙인다. "뭐 하고 있어?(What are you doing?)" 그 말은 쉽게 나온다.

"엄마, 카일리가 엄마에게 보여 줄 게 있다고 전화하라고 해서."
"왜? 무슨 일인데?"


휴대폰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한글로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카 타 파 하'가 적혀 있다. 그 밑에는 '감사해요, 사랑해'라고 써 있다. 그러고 나서 카일리가 또 한 번 한글 쓰는 걸 보여준다. 금방 잘 써내려간다.
 
한글 쓰기 연습 손녀가 한글을 써서 보여 준다
한글 쓰기 연습손녀가 한글을 써서 보여 준다 ⓒ 이숙자

"엄마, 카일리가 저녁도 안 먹고 엄마에게 보여 주려고 썼어. 한글을 알려달라고 자꾸 조르네. 그래서 알려 주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뭉클하다. "아니 금방 그렇게 쓴단 말이야?" 깜짝 놀랐다. 얼마나 보여 주고 싶었을까, 저녁밥도 안 먹고서.

"니콜라스는 어디 갔니?" 손자도 화면으로 보여준다. 손녀만 부르면 편애한다고 할까봐 나는 두 아이 이름을 꼭 차례로 부른다. 나중에는 사위 이름까지, 모두가 외롭지 않게.

화면에 보이는 손자는 "잘 지내시죠? 사랑해요(How are you? l love you)" 말하고 화면 속에서 도망을 치고 만다. 한글은 어려워 못 쓴다고 엄마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손녀하고는 성향이 아주 다르다. 느긋하고 여유롭고 욕심도 없다. 손녀는 부지런하고 도전 정신이 뛰어나다. 한 뱃속에서 함께 나왔는데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코로나가 가져온 뜻밖의 변화 

코로나19로 길어진 집콕 생활이 아이들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학교 생활로, 또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행을 다니며 밖에 나가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조용히 많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자기 삶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 삶의 근원에 대한 생각들이 이런 변화로 나타난 것 아닐까.

아이들이 바쁠 때는 우리를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한글을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집에서 오랫동안 갇혀 지내는 시간 덕분에, 아이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듯하다. 나를 응원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한글도 배우려 노력을 한다. 얼마 전부터 손녀는 한국말과 한글에 관심을 가지고 한글을 쓰고 우리에게 더듬더듬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어쩌면 코로나19가 가져다준 '효과'가 아닌가 싶다. 사람 사는 일에는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밝음이 있다. 어둠 속에서 밝음 찾아내는 것도 현명한 삶의 자세라고 본다. 이 어두운 터널을 내가 어떠한 자세로 뚫고 나가야 할까, 날마다 생각한다. 나는 날마다 루틴을 정해 놓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에게는 손자가 4명, 손녀가 1명 있다. 그중에 딸의 손녀 카일리가 지금 한글을 쓴 아이다. 올해로 10살이 됐다. 큰딸이 이태리 사람인 사위와 결혼하고, 마흔이 넘어 시험관으로 낳은 이란성 쌍둥이다.

그런데 손녀는 감성이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누구도 가지지 못한,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손녀가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지난번 전화가 왔을 때 딸은 이렇게 말했다.

"카일리가 슬프다고 했어.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전화를 하면 잘 못 알아들으니까, 자기가 한국말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이 드셔서 영어를 배우기 힘드시니까."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제 열 살짜리 아이가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는 깊은 마음을 가졌을까 놀랍고 고마웠다.

비록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 요양병원 앞에서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가 소독하고 있다.
한 요양병원 앞에서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가 소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뉴욕에 살고 있는 딸네 아이들은 코로나로 학교도 갈 수 없고 친구하고도 놀 수가 없다. 지난 일 년 가까이 많은 날을 집에서만 보냈다. 그 시간이 참 무료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누구 하나 찾아갈 친척이나 가족도 없고. 물론, 있어도 만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만날 사람이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엔 많은 차이가 있다.  

올 1월부터 발발한 코로나19에 다들 갇혀 버리고 말았다. 딸네 가족은 자주 다니던 여행도 가지 못하고 있다. 딸도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들도 집에만 머문다고 한다. 멀고 먼 낯선 곳, 뉴욕에 살고 있는 딸네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언제쯤 코로나라는 감염병에서 해방되어 일상적인 생활을 할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외로움의 연속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사는 듯하지만 결국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고 사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다. 손녀딸은 얼마나 자랑하고 싶고 말하고 싶었을까.

인간의 욕구는 5단계가 있다고 미국의 심리학자 매스로우는 말했다. 첫째 생리적 욕구, 둘째 안전의 욕구, 셋째 소속과 사랑의 욕구, 넷째 존중의 욕구, 다섯째 자아실현의 욕구. 인간은 모두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와 욕구가 채워질 때 삶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 자기의 삶을 응원하고 공감해 준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부모가 그런 존재이고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은 세상이란 땅에서 발을 굳게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정신적인 힘이다. 곁에 있을 때는 모른다. 그러나 내 삶을 응원해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없을 때 오는 헛헛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손녀가 써주는 한글을 보며 우리 부부는 손가락을 치켜들고 "good" 하고 손뼉을 치고 응원해 줬다. 멀고 먼 나라, 한국이라는 곳에 자기를 응원해 주는 가족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다는 것이 손녀딸에게는 커다란 위로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본다.

내가 굳건히 이 땅에 발을 딛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걸 생각해 본다. 우리 부부가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어서, 그들이 있기에 이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딸들, 사위들, 손자 손녀의 삶을 응원한다. 사랑한다, 고맙다 하고 마음으로 외쳐 본다. 나는 오늘 하루 나를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의 기운으로 살아간다. 내 인생에서 다시 못 올 오늘, 손녀딸이 보여준 한글 글씨에 감동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한글#손녀 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